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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영근 신부님_2024년 6월 27일 연중 제12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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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4-06-27 조회수110 추천수4 반대(0) 신고

 

제1독서
▥ 열왕기 하권의 말씀 24,8-17 

 

8 여호야킨은 열여덟 살에 임금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석 달 동안 다스렸다.
그의 어머니 이름은 느후스타인데 예루살렘 출신 엘나탄의 딸이었다.
9 여호야킨은 자기 아버지가 하던 그대로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질렀다.
10 그때에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의 부하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와서 도성을 포위하였다.
11 이렇게 그의 부하들이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는 동안,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가 이 도성에 이르렀다.
12 그러자 유다 임금 여호야킨은 자기 어머니와 신하들, 대신들과 내시들과 함께 바빌론 임금에게 항복하였다.
그리하여 바빌론 임금은 그의 통치 제팔년에 여호야킨을 사로잡았다.
13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네부카드네자르는 주님의 집에 있는 모든 보물과 왕궁에 있는 모든 보물을 내가고, 이스라엘 임금 솔로몬이 주님의 집에 만들어 놓은 금 기물들을 모조리 떼어 냈다.
14 또한 온 예루살렘 주민과 모든 대신과 모든 용사 등 포로 일만 명과 모든 장인들과 대장장이들을 끌고 갔다.
그리하여 나라 백성 가운데 가난한 이들 말고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15 네부카드네자르는 여호야킨을 모후와 왕비들, 내시들과 나라의 고관들과 함께 바빌론으로 끌고 갔다.
그들을 끌고 예루살렘에서 바빌론으로 데려간 것이다.
16 바빌론 임금은 또 훌륭한 사람 칠천 명과 장인과 대장장이 천 명 등, 전투할 수 있는 건장한 모든 사람을 바빌론으로 데려갔다.
17 그런 다음에 바빌론 임금은 여호야킨의 삼촌인 마탄야를 그 뒤를 이어 임금으로 세우고, 이름을 치드키야로 바꾸게 하였다. 

 


복음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 7,21-29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1 “나에게 ‘주님, 주님!’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22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주님, 주님! 저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일으키지 않았습니까?’ 하고 말할 것이다.
23 그때에 나는 그들에게,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내게서 물러들 가라, 불법을 일삼는 자들아!’ 하고 선언할 것이다.
24 그러므로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모두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을 것이다.
25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들이쳤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반석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26 그러나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지 않는 자는 모두 자기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
27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휘몰아치자 무너져 버렸다.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28 예수님께서 이 말씀들을 마치시자 군중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29 그분께서 자기들의 율법 학자들과는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오늘 복음은 산상설교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마지막 부분은 항상 이야기의 결말처럼 중요한 부분입니다.

 

‘하늘나라의 참 행복’에 대한 말씀으로 시작된 이 설교는 이제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결정적인 방법’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곧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하늘나라가 왔다’는 복음을 선포하신 예수님께서는 이제 ‘그 나라에 들어가는 방법’을 말씀하십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마태 7,24)

그렇습니다. 

‘하늘나라’는 ‘아버지의 뜻이 다스리지는 나라’이기에, 당연히 자기의 뜻을 실현하는 이가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실현하는 이가 들어가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뜻’을 대체 누가 알 수 있을까요?

그분을 직접 보고 들은 분, 그분에게서 오신 외아들 예수님이 아니고서야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예수님께 아버지의 뜻과 그 실행 방법을 배웁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고, 그분의 일을 완수하는 것이 당신이 양식이다.’(요한 4,38 참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마태 6,10)라고 기도하도록 가르치시고, 직접 겟세마니에서는 “아버지, 이 잔이 비켜갈 수 없는 잔이라서 제가 마셔야 한다면,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마태 26,42)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뜻’을 십자가에서 결정적으로 이루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죄를 뒤집어쓰고 돌아가셨습니다.

왜일까요?

그것이 바로 ‘아버지의 뜻’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 외아드님을 내어주시는 사랑을 보여주는 일이었습니다.

곧 세상을 향한 아버지의 온전한 사랑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를 위해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 우리 가까이에 계신다.’는 ‘복음을 선포’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곧 예수님의 죽음은 아버지의 ‘사랑의 표현’이며, ‘아버지의 뜻’이었습니다. 

그것은 죄 없으면서도 허물을 뒤집어쓰는 것이요, 옳으면서도 지는 일이었습니다. 

부당함을 당하고도 침묵으로 감싸주고, 그러고도 억울해하지도 원망하지도 않는 일이었습니다. 

 

이미 용서하신 아버지의 사랑이었습니다. 

오직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만을 바라신 까닭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사랑’의 선물을 받아 누리게 되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정말 ‘슬기로운 사람’이 누구인지를 가르쳐 주십니다.

‘주님, 주님!’ 하고 부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가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슬기로운 사람’(마태 7,24)이라고 하십니다.

곧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입니다.

바로 그가 진정 ‘슬기로운 사람’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

(마태 7,21)

 

주님!

오늘 하루 아버지의 뜻이 저희에게 이루어지게 하소서!

저희 머리 위에 ‘아버지의 뜻’ 말고는 그 어느 것도 두지 않게 하소서!

아무리 진실하게 여겨져도, 아무리 옳게 여겨져도,

‘아버지의 뜻’보다 앞세우지는 말게 하소서!

곡해 받으면서도 허물을 뒤집어쓸 줄을,

옳으면서도 질 줄을 알고,

그것이 이해되지 않아도 감싸 안고,

오로지 ‘당신 뜻’의 실행을 양식으로 삼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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