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마태9,9-17) | |||
---|---|---|---|---|
이전글 | [연중 제13주간 토요일] 오늘의 묵상 (김재덕 베드로 신부) | |||
다음글 | 예수고난회 김준수 신부님 성녀 마리아 고레티 동정 순교 기념(연중 제13주간 토요일): 마 ... | |||
작성자김종업로마노 | 작성일2024-07-05 | 조회수50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2024년 07월 06일 토요일 [연중 제13주간 금.토요일]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복음(마태9,9-17) 9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마태오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마태오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 육의 생존, 안식을 위해 앉았던 세관(稅官), 곧 세금을 부당하게 걷었던 그 세리(稅吏)의 삶이 죄악임을 인정하는 자기 버림, 부인(否認)으로 그 자리를 떠나 참 안식, 참 생명의 주님을 따른 것이다.
10 예수님께서 집(성전)에서 식탁에 앉게 되셨는데, 마침 많은 세리와 죄인도 와서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자리를 함께하였다. 11 그것을 본 바리사이들이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당신네 스승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12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13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 자신의 뜻을 위해 스스로 준비한 제물을 드리는 제사(祭祀), 곧 제사와 윤리의 옛 계약, 그 인간의 행위로 얻는 의(義), 구원이 아니라 희생 제물, 죄인들의 속죄 제물로 오셔서 십자가(十字架)에서 대속으로 죽으심으로 제사를 완성하셨고, 그래서 더 이상 제사 제물이 필요 없게 되었고(히브10,18), 죄인들을 거저 의롭게 하시는 그 하느님의 자비인 대속, 그 ‘피의 새 계약을 먼저 깨달아라.’ 하시는 것이다.
(히브10,9-10) 9 그다음에는 “보십시오,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 것(새 계약)을 세우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첫 번째 것(옛 계약)을 치우신 것입니다. 10 이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로마3,20-21) 20 어떠한 인간도 율법(제사와 윤리, 옛 계약)에 따른 행위로 하느님 앞에서 의롭게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통해서는 죄를 알게 될 따름입니다. 21 그러나 이제는 율법과 상관없이 하느님의 의로움(대속, 새 계약)이 나타났습니다. 이는 율법과 예언자들이 증언하는 것입니다. = 그래서 “하느님께 영광 그리고 땅에서 평화”다(루가2,14) 곧 우리의 모든 죄악들, 더러운 양심까지 깨끗이 씻어 구원하시기 위해 외아들 그리스도를 저주(詛呪)의 십자가(十字架)에 달리어 피를 흘리게 하신(히브10,22) 그 피의 새 계약 안에 하느님의 은혜, 자비, 사랑을 깨달아 믿게 되면, 하느님께 먼저 감사. 찬미, 영광을 드리는 삶을 살게 되고, 그것이 땅에는 평화, 안식인 것이다.
(이사43,7-8) 7 “나의 영광을 위하여 내가 창조한 이들, 내가 빚어 만든 이들을 모두 데려오너라. 8 눈이 있어도 눈먼 이 백성을, 귀가 있어도 귀먹은 이자들을 나오게 하여라.”
14 그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 그리스도의 대속, 그 피의 새 계약의 말씀으로 눈 멀고, 귀 먹은 이들이 인간의 뜻, 자기 의(義), 안식을 위한 단식을 말하고 있다.
1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대속의 죽음)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 신랑이신 예수님께서 율법에 의해 죽으시면 당신의 신부들인 제자들, 곧 믿는 이들이 하느님 앞에 생명, 의로움이 되지 못하는 율법의 행위들을 단식(斷食)하게 된다는 말씀이다. 곧 그리스도의 대속, 그 피의 새 계약으로 옛 계약의 결박(結縛), 죄(罪)에서 풀려 자유롭게 하는 올바른 참 단식을 하게 된다는 말씀이다.
(이사58,6-7) 6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 불의(율법)한 결박을 풀어 주고 멍에 줄을 끌러 주는 것, 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내보내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이다. 7 네 양식(새 계약의 말씀)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성전, 교회)에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 주고 네 혈육(이웃)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 = 이웃 사랑을 위해서 내가 먼저 그리스도의 대속, 그 새 계약의 말씀을 담은 새 그릇, 믿는 새 사람이 되어야 한다.
(2코린4,7) 7 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그 엄청난 힘은 하느님의 것으로, 우리에게서 나오는 힘이 아님을 보여 주시려는 것입니다.
