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하느님께서 방패가 되어 주신다 (마태7,15-2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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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로마노 | 작성일2024-06-26 | 조회수105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하느님께서 防牌가 되어 주신다는 것이 償(福)임을 믿는 것이 열매다.
(마태7,15-20) 15 “너희는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양의 옷차림을 하고 너희에게 오지만 속은 게걸 든 이리들이다. = 양의 옷차림을 한 예언자- 앞 절에서 말씀하신 우리의 열심한 그 윤리의 삶으로, 이웃에게 잘해주는 그 실천을 신앙이라고, 황금률이라고 말하는 가르침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세상이 칭찬하는 사람의 자기 의로움으로 가는, 그 넓은 길을 진리로 가자고 가르치는 사람이다. 그러나 주님은 그 많은 사람들의 생각인 넓은 길이 영원한 멸망의 길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니 그렇게 말하는 이들이 양의 옷차림을 하고 죽음의 길로 이끄는 이리들인 것이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진리로 믿어 그분의 의로움을 믿음으로 전가 받아야만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하신다.(요한14,6 로마3,20-24)
16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가시나무에서 어떻게 포도를 거두어들이고, 엉겅퀴에서 어떻게 무화과를 거두어들이겠느냐? = 가시나무와 엉겅퀴- 하느님의 선악을 품고 대신 죽어 생명을 주시는 그 진리의 말씀을, 하와가 자신의 욕망의 눈으로 보아 선과 악의 두 법으로 먹었기에 그 선악의 열매가 죽음을 부르는 가시와 엉겅퀴였던 것이다.
(창세3,17-18) 17 그리고 사람(아담)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에게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한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었으니, 땅은 너 때문에 저주를 받으리라. 너는 사는 동안 줄곧 고통 속에서 땅을 부쳐 먹으리라. 18 땅은 네 앞에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돋게 하고 너는 들의 풀을 먹으리라.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는 모두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 = *좋은 열매(果實)- 하느님께서 좋아하시는 말씀이다. 곧 하늘의 용서, 생명을 주는 그 진리의 말이다. *나쁜 열매- 많은 사람들이 좋다고 생각하는 도덕과 윤리, 그 법의 말이다. 그 윤리의 삶은 인간들이 정한 땅의 법으로 인간이 지켜야할 도리이지 구원을 위한 신앙이 아니기 때문에 하느님 앞에서는 나쁜 것이다.
(루가16,15) 1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 마음을 아신다. 사실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되는 것이 하느님 앞에서는 혐오스러운 것이다.”
(마태23,15) 15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개종자 한 사람을 얻으려고 바다와 뭍을 돌아다니다가 한 사람이 생기면, 너희보다 갑절이나 못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는 제사와 윤리의 삶으로 철저하게 착하고 의롭게 살았던 사람들이다. 예수님도 그들의 의로움을 인정하셨다. 그러나 ‘그들의 의로움으로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 한다’ 하셨음을(마태5,20)기억해야 한다. 곧 그들의 자기 의로움, 그 윤리의 삶이 지옥(땅)으로 들어갈 헛된 열매라는 것이다.
18 그래서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 *좋은 나무- 하늘의 용서, 생명을 주는 십자나무이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그 십자나무의 의로움을 진리로 믿으면 반드시 구원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말씀이다. 그러나 *나쁜 나무는 하늘의 용서 생명을 받을 수 없는 나무다. 곧 인간 스스로의 의로움을 믿고 의지하면 절대 하늘의 용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말씀이다.
19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잘려 불에 던져진다. 20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 나는 어떤 생각으로, 어떤 말로 이웃에게 전하는지, 양의 옷차림을 한 그 윤리의 착한생각, 착한 말로 하늘의 용서, 생명, 구원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느님께서 아브람에게 큰 상(복)을 주시겠다고 하시니 그가 ‘무엇으로 알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묻는다.
(창세15,9-12.17-18) 9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삼 년 된 암송아지 한 마리와 삼 년 된 암염소 한 마리와 삼 년 된 숫양 한 마리, 그리고 산비둘기 한 마리와 어린 집비둘기 한 마리를 나에게 가져오너라.” = ‘삼(3)을 하나로 가져오라’ 하신 것이다. 삼(3)은 하늘의 숫자이다. 聖父께서 먼저 땅의 구원을 사랑으로 계획하시고, 聖子께서 그 사랑의 계획을 십자가에서 대속으로 다 이루시고, 聖靈께서 그 십자가의 대속, 그 사랑을 진리로 구원을 완성하신 그 완성의 숫자가 3(삼)이다. 그러니 삼(3)은 사랑, 그 하나이다.
10 그는 이 모든 것을 주님께 가져와서 반으로 잘라, 잘린 반쪽들을 마주 보게 차려 놓았다. 그러나 날짐승들은 자르지 않았다. = 완성의 숫자 삼(하늘)을 반으로, 둘로 나눈 것이다. 그것이 사람의 本能이기 때문이다. 곧 생명을 주는 사랑, 그 하나의 말씀을 선과 악, 그 둘로 나눈 아담의 죄, 그 原罪로, 아브람이 완전한 그 하늘(삼)을 둘로 쪼개어 드린 것이다. 그러면 선악의 법으로 죽음이다.
11그래서 맹금들이 죽은 짐승들 위로 날아들자, 아브람은 그것들을 쫓아냈다. 12 해 질 무렵, 아브람 위로 깊은 잠이 쏟아지는데, 공포와 짙은 암흑이 그를 휩쌌다. = 삼(3)을 善과 惡, 그 둘로 가진 아브람은 그 죽음, 공포를 스스로 쫒아낼 수가 없다.
17 그래서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자, 연기 뿜는 화덕과 타오르는 횃불이 (야훼 홀로) 그 쪼개 놓은 짐승들 사이로 지나갔다. = 그 선악의 죽음과 공포 사이를 빛, 불이신 하느님께서 홀로 지나가시면서 다시 회복시켜 주시는 것이다. 곧 하느님께서 죽음과 공포를 품으신 것이다. 그것이 곧 靈의 죽음이다. 그것이 하느님께서 당신의 죽음으로 아브람과 맺는 계약이다. 그 계약을 다른 모습으로 보여 준 것이 무지개 계약이며, 그리스도의 피로 얻는 구원의 새 계약이다.
18 그날 주님께서는 아브람과 계약을 맺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집트 강에서 큰 강 곧 유프라테스 강까지 이르는 *이 땅을 너의 후손에게 준다.” = 이 땅- 하느님께서 땅(흙)에 당신의 숨을 넣으시어 사람이 되게 하셨듯이, 그 흙의 구원을 약속하신 그 약속의 땅, 새 계약의 땅을 의미한다.
☨영원한 보호자 성령님! 말씀을 당신의 귀로 듣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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