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수철 신부님_하느님의 참 좋은 선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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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4-07-11 | 조회수139 | 추천수8 | 반대(0) 신고 |
“성 베네딕도 아빠스에 대한 자랑”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행복하여라, 그분께 몸을 숨기는 사람!”(시편34,9)
오늘 미사중 화답송 후렴이 우리를 행복하게 합니다. 오늘은 유럽인들은 물론 가톨릭 신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늘 옛스러우면서도 늘 새로운'(ever old, ever new) 인물인 유럽의 수호자 성 베네딕도 아빠스 대축일입니다. 아무리 자랑해도 샘솟듯 마르지 않는 샘물같은 분입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성인 자랑에 돌입하겠습니다. 자랑하면서 닮는다는 말도 있듯이 저도 성인을 닮고 싶습니다.
제 주특기가 자랑입니다. 특히 하느님 자랑, 예수님 자랑, 교회 자랑, 성모님 자랑, 성인 자랑, 형제들 자랑입니다. 이런 자랑보다 정신 건강에 좋은, 유쾌한 자랑은 없고 이런 자랑보다 큰 행복도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사제서품 35주년을 맞이하여 그동안 했던, 이젠 바다가 된 강론들 모두가 이런 자랑들로 가득했음을 봅니다.
오늘의 입당송이 성 베네딕도의 삶을 압축 요약합니다. “베네딕도는 그 이름대로 복을 받아 거룩하게 살았네. 그는 가족과 유산을 버리고, 오로지 하느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려고 거룩한 수도생활을 추구하였네.”
오늘의 옛 어른들의 말씀도 그대로 성 베네딕도의 모습에 대한 묘사같습니다. “어른스러움이란 곧 관대함이다. 타인에 대한 너그러움은 자신에 대한 엄격함에서 나온다.”<다산> “군자는 세 번 변한다. 멀리서 바라보면 위엄이 있고, 가까이 다가가면 온화하며, 말을 들어보면 엄정하다.”<논어>
저녁성무일도시 아름다운 독서와 계응송도 그대로 성인의 삶을 압축하는 듯 했습니다. “그분은 위대한 증거자로다. 그는 구름들 사이에 있는 아침 별과 같고 보름의 둥근 달과 같도다. 그는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전 위에 비치는 태양과 같고 영광의 구름에 걸린 무지개와 같도다.”<집회50,5-7> “하느님의 사람, 베네딕도는 슬기로운 절제와 명쾌한 표현으로 규칙서를 저술했도다. 이 거룩한 사람은 자기가 체험하지 않은 것을 남에게 가르칠 수 없었도다.”<계응송>
성 베네딕도 자랑의 절정은 복음 낭독전 흥겹게 함께 노래한 부속가일 것입니다. 길다싶지만 은혜로운 내용이라 전부 인용합니다.
“새빛 선물 가져오는 위대하온 지도자를 기념하는 대축일, 성총받은 그 영혼이 노래하는 찬미가는 마음속에 울리네. 동쪽길로 올라가는 아름다운 성조용모 감탄 울려 퍼지네. 태양같은 생명으로 많은 후손 얻은 그는 아브라함같도다. 작은굴에 있는 그를 까마귀의 복사로써 엘리야로 알리네. 강물에서 도끼건진 성 분도를 엘리사 예언자로 알도다. 무죄덕행 요셉같고 장래일도 알아내니 야곱처럼 알도다. 그의 생각 지극하여 예수님의 영복소에 우리 인도하소서.”
후배 수도승들이 세세대대로 얼마나 흠모사랑한 성인인지 부속가 전부가 감동적입니다. 어제 저녁 아름다운 무지개 선물을 받았는데 흡사 성인 임종후 올라가신 하늘길을 상징하는 듯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제 좋아하는 성인이 베네딕도와 약 600년 후대의 프란치스코인데, 그대로 '성 베네딕도 수도회 프란치스코 수사'라는 제 신원에 긍지를 느낍니다. 이를 노래한 짧은 자작시 역시 제 복된 신원을 드러냅니다.
“밖으로는 산, 밖으로는 성 베네딕도, 천년만년 임기다리는 정주의 산, 성 베네딕도 안으로는 강, 안으로는 성 프란치스코, 천년만년 임향해 흐르는 맑은 강, 성 프란치스코”
산과 강의 보완관계처럼 성 베네딕도와 성 프란치스코도 그러합니다. 밖으로는 산같은 성 베네딕도를, 안으로는 강같은 성 프란치스코를 닮고 싶은 것이 제 간절한 염원이요, 결국은 예수님을, 하느님을 닮고 싶은 것입니다. 오늘 말씀 배치도 성인 자랑에 잘 드러맞습니다.
