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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12주일 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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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4-06-23 조회수121 추천수4 반대(0) 신고

[연중 제12주일 나해] 마르 4,35-41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소설 <서유기>를 보면, 망나니 같은 손오공이 세상을 뒤흔들고 천상 세계까지 올라가서 난동을 부리자 부처님이 나타나 손오공을 제압합니다. 그리고는 손오공에게 당신 손바닥을 벗어나 보라고 말씀하시지요. 이에 손오공은 근두운을 타고 하늘 끝으로 올라가서, 눈에 보이는 다섯 기둥에 자신이 왔다간다는 글을 쓰고 의기양양하게 돌아옵니다. 그러자 부처님이 빙긋 웃으면서 손바닥을 펴 보이시는데, 그 글을 적은 곳이 바로 부처님의 손가락이었습니다. 손오공이 제 아무리 날고 뛰어봐야 “부처님 손바닥 안”이었던 겁니다. 그런데 그런 점은 우리도 비슷합니다. 우리 삶이 아무리 힘겹고 괴로워봤자, 기대고 의지할 데 하나 없는 것 같아 눈 앞이 깜깜하고 절망적이어도, 우리는 우리를 아끼고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인 것이지요. 그러니 나를 더 괴롭게 만들뿐인 근심 걱정을 굳이 끌어안고 있을 필요 없습니다. 주님을 믿고 그분께 자신을 온전히 내어 맡기며, 그분 뜻을 따르는 일에 최선을 다한 후 겸허한 마음으로 주님의 처분을 기다리면 되는 겁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내가 살 길을, 나에게 가장 좋은 길을 마련해 주십니다. 주님께 대한 굳건한 믿음 안에서 “야훼 이레!”의 기적이 실현되는 순간입니다.

 

오늘 복음은 주님을 믿고 그분과 함께 신앙의 여정을 걷는 제자들의 이야기입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저녁 때가 되자 예수님은 ‘호수 반대편으로 건너가자’며 제자들을 재촉하십니다. 그런데 해가 지고 난 뒤 배를 타고 갈릴래아 호수로 나가는건 썩 내키지 않는 일입니다. 아무런 불빛도 없이 캄캄하여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갑자기 강한 돌풍이 불어 호수에 거센 풍랑이 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하던 때도 저녁이었습니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가려면 그 정도의 고통과 시련은 각오해야 하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굳이 저녁 때 호수를 건너가자고 하셨고, 제자들은 그분 말씀에 순명하여 그분과 ‘한 배’를 타고 호수로 나아갑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제자로서 그분과 운명을 함께 하겠다는 암묵적 동의를 한 셈이지요. 그런 점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은 주님과 한 배를 타고 세상이라는 호수 위로 뛰어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갈대바다를 건너 약속된 땅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하느님 백성으로 변화되었듯이, 우리도 세상이라는 물을 건너 하느님 나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죄로 물들었던 예전의 내가 죽고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는 겁니다.

 

하지만 그 믿음의 여정은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어둠’이라는 불확실성과 두려움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가는 여정에서 고통이라는 거센 바람을, 시련이라는 강한 물결을 마주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 속 제자들도 그랬습니다. 북쪽에 있는 헤르몬 산에서 불어 내려오는 바람과 서쪽에 있는 지중해에서 불어 올라오는 바람이 마주쳐서 생기는 강한 돌풍을 만난 겁니다.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캄캄한 밤에 그 깊이가 얼마나 되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호수 한 복판에서 맹렬한 돌풍이 만들어내는 거센 풍랑에 휩쓸려버렸으니 그 두려움과 공포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이 탄 배는 당장이라도 뒤집힐 듯 크게 휘청거렸고 배 안에 물이 가득 들이차서 당장이라도 가라앉을 것만 같았지요. 이러다 다 죽겠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을 겁니다.

 

그런데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예수님께서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배 뒷편에서 베개를 베고 편안히 주무시고 계십니다. 그 모습에 제자들은 속에서 울화가 치밉니다. 고난과 위험에 처한 자신들을 수수방관 하시는 것 같아 속이 상하고 마음이 서운해집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풍랑 속에서 주무신 것은 제자들을 위험 속에 방치하신 게 아닙니다. 아직 예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했던 제자들에게 당신이 하느님 아버지를 전적으로 신뢰하시는 모습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지요. 그 모습을 통해 제자들이 무지와 불신에서 깨어나기를 바라셨던 겁니다. 당신이 언제 어디서나, 그 어떤 상황에도 그들과 함께 계신다는 ‘구원의 진리’를 마음 깊이 새기기를 바라셨던 겁니다.

 

예수님께서 거센 풍랑에 시달리는 배 위에서 평안히 주무실 수 있는 것은 마음 속에 철저한 신뢰를 지니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신뢰입니다. 당신을 너무나 사랑하시는 아버지께서 위험 속에서 지켜주시고 보살펴 주시리라는 신뢰, 혹여 다치거나 목숨을 잃게 되더라도 그것 또한 하느님의 뜻과 계획 안에 있으며, 하느님께서는 그런 부정적이고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나를 위한 당신 뜻을 반드시 이루시리라는 신뢰가 그것이지요. 다른 하나는 제자들에 대한 신뢰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 다수는 어부 일에 잔뼈가 굵은 ‘베테랑’들입니다. 거센 풍랑을 만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그 방법이 다부진 그들의 몸에, 수없이 쌓여온 그들의 경험에 새겨져있지요. 게다가 마귀를 쫓아내시고 죽은 사람마저 되살리시는 능력의 주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십니다. “비록 죽음의 그늘진 골짜기를 간다 해도, 당신 함께 계시오니 무서울 것 없나이다”(시편 23,4 공동번역)라는 시편 말씀처럼, 주님을 굳게 믿고 의지하며 자신이 어부로서 지닌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한다면, 아무리 거센 풍랑이라도 능히 이겨낼 수 있는 겁니다. 두려움을 키워 상황만 악화시킬 뿐인 걱정일랑 내려놓고, 예수님을 굳게 믿으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이 지녀야 할 바람직한 모습이지요.

 

그러나 부족하고 약한 우리는 믿음을 지니기보다 걱정과 두려움에 빠질 때가 더 많습니다. 내가 이만큼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데 왜 이렇게 힘들고 괴롭냐며, 내가 당신을 믿고 따르는데 왜 내 삶에서 고통과 시련을 없애주시지 않느냐며 주님을 원망하고 그분께 불평 불만을 늘어놓는 겁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더 깊은 절망에 빠져 스스로를 더 괴롭게 만들 뿐이지요. 신앙생활 하면서 고통과 시련을 겪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무책임하게 방치하셔서가 아닙니다. 교만하고 어리석은 우리 인간은 고통과 시련을 마주할 때에야 비로소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오직 주님만이 자신으로 하여금 그 고통과 시련을 이겨낼 힘을 주시는 분임을 깨달으며 그분을 믿고 의지하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과 함께 고통과 시련을 의지하는 과정을 통해 영적으로 성장하여 하느님 보시기 좋은 그분 자녀의 모습으로 변화 되지요. 그러니 삶 속에서 거센 풍랑을 마주할 때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힘을 내야겠습니다.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으면, 우리는 고통과 시련의 폭풍우 속에서도 기쁨과 희망의 춤을 출 수 있습니다.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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