(2코린5,17) 17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 = 옛 계약의 신앙 생활을 하면서, 곧 미사를 사람의 뜻, 의(義), 소원을 위한 제사로 드리면서, 또한 전례(典禮 주일과 기념, 축일) 행위에 열심을 부리며 만족해 한다면(이사1,13-15) 대속(代贖), 그 피의 새 계약이 주는 하늘의 용서, 의, 생명, 자유를 믿지 못해, 누릴 수 없게 되고, 땅에서도 평화를 누릴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반드시 옛 계약, 옛 생활에서 나와야 한다. 옛 계약의 행위의 신앙인 그 옛 사람을 벗어야(부인해야)한다는 것이다.
(골로2,20-23) 20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 이 세상의 정령들에게서 벗어났으면서도, 어찌하여 아직도 이 세상에 살고 있는 것처럼 규정에 얽매여, 21 “손대지 마라, 맛보지 마라, 만지지 마라.” 합니까? 22 그 모든 것은 쓰고 나면 없어져 버리는 것들에 대한 규정으로, 인간의 법규와 가르침에 따른 것들일 뿐입니다. 23 그런 것들은 자발적인 신심과 겸손과 육신의 고행을 내세워 지혜로운 것처럼 들리지만, 육신의 욕망(자기 副因)을 다스리는 데에는 아무런 가치도 없습니다.
16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옛 계약, 나)에 대고 꿰매지 않는다.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지기 때문이다. 17 또한 새 포도주(피의 새 계약)를 헌 가죽 부대(옛 계약, 나)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부대(나)가 터져 포도주(새 계약의 말씀)는 쏟아지고 부대(나)도 버리게 된다. = 옛 계약의 열심인 나와, 그리스도의 대속, 그 피의 새 계약을 믿는 내가 섞여서는 존재(存在)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곧 양다리 신앙을 살면 영원한 멸망, 죽음이라는 것이다. 미사(Missa ‘보내다, 파견하다’)를 다른 민족들이 추구하는 인간의 뜻, 소원을 위한 제사로 드리면 안 된다는 것이다.(마태6,7-8. 31-32참조) 미사(Missa - 에우까리스티아, 感謝祭 ‘보내다, 파견하다’)는 외아들 그리스도를 속죄 제물로 내어 주시어 옛 계약, 그 율법의 죄를 대속(代贖)하게 하심으로 거저 은총, 은혜로 하늘의 용서, 구원을 주시는 그 피의 새 계약을 이루신 하느님의 사랑에 감사와 영광을 드리는 찬양의 예배(禮拜)인 것이다.(마태6,33 요한4,23참조)
17ㄴ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그래야 둘 다 보존된다.” = 새 포도주(葡萄酒)인 피의 새 계약은 옛 계약의 ‘나’를 벗는, 짓는, 그 자기 부인(否認)하는 새 마음(부대)에 담아야 한다. 그래야 하느님의 말씀도, 사람도, 보존이 된다. 곧 ‘하느님께 영광 땅의 평화’다. 하느님 나라의 완성(完成)이다.
(루가17,20-21) 20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에게서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는 질문을 받으시고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21 또 ‘보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사람들이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아멘)
(요한14,16-20) 16 내가 아버지께 청하면, 아버지께서는 다른 보호자를 너희에게 보내시어, 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도록 하실 것이다. 17 그분은 진리의 영이시다. 세상은 그분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그분을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너희는 그분을 알고 있다. 그분께서 너희와 함께 머무르시고 너희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18 나는 너희를 고아로 버려두지 않고 너희에게 다시 *오겠다. 19 이제 조금만 있으면, 세상은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나(성령)를 보게(호라우-깨닫게) 될 것이다.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20 그날, 너희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또 너희가 내 안에 있으며 내가 너희 안에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아멘)
<사제(司祭)께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도 자신들이 만들었던 세상적인 우상(偶像)들에 쓰러지는 우리의 나약함을 발견합니다. 이러한 나약함 때문에 만사(萬事)에서 하느님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주님을 찾는 마음이 간절하면 할수록 세상에 숨겨진 하느님이 나와 동행하시는 하느님으로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필요할 때만 하느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고아로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영원한 보호자(아빠, 엄마)로 함께 하시어 생명, 진리의 길로 이끄시어 이 세상에서부터 하늘을 살게 하시니 감사하나이다. 저희 모두의 마음과 발길을 의탁합니다. 내버려두지 마소서.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