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17주간 금요일]
이전글 오늘의 묵상 (08.02.금) 한상우 신부님  
다음글 저 사란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런데 저 사람이 어디서 모든 것을 얻었지?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4-08-02 조회수74 추천수6 반대(1) 신고

[연중 제17주간 금요일] 마태 13,54-58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라는 영화를 보면 ‘한나’라는 여인이 2차 세계대전이 진행되는 동안 나치의 당원으로써 유대인 학살에 가담한 ‘전범’이라는 이유로 기소됩니다. 그 와중에 그녀와 함께 기소된 다른 전범들은 한나가 순진하고 착한 성격인 점을 악용하여, ‘모든 일은 그녀가 보고서를 통해 지시하여 어쩔 수 없이 한 것’이라며 모든 죄를 그녀에게 뒤집어 씌우려고 들지요. 이에 한나가 아니라며 억울함을 호소하자 재판관은 사실 유무를 확인하기 위해 보고서에 써진 글씨체가 한나의 것이 맞는지 봐야겠다며 그녀에게 글을 써보도록 시킵니다. 하지만 한나는 그런 재판관의 지시에 불복합니다. 그녀는 사실 글을 읽거나 쓸 수 없는 ‘문맹’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자기 치부가 드러나지 않게 하기 위해 그 모든 보고서가 자기가 쓴 것이 맞다고 인정해버리고, 그로 인해 수많은 이들로부터 저주를 받으며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수감됩니다. ‘나는 문맹이 아니다’라는 알량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 앞에서 거짓말을 하고 ‘죄인’이라는 굴레까지 스스로 뒤집어 쓰는 그녀의 모습이 참으로 처량하고 안타깝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그런 한나와 비슷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바로 예수님의 고향 마을인 나자렛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들은 회당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시고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그분께서 심오한 지혜와 기적의 힘을 지니고 계심을 깨닫습니다. 그 지혜와 힘은 인간의 범주를 한참이나 넘어선 것이었기에, 필시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임이 분명했지요. 아무리 율법에 무지한 시골마을 사람들일지라도 그것을 마음 속으로 직감하고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이 머리로 깨닫고 마음으로 느끼는 ‘진리’를 인정하려 들지 않습니다. 그러면 자기 ‘자존심’이 상하기 때문입니다.

 

저 예수라는 자는 분명히 자기들과 함께 유년시절을 보낸 평범한 사람이었는데, 그의 가족과 친척들도 아직 이 마을에서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데, 그런 예수가 하느님으로부터 지혜와 기적의 힘을 받은 특별한 존재임을 인정해버리면, 그런 예수님과 함께 살았으면서도 아직 별 볼일 없는 평범한 모습으로 살고 있는 자기 자신이 한 없이 초라하게 느껴지기에 그러고 싶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래서인지 자기들 스스로가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굳이 찾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자기들에게 없는 심오한 지혜와 놀라운 능력을 지닌 예수님을 질투하며 못마땅하게 여기기에 이릅니다. 그놈의 자존심이 뭔지 참으로 한심하고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그런데 그런 모습은 신앙생활 하는 우리들 안에도 있습니다.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도 자존심을 내세우며 버티기를 하는 완고한 모습입니다. 내가 그분께 청하는 바를 하느님께서 들어주시지 않으면 내가 ‘틀렸음’을, 올바르지 못한 것을 바라기에 제대로 청하지 못하기에 그런 것임을 인정해야 하는데 그럴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내가 그렇게나 열심히 기도했는데 하느님이 안들어주셨다’며 그분을 원망하고 모든 것을 ‘그분 탓’으로 돌리지요. 하지만 그럴수록 더 비참해지고 불행해지는 것은 나 자신입니다. 참된 그리스도 신앙인이라면 자존심을 내세울 생각말고 자존감을 높여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참된 자존감은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분명한 확신과 자각에서 옵니다. 그것만이 내가 지켜야 할 ‘본질’이고 다른 것들은 다 부차적인 것들일 뿐입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