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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영근 신부님_2024년 6월 28일 금요일 · 성 이레네오 주교 학자 순교자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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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글 사랑하시도록 내 맡겨라.  
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4-06-28 조회수96 추천수2 반대(0) 신고

 

제1독서
▥ 열왕기 하권의 말씀 25,1-12 

 

1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는 치드키야 통치 제구년 열째 달 초열흘날에, 전군을 이끌고 예루살렘에 와서 그곳을 향하여 진을 치고 사방으로 공격 축대를 쌓았다.
2 이렇게 도성은 치드키야 임금 제십일년까지 포위당하였다.
3 그달 초아흐렛날, 도성에 기근이 심해지고 나라 백성에게 양식이 떨어졌다.
4 드디어 성벽이 뚫렸다.
그러자 군사들은 모두 칼데아인들이 도성을 둘러싸고 있는데도, 밤을 틈타서 임금의 정원 곁에 있는 두 성벽 사이 대문을 통하여 아라바 쪽으로 갔다.
5 칼데아인들의 군대가 임금을 뒤쫓아 예리코의 들판에서 그를 따라잡자, 그의 모든 군대는 그를 버리고 흩어졌다.
6 그들이 임금을 사로잡은 다음, 리블라에 있는 바빌론 임금에게 데리고 올라가니, 바빌론 임금이 그에게 판결을 내렸다.
7 그는 치드키야의 아들들을 그가 보는 가운데 살해하고 치드키야의 두 눈을 멀게 한 뒤, 그를 청동 사슬로 묶어 바빌론으로 끌고 갔다.
8 다섯째 달 초이렛날,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 제십구년에 바빌론 임금의 신하인 느부자르아단 친위대장이 예루살렘에 들어왔다.
9 그는 주님의 집과 왕궁과 예루살렘의 모든 집을 태웠다.
이렇게 그는 큰 집을 모두 불태워 버렸다.
10 또한 친위대장이 이끄는 칼데아인들의 모든 군대는 예루살렘 성벽을 돌아가며 허물었다.
11 느부자르아단 친위대장은 또 도성에 남아 있던 나머지 백성과 바빌론 임금에게 넘어간 자들, 그리고 그 밖의 남은 무리를 끌고 갔다.
12 그러나 친위대장은 그 나라의 가난한 이들을 일부 남겨, 포도밭을 가꾸고 농사를 짓게 하였다. 

 


복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 8,1-4 

 

1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자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랐다.
2 그때에 어떤 나병 환자가 다가와 예수님께 엎드려 절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3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그러자 곧 그의 나병이 깨끗이 나았다.
4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령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설교의 가르침을 통하여 당신의 권위를 드러내심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열 개의 기적 이야기를 통하여 당신의 권위를 드러내십니다.

이는 마치 이집트에 내린 열 개의 재앙(탈출기 7,14-12,36)과 대비하여 예수님을 새로운 모세로 암시해줍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산상설교를 통하여 가르치신 바를 몸소 성취하십니다. 

결국 예수님의 하산은 당신이 구원해야 할 하느님의 자녀들에게로 오실 수밖에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은 나병환자의 치유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병환자의 치유를 통해 예언자 ‘엘리사의 활동’을 완성함으로써(2열왕 5,1-27), 당신이 메시아임을 드러내십니다.

나병환자는 <레위기>(13,45-46)에 따르면, 옷을 찢어 입고, 머리를 풀고, 윗수염을 가림으로써 자기가 죽은 사람과 다를 바 없음을 드러내야 했고, 공공장소나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에 나타날 수도 없었으며, 다른 사람과 접촉할 수도 없었습니다(민수 5,2-4). 

그래서 혹시 누군가가 자기에게 접근해 오면, “나는 부정한 사람이오. 나는 부정한 사람이오.”(레위 13,45)라고 외치면서 접근하지 못하도록 경고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오늘 복음에서는 나병환자가 예수님을 피해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가와서 무릎을 꿇고 애원합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구약의 법’과 예수님의 ‘복음의 차이’를 극렬하게 엿볼 수 있습니다.

곧 구약의 율법은 나병환자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할 뿐 그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것이 율법의 한계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에서는 나병환자이기 때문에,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예수님께 와서 치유를 받습니다. 
이처럼 복음은 우리가 죄인이고 불결한 사람이기 때문에 하느님께 나아갈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예수님께 다가가야 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병들었고 죄인이기에 때문에 오히려 감싸주시고 치료해주십니다.
복음은 이처럼 규정을 제시하기보다 사랑과 호의를 제시합니다. 

나병환자는 예수님께 청합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마태 8,2)

이는 주님의 치유의 능력을 믿으며, 그 능력의 행사는 자신이 아니라 주님께 달려있음을 인정하고, 오로지 주님의 처분에 온전히 의탁한다는 뜻입니다. 

나아가, 당신의 원의에 순명하겠다는 뜻을 나타냅니다. 

 

마치 겟세마니에서의 예수님께서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신 대로 하십시오.”(마태 26,39) 라고 하신 것처럼, 나병환자도 자신의 뜻이 아니라 주님 뜻에 순명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시고자 한다면’ 이라고 하면서, ‘자신의 바람이 아니라 당신의 바람이 이루어지소서!’ 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기도하는지요? 

자신의 바람을 하느님께 원하고 있는지요? 

아니면 하느님의 바람이 자신에게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지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병혼자를 만지셨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나병환자를 만지거나 접촉하면 부정을 타게 됩니다(레위 14,46).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나병환자에게 손을 내밀어 만지셨습니다.

 

예수님의 손은 구원의 힘을 드러내며, 그분의 신체적 접촉은 우정과 사랑을 드러냅니다.

예수님께서는 불결한 나병환자를 직접 접촉하심으로써 그에게 사랑을 베푸십니다.

 

나병환자를 접촉하시지만 부정을 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사랑’은 부정을 피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만져 깨끗하게 하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율법을 완성하시러 오신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규정보다도 율법의 정신인 사랑을 더 소중하게 여기십니다.

그리하여 당신께서는 불결함에 더럽혀지지 않는 '거룩하신 분'임을 드러내십니다.

곧 당신의 신성을 드러내시고, 당신이 '구원자'이심을 드러내십니다.

 

마치 호렙산의 불꽃 속에서도 타지 않는 떨기나무처럼(탈출 3,2), 아기를 낳으면서도 동정성을 잃지 않은 성모님처럼, 불결한 이를 만지면서도 불결해지지 않으시고 오히려 불결한 이를 거룩하게 하십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마태 8,3)

 

주님!

불순함으로 제 온 몸이 부스럼투성입니다.

죄와 상처로 속이 문드러지고, 마음이 병들었습니다.

불결하기에, 저는 망설이지만 당신은 오히려 불결하기에 다가오라 하십니다.

죄인이기에, 저는 숨지만 당신은 오히려 죄인이기에 용서받을 대상이라 하십니다.

당신께서 원하신 바를 이루소서.

제가 하고자 한 바가 아니라, 당신이 하고자 한 바를 이루소서!

저의 희망이 아니라, 당신의 희망을 이루소서.

오, 주님!

당신이 원하신 것을 제가 원하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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