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송영진 신부님_<반석이 될 것인가? 걸림돌이 될 것인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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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4-06-29 | 조회수73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 16,15-19)”
1)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일에 대해서,
“교회의 반석으로 임명 받은 사도가 어찌 그럴 수가 있는가?”
라고 말할 수도 있고, “그렇게 위대한 사도가
그럴 정도였으니......” 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무엇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서, 표현이 다르게 되고,
부각시키는 점이 다르게 되고,
그 일에 대한 판단이 다르게 됩니다.
“어찌 그럴 수가 있는가?”는, 베드로 사도의 잘못에 초점을
맞춘 말이고, 그의 부족했던 점만 부각시킨 말입니다.
만일에 그렇게만 말하고 그친다면, 그는 전체 교회를 다스릴
자격이 없다고 일방적으로 판단하는 데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러나 “그렇게 위대한 사도가 그럴 정도였으니......” 라는
말은,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에 초점을 맞춘 말이고,
사도들이 맞서기에는 십자가 수난이 너무나도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었음을 부각시키는 말입니다.
그리고 베드로 사도가 당신을 세 번이나 부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그를 교회의 반석으로 임명하신 일과
그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신 일을 취소하지 않으셨다는
것에 연결시키면, 베드로 사도의 잘못은, 그의 자격을
문제삼을만한 일은 아니었다고 해석할 수 있게 됩니다.
2) 따라서 베드로 사도가 교회의 반석으로 임명 받은 일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일에 연결할 일이 아니라,
‘걸림돌’이라고 혼난 일에 연결해서 생각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반드시 예루살렘에 가시어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흗날에 되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기 시작하셨다.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하였다. ‘맙소사, 주님!
그런 일은 주님께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마태 16,21-23)”
여기서 “그런 일은 주님께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는,
“주님, 그러시면 안 됩니다.” 라고 말리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사탄이라고 부르신 것은,
그의 행동이 사탄의 행동과 같다는 뜻입니다.
“내게서 물러가라.”는 “내 뒤로 가라.”,
즉 “제자의 본분을 지켜라.”입니다.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라는 말씀은, 그의 행동은
예수님께서 가시는 길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된다는 뜻입니다.
<제자로서 예수님께서 가시는 길을 뒤따라가면 ‘반석’이 되고,
앞에서 가로막으면 ‘걸림돌’이 됩니다.>
베드로 사도가 무슨 사심을 품고 예수님을 가로막은 것은
아니고, 스승에 대한 사랑과 존경심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인데,
그것은 하느님께서 하시는 구원사업은 생각하지 않고
인간적인 감정만으로 행동한 것입니다.
<하느님의 일만 생각하면 반석이 되고,
인간적인 감정만 앞세우면 걸림돌이 됩니다.>
3) 바오로 사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하필이면 그런 박해자를 사도로
삼으셨을까?” 라고 말할 수도 있고, “예수님께서 그런
박해자를 위대한 사도로 변화시키다니, 놀라운 일이다.” 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박해자였다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면,
하느님의 섭리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외면하는 일이 되고,
그가 위대한 사도였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면, 하느님의
섭리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의 위대함을 부각시키게 됩니다.
4) 베드로 사도가 처음부터 완벽한 반석이었던 것은
아니라는 것과 바오로 사도가 처음부터
위대한 사도였던 것은 아니라는 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이
되면서 동시에 큰 위안을 주는 일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반석이었는데, 잠깐 걸림돌이 되었다가,
다시 반석으로 회복되었습니다.
누구든지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지금 반석과 같이 단단하고 강하게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더라도, 언제 추락해서 걸림돌이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반대로 지금 걸림돌처럼 살고 있어도
회개해서 반석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래서 참으로 반석인지, 나쁜 걸림돌인지는
‘끝까지’ 가봐야 압니다.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운명 같은 것은 없습니다.
운명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부르심에 응답하는 일은, 한 번에 끝나는 일이 아니라,
날마다 끊임없이 해야 하는 일이고, 최선을 다해서
끝까지 해야 하는 일입니다.>
또 바오로 사도를 생각하면, 우리가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자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마태 5,44) 이유를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박해자도 회개하면 위대한 사도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 [출처]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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