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예수고난회 김준수 신부님의 연중 제18주간 수요일: 마태오 15, 21 - 2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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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기승 | 작성일2024-08-06 | 조회수58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15,28) 제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큰 성서인 자연의 이치를 더 잘 알게 되면 자연스럽게 성경에 대한 이해도 더 심화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가나안 여인에 대한 태도는 예전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 중 하나였습니다. 딸의 병고로 힘겨운 나날을 보낸 가나안 여인의 울부짖는 소리,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제 딸이 호되게 마귀가 들렸습니다.”(15,22)라는 소리를 못 들으시지는 않으셨을 텐데도 예수님은 침묵하십니다. 그런 예수님의 모습을 성경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다.”(15,23) 그런 예수님의 반응을 보고, 제자들은 그 여인의 성가심에 시달리다 귀찮아서 예수님께 “저 여자를 돌려보내십시오. 우리 뒤에서 소리 지르고 있습니다.” (15,23)하고 여쭙니다. 그런데도 고작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15,24)라고 응답하십니다. 이 말씀이 비수가 되어 그 여인의 마음을 후벼 팠으리라 짐작합니다. 이해받지 못한 설움에 이방인이라는 거부까지 당했으니 말입니다. 그럼에도 그 여인은 물러서기보다 더 적극적으로 예수님께 다가가서 엎드려 절하며,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라고 간청합니다. 그때 예수님은 그녀에게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15,26)하고 마지막 시험의 문제를, 질문을 그녀에게 던집니다. 세상을 살면서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그 사람으로 인해 자존심 상하고 무시당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 깊은 절망의 시간과 자리를 견디어 낼 때만이 당당히 맞설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됩니다. 그 순간이야말로 세상에서 참으로 사랑으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 될 것이며 참으로 참사람이란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리라 믿습니다. 가나안 여인은 자식에 대한 사랑 때문에 자신을 한없이 낮춥니다. 그녀는 개 취급받아도 상관하지 않고 자신을 뜻을 이루기 위해 당당히 그런 무시와 맞설 수 있었습니다. 자기 자녀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아직도 자신의 자존심과 체면 따위를 내세우면서 자신을 굽힐 줄 모르는 사람은 아직도 사랑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사람이고 사랑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그녀는 자신을 강아지와 같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더 처절하게 자신을 낮추면서 원망보다는 오직 자녀의 치료를 위해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15,27)라고 절규합니다. 언감생심이란 말뜻처럼 감히 겸상兼床은 바라지도 않으며 다만 주님께서 자녀들과 잡수시다가 혹여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라도 족하고 족합니다, 는 그녀의 진솔한 마음을 예수님은 듣게 됩니다. 당연히 밥상에서 빵을 먹을 수 있다고 자부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고 보아도 보지 못하는 이스라엘의 길 잃은 양들에게서 보지 못했던 낮춤과 신뢰에서 솟아 나온 의탁의 마음 소리를 듣고서야, 예수님은 그 여자에게서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15, 28)하고 말씀하십니다. 어쩌면 이런 것을 기대하고 갈망하면서 그녀를 모질게 대하셨고 상처받을 말씀을 하셨지만, 이 또한 그녀의 마음 깊이 숨겨 내재된 보물을 꿰뚫어 보신 예수님의 의도이셨던 것입니다. 어쩌면 이 순간은 단지 그녀 딸의 치유만이 아니라 그녀 역시도 구원을 받았으며, 이미 천상의 식탁에 앞서 이 땅에서 말씀의 식탁에 초대받게 되었습니다. 이는 곧 예수님께서 그토록 사랑하고 관심을 쏟고 은총의 치유와 기적을 보고서도 믿음이 없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느꼈을 실망과 안타까움을 이 이방인 여인에게서 예수님에게서 인간적인 위로와 희망을 보고 느꼈을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이 없는 제자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흔들어 깨우려는 예수님의 극단적인 교육 방법이 마침내 그녀를 통해 드러난 순간이기도 합니다. 그녀가 예수님을 찾아온 것이 아니라 아빠 하느님께서 그녀를 예수님께 이끌었으며, 이끌려 온 그녀를 통해 하늘나라의 구원 의지가 드러난 것입니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15,28) “주님, 저희 또한 가나안 여인이 당신에게서,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라고 하신 칭찬의 말씀이 저희를 흔들어 깨웁니다. 가나안 여인처럼 저희 또한 모든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아니하고 모든 것이 다 당신의 은총이며 사랑의 안배임을 감사하면서 살아감으로써 ‘너희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라고 칭찬받는 오늘이 되고 싶습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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