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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영근 신부님_“나는 세상에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마태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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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4-07-14 조회수105 추천수2 반대(0) 신고

* 오늘의 말씀(7/15일) : 연중 15 주간 월요일, 성 보나벤투라 주교학자 기념일

* 제1독서 : 이사 1, 10-17

* 복음 : 마태 10, 34-11, 1

34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35 나는 아들이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갈라서게 하려고 왔다. 36 집안 식구가 바로 원수가 된다. ”

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38 또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39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40 “너희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고, 나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41 예언자를 예언자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예언자가 받는 상을 받을 것이고, 의인을 의인이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의인이 받는 상을 받을 것이다. 42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그가 제자라서 시원한 물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11, 1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에게 다 지시하시고 나서, 유다인들의 여러 고을에서 가르치시고 복음을 선포하시려고 그곳에서 떠나가셨다.

* 오늘의 강론 : “나는 세상에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마태 10,34)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사도들을 파견하시면서 하신 말씀하십니다.

“나는 세상에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마태 10,34)

분명, 예수님께서는 “평화의 왕”일진데, 어째서 평화에 칼이 필요한가? 그것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세상의 평화와 다르기 때문입니다. 병든 환자에게는 수술이 필요한 까닭입니다. 우리 심장에 꽂혀 우리의 안주와 이기심을 도려내고, 세상에 꽂혀 세상의 불의와 부정을 절단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우리 가슴에 꽂혀 우리를 살리는 칼이요, 이 세상에 던져져 이 세상을 살리는 칼입니다. 죽이기 위한 칼(살인검)이 아니라, 살리기 위한 칼(활인검)입니다. 그래서 산상설교에서 말씀하십니다.

평화로운 사람이 행복한 것이 아니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마태 5,9) 곧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행복하다”

그렇습니다. 당신의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칼을 주십니다. 이처럼, 말씀은 우리에게 변혁을 요청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복음서>는 한 권의 혁명서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성령을 받고 뒤집혀진 혁명가들입니다. 그리고 “참 행복선언”을 선언하는 진복팔단은 혁명선언서입니다. 그것은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혁명입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강론(2013.11.15)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그리스도인이 혁명가가 아니라면, 그는 더 이상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은총의 혁명가가 되어야 합니다. 참으로 아버지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은총은 우리를 혁명가가 되게 만듭니다.”

이 혁명은 진리의 말씀인 쌍날칼에 의해 실행되는 혁명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사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속셈과 생각을 갈라냅니다.”(히브 4,12)

‘내 칼을 받아라.’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의 칼’을 선사하십니다. 그것은 ‘타인에게’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던져라’고 주는 칼입니다. 자기 자신의 심장에 던지라고 주는 칼입니다. 사실, 중병에 걸린 환자에게 필요한 것은 금은보석의 값비싼 선물더미가 아니라, 그를 수술할 수 있는 칼인 것입니다. 병든 몸에다 금은보석으로 치장했다 해서 결코 행복해 지는 것이 아니듯, 병자는 칼로 병을 도려내는 수술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할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참으로 예수님께서 던지신 칼이야말로 죽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살리기 위한 칼입니다. 평화를 이루기 위한 칼이요, 말씀을 이루기 위한 쌍날칼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내 목에 칼을 견주시고, 말씀하십니다.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은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마태 10,39)

이처럼, “제자의 길”은 그야말로 도전입니다. 결코 양다리를 걸칠 수도, 두 주인을 섬길 수도 없는, 아니 자신의 목숨마저 내 걸어야하는 도전입니다. 그것은 사도 요한의 권고대로, “말과 혀가 아닌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하는 사랑”(1요한 3,18 참조)입니다. 아멘. 

 

“나는 세상에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마태 10,34)

주님!

제 목에 칼을 견주소서.

당신 영의 칼로 저의 자애심을 내리치소서!

제 심장에 당신 사랑의 불꽃이 타오르게 하소서!

그 어느 것도 당신보다 더 사랑하지 말게 하소서!

말과 혀로써가 아니라,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하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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