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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송영진 신부님_<예수님은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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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4-06-28 조회수85 추천수3 반대(0) 신고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자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랐다.

 

그때에 어떤 나병 환자가 다가와 예수님께 엎드려 절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그러자 곧 그의 나병이 깨끗이 나았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령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마태 8,1-4)”

 

 

 

1) 여기서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는,

 

“저의 병을 고쳐 주실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입니다.

 

이 믿음은, 예수님의 ‘권능’에 대한 믿음입니다.

 

바로 앞에 있는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이라는 말도,

 

예수님의 ‘권능’에 대한 믿음을 나타내는 말인데,

 

‘주님께서 하고자 하시는지, 아닌지’에 대한 확신은

 

없다는 것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이라는 말은,

 

예수님의 ‘자비’에 대한 믿음은 아직 부족하거나

 

없다는 것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신앙은, 예수님의 ‘권능’에 대한 믿음과

 

‘자비’에 대한 믿음이 합해져 있는 신앙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나의 병을 고쳐 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신 분”이라는 믿음과 “예수님은 나를 가엾게

 

여기시는 분”이라는 믿음이 모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예수님의 권능만 믿고 자비를 안 믿는다면,

 

예수님에게 복종하기는 해도 사랑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이 없으면 그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믿음이 아닙니다.

 

반대로, 예수님의 자비는 믿지만 권능을 안 믿는다면,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는 것이 아닌 것이고,

 

그러면 그것 또한 믿음이 아닙니다.

 

 

 

2) “내가 하고자 하니”의 원문은, “나는 원한다.”인데,

 

그 병자가 청하지 않았어도 당신이 먼저 원하신 일이기

 

때문에 병을 고쳐 주신다는 것을 나타내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당신의 자비와 권능을 동시에 나타냅니다.

 

<권능은 있지만 자비가 없다면 원하지 않았을 것이고,

 

반대로, 자비는 있지만 권능이 없다면,

 

원한다는 말이 빈말이 되어버립니다.>

 

예수님은 하느님과 같은 권능을 가지고 계신 분이신데,

 

이 세상에 오신 것은 당신이 원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다시 살리시는 것처럼,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이들을 다시 살린다(요한 5,21).”

 

“저의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고

 

아버지의 것은 제 것입니다(요한 17,10).”

 

이 말씀들은, 예수님의 자비와 권능은 곧

 

하느님의 자비와 권능이라는 것을 잘 나타냅니다.

 

우리가 자비를 청하기도 전에 먼저 우리를 가엾게

 

여기셔서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시는 예수님은,

 

하느님의 권능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섬깁니다.

 

 

 

3) 누가 청하기도 전에 예수님께서 먼저 가엾게 여기시고,

 

자비를 베풀어주신 일들이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고을 성문에 가까이 이르셨을 때,

 

마침 사람들이 죽은 이를 메고 나오는데, 그는 외아들이고

 

그 어머니는 과부였다. 고을 사람들이 큰 무리를

 

지어 그 과부와 함께 가고 있었다. 주님께서는 그 과부를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에게, ‘울지 마라.’ 하고

 

이르시고는, 앞으로 나아가 관에 손을 대시자

 

메고 가던 이들이 멈추어 섰다.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루카 7,12-14)”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들 가운데에 있는 병자들을

 

고쳐 주셨다(마태 14,14).”

 

 

 

4) “예수님께서는 왜 병 자체를 없애시지 않고,

 

병자들을 고쳐 주기만 하셨을까?” 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뒤에도 여전히

 

인간들은 생로병사의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무엇이 어떻게 바뀌었을까?

 

바뀐 것이 있기나 한 것인가?” 라고 물을 수도 있습니다.

 

믿음 없는 사람들의 눈에는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는 것으로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눈에는 예수님께서 주신 ‘희망’이 보입니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까?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로마 8,24-25).”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쳐 주신 일은,

 

병자들에게 일시적인 진통제만 주시고 그친 일이 아니라,

 

“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는”(묵시 21,4) 하느님 나라를

 

미리 체험하게 해 주신 일이고,

 

그 나라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주신 일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지상의 인생을 살면서 겪는 고통들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인간이 겪는 고통 자체는 아직도 수수께끼, 즉 신비입니다.

 

그러나 ‘그날’이 되면 모든 것을 깨닫고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시련을 견디어 내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렇게 시험을

 

통과하면, 그는 하느님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화관을 받을 것입니다(야고 1,12).”>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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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연중 제12주간 금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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