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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소통이 고통이 되지 않도록 / 따뜻한 하루[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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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4-08-07 조회수62 추천수1 반대(0) 신고

 

 

충청도 사람들은 '가셨습니다''갔슈',라 하며, '괜찮습니다''됐슈'로 줄여 말하기도 합니다.

어느 충청도 시골 이발소 주인아저씨는 미국인 남자가 들어오자, "왔슈?"라고 인사했습니다.

'오셔서 반갑습니다.'의 뜻인데 그이는, 'What see you?(무엇을 봅니까?)'로 착각했습니다.

미국인은 조동사 'do'가 빠졌지만, 이분은 시골치고는 제법 훌륭한 실력자라 여겼습니다.

 

그 미국인 남자의 바로 앞에는 이발소의 큰 거울이 환하게 보였습니다.

그는 긴 문장은 아저씨가 모를까 싶어 한 마디 "mirror(거울)"로 답했습니다.

그러자 주인아저씨는 전동식 기계를 사용 미국인의 머리를 빡빡 밀어버렸습니다.

아저씨는 '미러'라는 말을 거울(mirror)이 아니라 '머리를 밀어'로 알아들은 것입니다.

이는 누군가가 유머로 지어낸 우스갯말이지만, 알고 보면 삶에서의 묵상이 묻어납니다.

 

사실 뜻이 통하지 않아 오해를 불러오면, 분명 그것만큼 답답하고 괴로운 고통도 있을 겁니다.

그래서 경청하고 이해하려는 노력만이 고통을 해소시키고 소통을 원만하게 해 줄 것입니다.

결국 소통은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는 상태로, 불통에 따르는 고통을 없애 줍니다.

 

성경에도 사람의 허물은 그의 말솜씨에서 드러난답니다(집회 27,5).

옹기장이의 그릇이 불가마에서 단련되듯이 사람은 대화에서 수련된다.’

 

예수님 지상여정의 짧은 3년의 공생활도 결국은 적대자들과의 논쟁이셨습니다(마르 8,11-13).

표징을 보이라면서 시험하려는 바리사이들과 논쟁하시며 예수님께서는 탄식하며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말하노니, 표징만을 요구하는 이 세대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버려두신 채, 다시 배를 타고는 건너편으로 가셨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바리사이와의 대화가 어려워 떠나셨답니다.

이처럼 소통은 이해의 한 과정이며 인간관계의 밑바탕입니다.

사람은 말로 평가되기에, 말을 듣기 전에 상대를 평가하지 맙시다.

나무 열매가 재배과정 보이듯 사람의 말은 마음속 생각을 드러냅니다.

경청으로 이해하려는 노력만이 고통 해소와 소통을 원만하게 해줄 겁니다.

 

감사합니다. ^^+

 

 

태그 소통,고통,경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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