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 도미니코 사제 기념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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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 작성일2024-08-07 | 조회수137 | 추천수4 | 반대(0) |
우리는 매 미사 중에 ‘거룩하시도다.’를 고백합니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온 누리의 주 하느님! 하늘과 땅에 가득 찬 그 영광! 높은 데서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찬미 받으소서. 높은 데서 호산나!” 다른 것들은 다 이해할 수 있는데, 무슨 뜻인지 잘 모르는 단어가 있습니다. ‘호산나’입니다. 호산나의 히브리어 어근을 시편 118:25, “아, 주님, 구원을 베푸소서. 아, 주님, 번영을 베푸소서.”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히브리어 ‘야샤’(구원)와 ‘안나’(간청)가 합쳐져서 “호산나”라 번역되는 단어가 만들어졌습니다. 문자 그대로, 호산나는 “구원해주시기를 간청합니다!” 또는 “제발 구원해주세요!”라는 뜻입니다. 이 말이 희랍어로 번역되면서 ‘호산나’가 되었습니다. 이 호산나라는 말은 신약성서의 복음에도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실 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길에 옷을 깔고, 손에 나뭇가지를 들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다윗의 자손께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지극히 높은 곳에 호산나!” 호산나라는 말의 뜻은 ‘구원하소서.’입니다. 이렇게 ‘호산나’라고 외쳤던 이스라엘 백성은 5일 후에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을 메시아, 구세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이스라엘 백성은 구원의 대상이 달랐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현실에서의 구원을 생각했습니다.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켜줄 구원자를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권세와 명예 그리고 재물을 주시는 구원자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눈 먼 이를 뜨게 하고, 중풍병자를 걷게 하고,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고, 풍랑을 잠재우고,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시는 기적의 구원자를 원했습니다. 그런 기대는 예수님의 제자들도 다를 바 없었습니다. 요한과 야고보는 예수님께서 높은 자리에 오르면 요한은 왼쪽에 야고보는 오른쪽에 있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제자들도 비슷한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은 놀라운 표징을 보여 주지 않았습니다. 성전을 정화하셨습니다. 대사제와 율법학자들에게 끌려가서 조롱과 멸시를 받았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 언덕을 오르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은 이스라엘 백성이 원했던 ‘호산나’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모습은 제자들이 원했던 ‘호산나’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떤 의미에서 ‘호산나’였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해 주셨습니다. 죄인들을 용서해 주셨습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말씀하셨습니다. 잃어버린 동전, 잃어버린 양을 말씀하셨습니다. 죄로 인해서 상실된 하느님의 모상을 되찾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악으로부터 구원해 주셨습니다. 시기, 질투, 분노, 원망, 욕심, 게으름, 욕정이라는 악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참된 평화와 행복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죽음으로부터 구원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예수님께서는 죽었던 나자로를 살려 주셨습니다. 죽었던 소녀에게 ‘탈리타쿰’이라고 말하셨습니다. 소녀는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지만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권력과 명예 그리고 재물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호산나가 아니셨습니다. 그것들은 우리를 죄와 악 그리고 죽음에서 결코 구원해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그렇습니다. 우리들 또한 베드로처럼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한다면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하셨던 말씀을 그대로 하실 것입니다. 미사에서 ‘호산나’라고 외치면서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행동한다면 주님은 우리에게 ‘호산나’가 되실 수 없습니다. 나를 죄와 악 그리고 죽음으로부터 구원해 주시는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면 우리는 진정한 ‘호산나’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모시는 것입니다. “나는 그들의 가슴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마음에 그 법을 새겨 주겠다. 그리하여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나는 그들의 허물을 용서하고, 그들의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겠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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