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수철 신부님_삶의 중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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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4-06-28 | 조회수109 | 추천수7 | 반대(0) 신고 |
“그리스도 예수님”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노라.”(시편23,1)
우리의 목자이신 주님은 우리 삶의 중심임을 고백하는 시편 성구입니다. 말마디를 바꾸어 “주님은 나의 목자 두려울 것 없노라”, “주님은 나의 목자 걱정할 것 없노라”, “주님은 나의 목자 불안할 것 없노라”로 고백해도 그대로 통합니다. 35년 동안 수도사제로 살아오면서 강론 주제중 참 많이 이용했던 주제가 “삶의 중심, 그리스도 예수님”일 것이며 오늘 강론 주제도 똑같습니다.
삶의 중심을 잃어 방황이요 혼란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삶의 중심에 모실 때, 삶의 중심인 주님께 날로 깊이 뿌리 내릴 때, 안정과 평화요, 불안과 두려움도 사라집니다. 베네딕도의 평화도 바로 삶의 중심인 하느님께 깊이 뿌리내리는 믿음의 정주서원을 통해 이뤄집니다. 오늘 옛 어른의 말씀입니다.
“어른이란 흔들릴 때마다,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존재다. 꾸미고 감추려는 마음을 덜어내야 진짜 어른이다.”<다산> “어른은 예가 아닌 예와 의가 아닌 의를 행하지 않는다.”<맹자>
노인은 많아도 어른은 드물고, 선생은 많아도 스승은 참으로 귀한 시대라 합니다. 보고 배울 어른이, 스승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어른중의 어른이, 스승중의 스승이 주 예수님이요 이런 주 예수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고 배우며 살아가는 우리들은 참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 영원히 보고 배울 스승이자 주님이 계신 것입니다.
“주님, 당신은 저의 전부이옵니다. 저의 사랑, 저의 생명, 저의 희망, 저의 기쁨, 저의 행복이옵니다. 하루하루가 감사요 감동이요 감탄이옵니다. 날마다 당신과 함께 새롭게 시작하는 아름다운 하루이옵니다.”
아무리 바쳐도 늘 새롭게 와닿는 우리 삶의 중심이신 스승이자 주님께 대한 사랑의 고백입니다. 바로 이런 주님과의 날로 깊어지는 사랑과 신뢰의 관계가 행복과 내적 힘의 원천임을 깨닫습니다. 이런 영원한 참 어른을 닮아갈 때 진짜 어른이요, 고맙게도 우리 가톨릭교회는 무수한 진짜 어른들이 있으니 바로 성인들입니다.
오늘 성 이레네오 주교 학자 순교자 기념일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22년 그리스도인 일치주간중인 1월21일 리옹의 이레네요 성인을 ‘일치의 학자’로 공식 선언함으로 교회의 37번째 학자가 됩니다. ‘일치의 학자’ 참 멋진 호칭입니다. 문득 며칠전 주고받은 메시지를 나누고 싶습니다. ‘내조의 여왕’이란 너무 멋진 호칭을 잊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찬미 예수님! 신부님, 약 40여명 시댁 가족들과 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꽃바구니 상을 받았습니다.” 꽃바구니 사진을 확대해 보니 “내조의 여왕 제현주님”이라 씌어 있었습니다. 시댁식구들에게 얼마나 인정을 받았기에 이런 칭호를 받았겠나 그 자매님이 존경스러웠고 즉시 답신을 보냈습니다. “아, 오래만에 반갑습니다. 40여명 시댁 가족들 모였다니 놀랍습니다. ‘내조의 여왕’ 참 멋진 호칭입니다. 축하드립니다. 늘 이렇게 사시고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레네오 성인을 교회학자로 선언하는 교령에서 말합니다. “위대한 스승의 교리를 통해 더욱더 많은 주님의 제자들이 완전한 일치를 향해 걷는 여정을 만들기를 바랍니다. 리옹의 이네네오는 동방에서 태어났고 서방에서 주교직무를 수행했으며, 동방과 서방의 그리스도인들을 영적 신학적으로 이어주는 다리가 됐습니다.”
이레네오 성인은 130년경 지금의 터키인 스미르나에서 태어났고, 요한 사도로부터 교육을 받은 성 폴리카포로 주교 순교자로부터 설교를 들은 뒤 사제품을 받습니다. 그가 리옹의 주교가 된 후 저술한 책에서 다음과 같이 적습니다.