첫째, 성인은 “사랑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참 좋은 사랑의 선물입니다. 단숨에 읽혀지는 오늘 제2독서 바오로의 말씀이 흡사 사랑의 찬가를 연상케 합니다. 그대로 성 베네딕도가 살았던 모습입니다.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 거룩한 사람, 사랑받는 사람답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입으십시오.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참아주고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입으십시오. 사랑은 완전하게 묶어 주는 끈입니다.”
바로 이런 사랑의 성인이 베네딕도입니다. 이어 계속되는 평화의 사랑, 감사의 사랑, 말씀의 사랑 또한 베네딕도에게 해당됨을 깨닫습니다.
둘째, 성인은 “지혜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참 좋은 지혜의 선물입니다. 제2독서에서 바오로는 “지혜를 다하여 서로 가르치고 타이르십시오.” 권고합니다. 사랑과 지혜는 함께 갑니다. 사랑이 지혜이고 지혜가 사랑입니다. 참사랑에서 샘솟는 지혜입니다. 그래서 분별의 잣대는 사랑이라 하는 것입니다. 바로 사랑에서 분별력의 지혜가 나옵니다. 참으로 평생 지혜를 추구했고 지혜를 사랑한 성인이었습니다. 역시 단숨에 읽혀지는 잠언의 말씀도 그대로 성인의 모습같습니다.
“지혜에 네 귀를 기울이고 슬기에 네 마음을 모은다면, 그래, 네가 예지를 부르고 슬기를 향해 네 목소리를 높인다면, 네가 은을 구하듯 그것을 구하고 보물을 찾듯 그것을 찾는다면 그때에 너는 주님 경외함을 깨닫고 하느님을 아는 지식을 찾아 얻으리라. 주님께서는 지혜를 주시고 그분 입에서는 지식과 슬기가 나온다.”
주님은 이런 지혜의 사람들의 방패가 되어 주시고 이들의 앞길을 보살피십니다. 그리하여 지혜로운 이들은 정의와 공정과 정직을, 모든 선한 일을 깨닫고 그대로 이를 실천하니 지혜는 바로 사랑임을 깨닫습니다.
셋째, 성인은 “따름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참 좋은 선물이 따름입니다. 사랑의 버림, 사랑의 떠남, 사랑의 따름입니다. 참으로 사랑하는 주님을 만날 때 저절로 점차 버리게 되고, 떠나게 되고, 주님만을 따르게 됩니다. 베네딕도의 삶의 여정도 그대로 복음의 사도 베드로와 일치됨을 봅니다. 성인의 평생 여정도 자발적 사랑에서 기인된 버림의 여정, 떠남의 여정, 따름의 여정으로 요약됩니다. 참으로 성인은 주님을 향해 끊임없이, 한결같이, 묵묵히 버리고 떠나 따랐던 평생 삶이었습니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니 저희는 무엇을 받겠습니까?”
주님은 베드로에게 현세의 풍성한 축복은 물론 영원한 생명도 받을 것이라 확약하셨는데, 베네딕도가 받은 축복도 베드로 못지 않습니다. 성인의 무수한 후예들인 수도승들의 활약은 얼마나 주님을 기쁘게 했고 교회를 풍요롭게 했는지 상상을 초월합니다. 교회 하늘을 환히 밝히는 태양같은 성 베네딕도 아빠스입니다. 아주 예전 저녁 불암산에 감동하며 써놨던 시도 생각납니다.
“아 크다, 깊다, 고요하다, 저녁 불암산!”
저녁 침묵의 불암산이 상징하는바, 평생 큰 사랑, 깊은 지혜로 고요히 묵묵히 주님을 따랐던, 참으로 멋지고 아름다운 성 베네딕도 아빠스입니다. 고요한 물은 깊이 흐르고, 깊은 물은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날마다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겸손한 사랑과 지혜로 항구히 주님을 따랐던 성인을 닮게 합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이에게는 아쉬움이 없으리라. 부자들도 궁색해져 굶주리게 되지만, 주님을 찾는 이에게는 좋은 것뿐이리라.”(사편34,10-11).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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