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수철 신부님_삶은, 행복은 선택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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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4-06-26 | 조회수221 | 추천수6 | 반대(0) 신고 |
“참사람이 됩시다”
“주님, 당신의 길을 가르치소서. 저는 끝까지 그 길을 따르오리다. 저를 깨우치소서. 당신의 가르침을 따르고, 마음을 다하여 지키오리다.”(시편119,33-34)
오늘 화답송 시편이 참 좋습니다. 이런 배움의 여정에 항구할 때 주님을 닮아 참사람이 됩니다. 참으로 깨달음의 여정에 충실할 때 자기를 아는 겸손과 지혜에 이르고 참사람의 자유인이 됩니다. 공부중의 참 중요한 평생 공부가 참사람이, 참내가 되는 공부입니다. 오늘 옛 어른의 말씀도 좋은 깨우침이 됩니다.
“‘갈길이 멀다는 것’은 나의 의지와 한계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이다.”<다산> “짐은 무겁고 길이 멀기에 선비는 도량이 넓고 뜻이 굳세지 않으면 안 된다.”<논어>
그러니 하루하루날마다 좋은 선택과 훈련 및 습관화가 참사람이 되는데 얼마나 결정적 역할을 하는지요! 천리길도 한걸음부터입니다. 하루하루 좋은 선택, 훈련, 습관을 통해 운명도 바뀝니다. 어제 어느 자매와의 면담에서 저도 은혜를 받았습니다. 주고 받은 대화의 요지입니다.
“행복은 선택입니다. 타고난 부정적인 것들에, 과거의 아픈 추억에 사로잡혀서는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바로 이들이 악의 유혹입니다. 삶은 선택입니다. 행복은 선택입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의식적으로, 의지적으로 행복을 선택하여 좋은 추억을 쌓아가는 것입니다. 운명의 질곡에서, 악순환의 늪에서, 무지와 허무의 어둠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는 다는 것은 구원을, 행복을 선택했음을 뜻합니다. 이보다 더 큰 축복은 없습니다. 날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빛이자 희망이요 행복이신 주님을 선택하여 사는 것입니다.” “행복은 선택이다! 정말 마음에 와닿습니다. 늘 잊지 않고 명심하겠습니다.” 그래서 즉시, 늘 붙여놓고 보라고 “행복은 선택이다”라는 말마디를 붓펜으로 A4용지에 선명하게 써드렸습니다.
행복은 선택입니다. 삶은 선택입니다. 바로 여기 희망이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 대한 답이 됩니다. 오늘 복음의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안다”는 주제 말씀은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말을 바꾸어 “말과 글과 행실을 보면 그 사람을 안다.”고 해도 그대로 통합니다. 오늘 복음 서두 말씀이 아주 강렬합니다.
“너희는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양의 옷차림을 하고 너희에게 오지만 속은 게걸 든 이리들이다.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전혀 자기 성찰이 없는, 자기 공부가 없는 참 어리석은 무지의 사람들이 거짓 예언자들입니다. 오늘도 이와 유사한 사람들 참 많습니다. 적반하장, 내로남불, 표리부동,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입니다.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거짓 예언자들로 진실과 겸손이 결핍되어 있습니다. 이들의 언행을 보면 금방 거짓 예언자들임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주님의 말씀도 너무 자명하여 설명이 불필요할 정도입니다.
“가시나무에서 어떻게 포도를 거두어들이고, 엉겅퀴에서 어떻게 무화과를 거두어들이겠느냐? 이와같이 좋은 나무는 모두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나무가 문제입니다. 나무가 좋으면 열매도 좋듯이 사람이 좋으면 말과 글도 행실도 좋습니다. 나무가 나쁘면 열매도 나쁘듯이, 사람이 나쁘면 말도 글도 행실도 나쁩니다. “사람은 고쳐쓰지 못한다”, “원판 불변의 법칙”이란 비관적 말마디도 회자됩니다.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라는 속담도 기억할 것입니다.
그래서 하루하루 날마다 참된 회개의 삶이, 참된 깨달음의 삶이, 참 좋은 선택과 훈련의 삶이 그토록 중요합니다. 나무는 바꿀 수 없어도 사람은 바꿀수 있다는 희망이 있으니 바로 이런 부단한 공부와 노력의 수행을 통해서입니다. 지성이면 감천의 은총입니다. 이런 노력이 주님을 감동시켜 우리를 정화하고 성화하는 변화의 은총입니다.
그러니 하루하루 날마다 참 좋으신 주님을 선택하고 사랑할 때 우리 삶은 예수님을 닮아가는 예닮의 여정이 되고 주님을 닮아가면서 참 좋은 사람이 됩니다. 그러니 주님 사랑에 목숨을 거는 것입니다. 사랑뿐이 답이, 길이 없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듯 선택한 수행들을 한결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주님의 계명을, 말씀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결코 이런 사랑의 수행에 지치지 말아야 합니다. 바로 이의 빛나는 모범이 그 예전 유다 임금 요시야요 그에 대한 묘사입니다.
“그는 주님의 눈에 드는 옳은 일을 하였으며, 자기 조상 다윗의 길을 그대로 걸어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벗어나지 않았다.”(2열왕22,2)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습니다. 이런 임금은 희망의 표징이요 백성들은 그대로 보고 배웁니다. 바로 요시야 임금의 진면목이 오늘 독서 후반부에 잘 드러납니다.
‘임금은 기둥 곁에 서서, 주님을 따라 걸으며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그분의 계명과 법령과 규정을 지켜, 그 책에 쓰여 있는 계약의 말씀을 실천하기로 주님 앞에서 계약을 맺었다. 그러자 온 백성이 이 계약에 동의하였다.”
이렇게 임금과 백성이 모두 하나가 되어 주님을 따라 걸으며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그분의 계명과 말씀, 계약을 충실히 지킬 때 참으로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이 될 것은 불문가지입니다. 누가 저에게 무슨 맛으로, 무슨 기쁨으로, 무슨 재미로 사느냐 묻는 다면 저는 지체없이 대답할 것이며, 게시판에 써서 붙여 놓았습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하늘에 보물을 쌓는 맛으로, 기쁨으로, 재미로 살아갑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예닮의 여정에, 하루하루 날마다, 하늘에 보물을 쌓는 하느님 중심의 삶의 선택보다,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선택보다. 더 좋은 선택은 없습니다. 바로 다음 좌우명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도반들과 더불어 주님을 따라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일일일생, 하루를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평생처럼 살았습니다. 저에겐 하루하루가 영원이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이렇게 살았고 내일도 이렇게 살 것입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받으소서.”
날마다 주님을 닮아갈 때 가면은 저절로 벗겨지고, ‘정직(integrity)’하고 ‘투명(transparency)’한 참 나의 삶을 살게 됩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더도 덜도 아닌 그대로의 나일뿐입니다. 속이 깨끗하면 저절로 겉도 깨끗해지기 마련입니다. 그대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주님, 탐욕이 아니라 당신 법에, 제 마음 기울게 하소서. 헛된 것을 보지 않게 제 눈을 돌려 주시고, 당신 길을 걷게 하시어 저를 살려 주소서.”(시편119,36-37).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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