제목 |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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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 작성일2024-06-23 | 조회수224 | 추천수5 | 반대(0) |
오늘은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입니다. 세례자 요한과 다른 성인의 축일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혹시 아시는지요? 그렇습니다. 다른 성인들은 세상을 떠난 날을 축일로 지냅니다. 이 세상에서 많은 공덕을 쌓고,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성인이 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가경자, 복자, 성인’의 순서를 거쳐야 합니다. 증인이 있어야 하고, 성인의 전구를 통해서 ‘표징’이 드러나야 합니다. 한국은 그런 과정을 거쳐서 103위의 성인과 124위의 복자를 신앙의 증거자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다른 성인과는 달리 태어난 날을 ‘축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태어난 날을 축일로 지내는 분은 성모님과 세례자 요한입니다. 이는 태어난 날을 축일로 지내는 예수님과 같습니다.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세례자 요한도 성령의 이끄심에 의해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이름도 성령에 의해서 마리아에게 주어졌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이름도 성령의 이끄심에 의해서 엘리사벳에게 주어졌습니다. 우리가 세례자 요한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요한이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요한에게 와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율법과 계명에 따라서 속죄의 예식을 거치고, 제물을 바쳐야 죄를 용서 받을 수 있는데, 요한은 세례를 받으면 죄를 용서 받을 수 있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당시에는 상상하기 힘든 획기적인 죄의 사함을 받는 예식이었습니다. 오늘은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오직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충실하게 지고 갔습니다. 자신이 해야 할 일과 역할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겸손하였고, 달릴 길을 충실히 달린 용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분은 더욱 커지셔야 하고, 나는 더욱 작아져야 합니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 자격도 없습니다. 나는 오셔야 할 그분이 아닙니다. 나는 그분의 길을 준비하는 광야의 목소리 일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 중에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사람은 없다고 칭찬하셨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겸손하였기 때문입니다. 주어진 길을 충실하게 걸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이라도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크다.” 오늘 세례자 요한의 탄생 대축일을 지내면서 세례자 요한의 겸손함을 배우면 좋겠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충실함을 배우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충실하게 지고 갈 수 있는 용기를 청하면 좋겠습니다. 부러워하면 지는 거라고 합니다. 남의 떡을 부러워하기 보다는 나에게 주어지는 사명에 충실하면 좋겠습니다. ‘나 중심의 생각을 상대방 중심의 생각’으로 바꿀 수만 있다면 우리는 세상을 좀 더 아름답고, 풍요롭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축일로 지내는 세례자 요한은 철저하게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축일도 그런 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축일은 여름이 긴 하지에 가깝습니다. 하지가 지나면 여름은 점차 짧아집니다. 예수님의 축일은 겨울이 가장 긴 동지에 가깝습니다. 동지가 지나면 낮은 점점 길어집니다. ‘성소 후원회’ 임원 연수 때입니다. 강사 신부님은 제가 예전에 본당 신부님으로 모시던 분입니다. 저는 신부님을 소개해 드리면서 ‘제가 신부님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도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제가 그런 말을 할 줄 알고 ‘끈 없는 신발을 신고 왔다.’라고 하셨습니다. 제 말을 유쾌한 유머로 받아 주시는 신부님은 역시 저보다는 한 차원 높으신 분이셨습니다. 슬픈 눈으로 바라보면 세상은 한없이 슬플 수 있습니다. 구약을 마치고, 신약을 시작하는 세례자 요한의 죽음도 그렇습니다. 사람의 몸에서 태어난 이들 중에는 가장 위대하다는 말을 들었던 세례자 요한은 ‘살로메’의 춤 값으로 목숨을 잃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사람의 몸에서 태어난 이들 중에 가장 위대한 세례자 요한을 기억하고 있으며, 사랑과 공경을 드리고 있습니다. 예전에 휴대폰 광고에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소중한 사람과 함께 할 때면 잠시 꺼 놓으셔도 좋습니다.’ 늘 켜져 있어야 하는 휴대폰도 소중한 사람과 있을 때면 꺼도 좋다는 광고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그렇습니다. 주님을 위해서라면, 하느님의 더욱 큰 영광을 위해서라면 지금 좀 서운해도 참을 수 있습니다. 지금 좀 속이 상해도 웃을 수 있습니다. 자존심이 무너질 때라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수많은 성인 성녀들은 바로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오래 사는 것보다 일찍 죽는 것을 택하셨고, 재물보다는 가난함을 택하셨고, 모욕과 멸시를 기쁘게 받아들였습니다. “아기야 너는 지극히 높으신 이의 예언자 되어, 주님에 앞서 그분의 길을 준비하리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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