“나는 소년시절 소아시아에 있으면서 성 폴리카르포 선생님의 슬하에서 배운 일이 있다. 나는 지금도 선생님께서 앉아계시던 곳, 그 가르치는 모습이나 가르치신 말씀, 그 걸어 다니던 모습이나 용모들을 뚜렷이 기억한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성 요한과 기타 주님을 친히 뵌 이들과 교제하던 말씀이나 주님에 대해서 즉 주님의 성덕, 그의 가르치심에 대해 그러한 사람들한테 전해들은 이야기등은 아직 나의 귀에 여전히 남아있다.”
사도교부들의 전통과 모범을 그대로 이어받은 성 이레네오 주교입니다. 성인은 170년경 현재의 프랑스 골 지역에 있는 리옹의 두 번째 주교가 된 이후 프랑스 지방에 만연된 영지주의 이단과 피나는 싸움을 전개했는데, 이때 쓴 저서가 <이단논박>에 이어 <사도적 선포의 논증>입니다.
성인은 이단사상의 정체를 적나라하게 폭로하면서 동시에 초기교회의 정통신앙을 확립합니다. 가톨릭교회의 수호자로 불릴 정도로 2세기 신학자들 중에서 가장 뛰어났으며, 특히 영지주의 계통의 이단들에 대항하여 정통교리를 수호한 대표적인 자랑스러운 교부입니다. 말그대로 이단들과 치열히 싸워 영적승리를 거둔 주님의 용사 성 이레네오 주교입니다. 오늘 성무일도시 즈가르야의 노래 후렴이 성인의 삶을 요약합니다.
“성 이레네오는 평화라는 그의 이름대로 교회에 평화를 확립하고, 그 평화를 위해 용감히 투쟁하였도다.”
참으로 그리스도 예수님의 빛나는 제자로서 전혀 손색이 없는 이레네오 주교입니다. 어제로서 마태5장-7장까지 산상설교는 끝나고, 오늘 8장부터 9장까지는 주님의 활약이 펼쳐집니다. 말씀의 권위가 이제는 행위의 권위로 들어납니다. 산에서 내려오자 맨먼저 다가온 이가 나병환자입니다. 참으로 삶의 중심이 되는 착한목자 예수님을 만나 치유 구원받은 복된 나병환자입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시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손을 대시며 말씀하십니다. 역시 ‘연민의 마음’, ‘권위있는 말씀’, ‘사랑의 스킨쉽’이 치유의 삼박자 원리임이 드러납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그러자 곧 나병이 깨끗이 나았다.
예나 이제나 늘 우리와 함께 계신 살아 계신 주님과의 만남이 치유의 구원임을 깨닫습니다. 삶의 중심인 주님을 만남으로 치유받은 나병환자는 이제부터 삶의 중심이신 주님 반석 위에 인생집을 짓게 되었습니다. 이어 예수님은 그에게 말합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령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예수님이 얼마나 구약의 율법을 존중하고 준수한, 살아 있는 전통의 사람인지 깨닫습니다. 율법에 대한 사랑은 그대로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표현이겠습니다. 말그대로 하느님의 아드님으로서 하느님 중심의 삶에 철저했던 우리의 주님이자 스승이신 예수님입니다.
이런 예수님이나 오늘 기념하는 성 이레네오 주교 학자 순교자와 비교할 때 제1독서 열왕기 하권의 유다임금 치드키야는 참으로 어리석었습니다. 하느님을 중심한 지혜와 겸손의 사람이었다면 이런 참화는 결코 겪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로 오늘 독서 앞에 나오는 대목 둘입니다.
‘치드키야는 여호야킴이 하던 그대로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질렀다.’(2열왕24,19) ‘그런데 치드키아가 바빌론 임금에게 반역하였다.’(2열왕24,20ㄴ)
치드키야의 어리석음이 자초한, 자업자득의 화로 바빌론의 침공으로 예루살렘은 초토화되며 두 아들은 살해되고, 그는 두눈이 뽑힌채로 청동사슬에 묶여 바빌론으로 끌려가니 비극의 절정입니다.
참으로 주님 중심의 삶에 충실함으로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삶이 되지 않도록 늘 깨어 살아야 함을 배웁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시간 주님을 우리 삶의 중심에 모시는 시간이요, 하늘에 보물을 쌓는 시간이자 우리 인생집을 주님 반석위에 짓는 복된 시간입니다.
“그리스도 우리의 병고 떠맡으시고 우리의 질병 짊어지셨네.”(마태8,17참조).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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