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고백하는 마르타 / 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와 성 라자로 기념일(요한 11,19-2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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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24-07-28 | 조회수66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고백하는 마르타 / 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와 성 라자로 기념일(요한 11,19-27)
오늘은 성녀 마르타와 마리아, 성 라자로 기념일이다. 마르타는 라자로의 동생이자 마리아의 언니로 예루살렘 근처 베타니아에 살았다. 나흘이나 무덤에 묻혀 있던 라자로는 예수님 덕택으로 다시 살아난 이다. ‘예수님께서 마르타에게 이르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이는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 믿는 이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그녀가 답하였다. “예, 저는 주님께서 오시기로 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마르타의 이 신앙고백은 베드로 사도나, 백인대장의 그것에 못지않다. 이는 라자로가 죽어 큰 슬픔에 빠졌을 때 비로소 한 엄청난 고백이기에. 사실 우리는 주님을 어떻게 고백하는가? 언제 어디서나 마르타마냥 우리 구세주로 고백하는가? 마르타의 이 믿음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라자로를 살려 내셨다. 하느님에 대한 이 믿음이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기적을 만들어 내었다. 베타니아에 있던 마르타의 집은 예수님께서 복음 선포에 지치셨을 때 찾아와서 쉬이 쉴 수 있는 오아시스와 같은 곳이었다. 그때마다 예수님 발치에만 머문 마리아보다 그녀는 그분을 편안히 모시려고 정말 온 정성을 다했다. 그것은 그녀가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생명마저 주관하시는 분이시라는 믿음을 가졌기에, 죽은 오빠를 다시 살리시는 그분 기적을 직접 체험하였다. 이렇게 마르타는 활동적인 신앙인의 모범으로 주님 말씀에 따라 충실히 살아, 믿음의 삶에서 관상생활의 모범으로 공경 받는 성녀중의 성녀이다. 이 마르타를 쭉 보면서 우리가 믿는 참 신앙은 사랑과 믿음의 결과물임을 분명히 알게 될게다. 비록 때로는 서로가 서로에게 다소 다툴 때도 있지만, 서로 믿고 사랑해가면서 그 믿음은 더욱더 굳건해지리라. 따라서 우리가 신앙을 말로만 고백하면서 깊숙이 체험하지 않는다면, 신앙의 정도가 점점 깊이가 덜해질 수밖에. 그렇지만 믿음으로 우리가 서로 늘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함께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될 것이리라. 사람들은 늘 바쁘단다. 어쩜 고통 앞에서마저 눈코 뜰 새가 없이 바쁘다나. 그러나 주님은 바쁘지 않으시다. 우리만 조급할 뿐이지 그분께서도 그러려니 생각해서는 안 된다. 기적은 언제나 천천히 일어나니까. 조건이 갖추어진 뒤에야 주어질 게다. 예수님은 죽은 지 분명히 나흘이나 지난 라자로를 살리셨고 마르타는 그 기적 체험에 고백했다.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믿음이라는 게,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우리들이 따르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영원한 구원의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리라.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이렇게 이르셨듯이, 당신께서 바로 부활이시요 생명이시라는 것을 믿게 하려는 것이다. 주님을 믿는 이들은 하나같이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게다. 그런데 주님께서 되돌려 주시는 것은 단순한 육신의 숨이 아니다. 주님께서 되찾아 주시고자 하는 그것은 우리가 잃어버린 영원한 생명이다. 그 생명은 창조 이전부터 우리에게 계획된 생명으로 이 땅에서 이미 우리 모두가 누리고 있는 생명이며 육신의 숨이 끊어진다 하더라도 계속 이어지는 그러한 생명이다. 믿음이 깊어질 때 삶과 죽음은 분리되지 않고 하나이다. 우리도 그녀의 이 고백을 언제 어디서나 되풀이해야 한다. 주님의 부활과 생명의 자리가 우리에게 이미 와 있기 때문이리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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