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시대, 가장 가련하고 불행한 부류의 사람들을 꼽자면, 첫 번째로 꼽을 사람들은 바로 나병환자들이었습니다. 사제로부터 나병 확진을 받는 순간, 그들은 성밖으로 강제 추방 당했습니다. 악성 피부병에 걸린 것만 해도 억울한데, 당시 사람들은 나병을 천형으로 여겼습니다. 뭔가 큰 잘못을 저지른 것에 대해 하느님께서 벌을 주신 것으로 여겼습니다. 하느님으로부터 벌을 받아 부정을 탄 사람이니만큼 성 밖에 나가서 살아야 했습니다. 길을 걸어가다가 혹시라도 인기척이라도 나면 사람들에게 주의하라는 표시로 이렇게 큰 소리로 두 번 외쳐야 했습니다. “부정한 사람입니다. 부정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산에서 내려오신 예수님 앞으로 한 나병 환자가 다가왔습니다. 사실 그 나병 환자가 예수님 가까이 다가왔다는 그 자체가 위법이었습니다. 당시 율법에 따르면 나병에 걸린 사람은 나병 환자라는 표시를 확실히 하기 위해서 멀쩡한 옷도 찢어 입어야 했습니다. 머리도 풀어 산발을 하고 다녀야 했습니다. 윗수염도 가려야 했습니다. 나병 환자들은 마치 성 밖 토굴 속이나 무덤가에서 마치 들짐승처럼 울부짖으며 살아가야만 했습니다. 더이상 내려갈 데가 없는 그였습니다. 인생의 막장 앞에 선 그였습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최후의 용기를 내어 예수님 앞으로 달려왔습니다. 모든 법적 장벽과 인간이 정한 규정을 무시하고 인간 세상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더 이상 그의 머릿속에는 율법이고 전통이고 필요 없었습니다. 오로지 예수님의 자비와 권능만을 믿고 달려온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 앞에 무릎을 털썩 꿇음으로서 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솔직히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안에 하느님의 능력이 작용하고 있다고 굳게 믿으며 있는 힘을 다해 이렇게 외칩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보통 사제들 같았으면 기겁을 하고 도망갔을 것입니다. 좀 나은 사제라면 근엄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겠죠. “이러면 안 되지. 자네 이거 불법인 거 잘 알지? 이렇게 막무가내로 행동하면 서로가 좋을 일 하나도 없네. 힘들겠지만 꾸준히 약 먹고 치료에 전념하게. 그리고 나중에 병이 진정되면 그때 한번 만나세.” 그러나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태도는 정말이지 놀랍습니다. 예수님은 상처와 진물투성이인 그의 몸에 다정하게 손을 얹습니다. 그리고 위엄에 찬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건강하고 순결한 예수님과 병들고 불결한 인간이 만납니다. 고상하고 맑은 정신의 예수님과 좌절과 원망뿐인 한 인간이 만납니다. 위엄으로 가득 찬 영광의 예수님과 얼굴을 땅바닥에 대고 엎드린 한 사람이 만납니다. 빛과 어둠의 만납니다. 생명과 죽음이 만납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인간의 비참이 정면으로 마주친 것입니다. 참으로 극명하게 대비되는 두 존재의 만남입니다. 그 결과는 마치 갓 태어난 아기 피부처럼 보송보송하고 깨끗한 피부입니다. 언젠가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 자비하신 하느님의 얼굴과 대면할 때도 결과는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 순간은 참으로 축복된 순간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 살아가면서 지은 모든 죄와 허물, 어둠과 상처는 하느님 자비의 얼굴과 마주치는 순간 화로 위에 던져진 눈송이처럼 순식간에 사라져버릴 것입니다. 인간의 비참은 사라지고 하느님의 자비와 영광만 남게 될 것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