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 이레네오 주교학자 기념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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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 작성일2024-06-27 | 조회수271 | 추천수8 | 반대(0) |
1998년 제기동 본당의 보좌신부로 있을 때입니다. 중고등부 학생들과 칠갑산 청소년 수련장으로 여름 캠프를 갔습니다. 둘째 날에 본당 신부님께서 사목위원들과 캠프장으로 방문 왔습니다. 먼 길인데도 더위를 무릅쓰고 왔습니다. 사목위원들은 학생들을 위해서 간식을 준비해 왔고, 본당 신부님은 필요한 데 쓰라면서 격려금을 주셨습니다. 신부님은 아이들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을 보시고, 바로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1시간 정도 머물기 위해서 왕복 8시간을 걸려서 왔습니다. 신부님에게 왕복 8시간 걸리는 거리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본당의 어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였습니다. 신부님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2024년 댈러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당의 학생들이 부주임 신부님의 인솔 하에 오스틴에 있는 피정의 집으로 여름 캠프를 갔습니다. 저도 사목위원들과 함께 왕복 8시간이 걸리는 피정의 집으로 격려차 방문했습니다. 아이들은 신나게 물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예전에 본당 신부님이 그랬던 것처럼 격려금을 주고, 1시간가량 머물다가 돌아왔습니다. 다행히 적당히 구름이 낀 날이어서 운전하는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한 가지 해프닝이 있었는데 제가 선글라스 케이스를 가져간다는 것이 서두르는 바람에 면도기 케이스를 가져갔습니다. 선글라스를 쓰려고 케이스를 열었는데 면도기가 나와서 조금 당황했습니다. 왕복 8시간을 길 위에 있으면서 ‘길’에 대해서 잠시 생각했습니다. 길은 ‘길들이다.’라는 의미도 있다고 합니다. 길이 원래 있던 것이 아니라, 걷다 보니 길이 되는 거라고 합니다. 대관령도 미시령도 새로운 길이 나면서 옛길은 차량 통행이 적어지고, 그러다 보니 길이 잊혀지는 걸 보았습니다. 산보할 때도 그렇습니다. 매일 같은 길을 걷다보면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니 덜 피곤하고, 덜 피곤하니 산보가 즐겁습니다. 인류는 살아오면서 가축을 길들였습니다. ‘개, 양, 소, 말, 낙타, 닭, 고양이, 돼지’는 인류가 길들여서 같이 지내는 가축입니다. 신발도 처음에는 발에 익숙하지 않지만 자꾸 신으면 길이 들어서 편하게 신을 수 있습니다. 사제복도 처음에는 어색하지만 자꾸 입으면 사제복이 편하게 느껴집니다. 사람들은 편하고, 기능이 좋은 것을 선택하지만 때로는 조금 불편해도 익숙한 것을 선택할 때가 있습니다. 사랑하면 서로 닮는다고 합니다.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잘 키운 부부는 닮은 모습이 많습니다. 그만큼 서로에게 맞추면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선한 눈빛이 비슷하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말투가 비슷하고, 항상 감사하는 마음이 비슷합니다. 제가 본당 신부님께서 격려 방문한 것을 배웠듯이, 부주임 신부님도 언젠가 그렇게 하리라 생각합니다. 따뜻한 마음은 서로 통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나병환자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나병환자들이 많았습니다. 어떤 나병환자는 자포자기했습니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였습니다. 일그러진 자신의 모습만 보았습니다. 나병 때문에 영혼까지 병들고 말았습니다. 어떤 나병환자는 받아들였습니다. 자신이 나병환자가 된 것은 부모가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이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나온 나병환자는 스스로 비관하지 않았습니다. 부모의 죄나 자신의 죄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병환자는 자신이 그렇게 된 것은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병환자는 예수님을 찾아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병환자의 갈망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나병환자는 이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외모는 깨끗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몸도 건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외모와 건강만으로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깨끗하고 건강해야 합니다. 우리는 남의 눈에 있는 작은 허물을 보면서 어쩌면 우리의 내면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일부로 외면하는 때도 있습니다. 신앙은 어쩌면 하느님의 사랑에 길들여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앙은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길에 길들여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앙은 먼저 신앙의 길을 걸었던 성인, 성녀들의 삶에 길들여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길에 길들여졌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함께 하시지 않지만, 길들여진 제자들은 담대하게 복음을 선포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주님을 찾아가서 자신의 갈망을 이야기했던 나병환자처럼 우리들 또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혼을 치유해 주시도록 주님께 청하면 좋겠습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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