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수철 신부님_하늘 나라의 삶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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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4-07-24 | 조회수156 | 추천수7 | 반대(0) 신고 |
“한결같은 신망애(信望愛)의 삶”
“주 하느님, 당신은 저의 희망, 어릴 적부터 당신만을 믿었나이다.”(시편71,5)
오늘부터 시작되는 마태복음 13장은 하늘나라의 비유들로 가득합니다. 흡사 살아 있는 보물창고를 발견한 듯 마음 부자가 된 듯 뿌듯한 느낌입니다.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필두로 가라지의 비유, 겨자씨의 비유, 누룩의 비유, 보물의 비유, 진주 상인의 비유, 그물의 비유들로 가득합니다.
이 하늘 나라의 비유들을 보면 예수님의 삶이 보입니다. 하늘 나라의 신비를 은연중 헤아릴 수 있고 하늘 나라의 신비를 살 수 있습니다. 하늘 나라는 죽어 가는 나라가 아니라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살아야 하는 나라임을 깨닫습니다. 지금 여기서부터 하늘 나라를 살지 못하면 죽어서도 못삽니다.
어제 예수성심자매회 모임이 있었습니다. 요셉수도원을 사랑하는 자매들의 모임으로 2004년 태동됐으니 올해로 무려 20년이 됩니다. 20여년 동안 한결같이 신망애의 삶을 살아온 자매들의 성숙된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그대로 하늘 나라의 신비를 사는 모습들입니다. 함께 찍은 사진안에서 평화로 빛나는 모습이 이를 입증합니다. 사진 밑에 달아드린 댓글입니다.
“모두가 꽃처럼 아름다워요! 모두가 멋집니다. 감사드리며 축하드립니다! 날로 예수성심의 사랑으로 빛나는 신비롭고 거룩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새삼 하늘 나라의 신비는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살아내야 할 신비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하늘 나라의 비유 첫 번째는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입니다. 하늘 나라의 삶은 바로 한결같은 신망애의 삶임을, 결코 현 상황에 일희일비하는, 경거망동하는 삶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는 그대로 하늘 나라를 살았던 예수님의 삶을 반영합니다. 예수님은 평생을 씨뿌리는 사람처럼 한결같이 하늘나라를 선포하며 살았습니다. 우리 수도자들 역시 평생 묵묵히 씨뿌리는 자세로 시편성무일도와 미사 공동전례기도를 바칩니다. 저 역시 한결같이 씨뿌리는 삶의 자세로 묵묵히 평생 매일 강론을 씁니다.
저는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대할 때는 프랑스의 장 지오노가 1953년 발표한 ‘나무를 심은 사람’이란 동화가 생각납니다. 이 동화는 프로방스의 알프스 끝자락에 있던 어느 황량한 계곡에서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보아주지 않아도 양치기 노인이 반백년 동안 꾸준히 나무를 심어 결국에는 울창한 숲으로 변모했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말그대로 하늘 나라의 꿈을 실현할 목적으로 묵묵히 정주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의 모범이 되는 주인공으로 그대로 오늘 복음의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의 주인공 예수님을 닮았습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던중 떠오른 두편의 자작시입니다. 먼저 ‘봄觀’이란 시를 소개합니다.
“전체를 보는 것이다 삶은 흐른다 애정어린 시선으로 보는 것이다 기다리는 것이다 아버지의 뜻을 헤아리는 것이다 가을의 황홀과 겨울의 적요 빛과 어둠, 생명과 죽음, 희망과 절망, 건강과 병듬 강함과 약함, 아름다움과 추함 함께 받아들이는 것이다 사랑하는 것이다”<1998.11.4.>
예수님의 멀리 넓고 깊게 보는 시선도 분명 그러했을 것입니다. 결코 현 상황에 비관도 일희일비도 없었을 것입니다. 매사 믿고 희망하고 사랑하며 최선을 다하는 진인사대천명의 긍정적 삶이었을 것입니다. 어떤 환경이든 원망도 절망도 실망도 않는 삶입니다.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는 고인이 된 노대통령의 말마디도 생각납니다. 한치도 내다볼수 없는 삶, 살다보면 본의 아니게 씨뿌리는 비유에 나오는 길바닥 같은 환경도, 돌밭같은 환경도, 가시덤불같은 환경도 있겠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닐 것입니다. 복음 말씀이 이를 입증합니다.
“그러나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었는데,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서른 배가 되었다.”
바로 언젠가 좋은 땅의 풍요로운 수확도 이러할 것이란 희망입니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꾸준히, 묵묵히 알게 모르게 행했던 선한 삶의 행적들은 어디선가 지금 풍요로운 열매를 맺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결론하여 ‘절망은 없다’는 것입니다. 복음 마지막 말마디도 강렬합니다.
“귀 있는 사람은 알아들어라!”
하늘 나라가 펼쳐지는 삶 전체를 볼 뿐 아니라, 마음의 귀를 열어 침묵중에 들려오는 하느님 섭리의 말씀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본기도 말씀대로 믿음과 희망과 사랑으로 언제나 깨어 주님의 계명을 충실히 지키자는 것입니다. 이래야 주님의 뜻을 알아 들을 수 있겠습니다. 더불어 생각나는 “모든 날이 다 좋다”라는 자작시도 생각납니다.
“햇빛 밝은 날은 햇빛 밝은 날대로 비오는 날은 비오는 날대로 흐린 날은 흐린 날대로 모든 날이 다 좋다 주님 늘 힘께 계시기에“<2023.10.21.>
하느님 사랑의 섭리를 믿는 다면 매사 낙관적이고 희망적일 수 있겠고, 언제 어디서나 펼쳐지는 하늘 나라의 삶일 것입니다. 새삼 우연은 없고 모두가 하느님 섭리 은총안에 있는 삶임을 깨닫습니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제1독서는 예레미야서의 주제는 예레미야 ‘예언자의 소명’에 관한 감동적인 내용이며 그 일부를 인용합니다. 예수님 이전에 이미 하느님께 불림 받아 하늘 나라의 신비를 살았던 예레미야 예언자임을 깨닫습니다. 그대로 세례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로 불림 받은 우리 모두를 향한 말씀처럼 들립니다.
“모태에서 너를 빚기 전에 나는 너를 알았다. 태중에서 나오기 전에 내가 너를 성별하였다. 내가 너를 세웠다.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구해 주리라. 주님의 말씀이다.”
주님과 함께 할 때 어디서나 하늘 나라의 삶입니다. 세례성사의 은총이, 이 거룩한 성체성사의 은총이 우리 모두 한결같이 신망애의 삶에 충실함으로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주님과 함께 하늘 나라의 신비를 살게 해 주십니다.
“어미의 품안에서부터 님은 나의 힘, 모태에서부터 님은 내 의지시오니 나는 언제나 당신을 믿었나이다.”(시편71,6).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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