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교회(敎會)는 부자(富者), 신자(信者)들은 가난(家難), (2코린9,6-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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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로마노 | 작성일2024-08-09 | 조회수58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24년 8월 10일 [연중 제18주간 토요일]
교회(敎會)는 부자(富者), 신자(信者)들은 가난(家難),
제1독서(2코린9,6-10) 6 형제 여러분, 요점은 이렇습니다. 적게 뿌리는 이는 적게 거두어들이고 많이 뿌리는 이는 많이 거두어들입니다. = 무엇을 뿌리나, 사도(使徒)는 다른 지역 교회를 도울 구제금(救濟金)을 말하고 있다.
앞-(2코린9,1.5) 1 성도들을 위한 구제 활동에 관해서는 내가 여러분에게 글을 또 써 보낼 필요가 없습니다. 5 그래서 나는 이 형제들에게 부탁하여, 먼저 여러분에게 가서 여러분이 이미 약속한 축복의 선물을 미리 갖추어 놓게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그것을 억지 선물이 아니라 축복의 선물로 준비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7 저마다 마음에 작정한 대로 해야지, 마지못해 하거나 억지로 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하십니다. 8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모든 은총을 넘치게 주실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언제나 모든 면에서 모든 것을 넉넉히 가져 온갖 *선행을 넘치도록 할 수 있게 됩니다. = 하느님의 은총(恩寵), 은혜(恩惠), 곧 당신 아드님을 우리의 속죄(贖罪) 제물로 내주신 그 십자나무의 대속(代贖), 그 구원의 새 계약으로, 불타는 지옥(地獄)에 들어가야 할 죄인(罪人)인 우리가 그 그리스도의 피(血)로 거저 거룩하게, 의롭게 되어 영원한 평화(平和), 안식(安息)의 나라인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게 되었음을 깨달았다면(믿는다면) 당연히 감사하는 마음으로 형제들에게 구제금을 축복(祝福)의 선물(膳物)로 내야 한다는 말이다. 억지로, 마지못해 한다는 것은 하느님의 은총(恩寵)인 십자가의 대속, 그 사랑(아가페)의 복음을 모르는 것이라고 사도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선행(先行)은 하느님의 복음(福音)에 의한 선행이라는 것이다.
9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그가 가난한 이들에게 아낌없이 내주니 그의 의로움이 영원히 존속하리라.” = 성경(聖經) 시편112,9절을 인용한 말씀이다. 그런데 앞112,1절 ‘할렐루야!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계명들로 큰 즐거움을 삼는 이! “로 시작되는 말씀이다. 곧 가난한 이들에게 하느님의 계명(말씀)을 주는 의로움이다. 그러니까 하느님의 은총(恩寵), 은혜, 사랑을 깨달아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선(善), 의로움인 것이다. 다른 민족, 사람들의 자기 의로움과 다름을 놓치면 안 된다. 세상 사람들도 진심(眞心)에서 나오는 구제금, 선물을 내 놓는다. 믿는 우리보다 더 많이 내놓기도 한다. 그러나 그 인간 스스로의 의로움은 이 땅에서만 유효(有效)할 뿐이라는 것이다.(그러나 그 선(善), 의(義)도 당연히 해야 한다.) 곧 구원(救援)의 힘, 가치(價値), 능력(能力)이 없다는 말이다. 왜? 인간의 의로움은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기 이름, 명예, 만족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이사64,5 로마10,1-3참조) 의로움은 이타적인 것이다. 그래서 구원은 십자가의 대속, 그 하늘의 의로움이신 그리스도로만 받는다.(로마3,21-25) 요점(要點)은 ‘적게 뿌리는 이는 적게 거둬들이고 많이 뿌리는 이는 많이 거둬들입니다.’ 가 십자가(十字架)의 복음, 그 말씀(씨)을 많이 뿌려야 많은 사람이 하늘의 의로움으로 구원(救援)을 받는다는 예기다.
10 씨(말씀)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과 먹을 양식을 마련해 주시는 분께서 여러분에게도 씨앗을 마련해 주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여러 곱절로 늘려 주시고, 또 여러분이 실천하는 의로움의 열매도 늘려 주실 것입니다. = 씨(말씀)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말씀)과 먹을 양식(말씀)을 마련해 주시는 분께서 여러분에게도 씨앗(말씀)을 마련해 주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여러 곱절로 늘려 주시고(깨닫게), 또 여러분이 실천(實踐)하는(전(傳)하는) 의로움의 열매도 늘려주실 것이다. 하는 말씀이다. 하느님의 말씀(씨)은 이미 성경(예수)을 마련해서 우리에게 주셨고 하느님의 영(靈), 성령(聖靈)을 보호자로 보내시어 그 성령을 통해 깨닫게 하셨다(요한14,26 참조) 그 하느님의 말씀(씨)으로 오신 예수님이다.
(요한1,4.14) 4 그분(말씀)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14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복음(요한12,24-26)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 예수님께서 밀알(씨) 하나로 땅(흙-사람)에 내려와 목숨을 아끼지 않으시고 죽으셔서 많운 사람을 하늘의 생명으로 살리시는 열매를 맺으셨다.
25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 우리도 땅의 목숨, 육(肉)을 위한 삶으로 하늘의 생명, 삶을 놓치지 말라는 말씀이다. 육(肉)의 목숨을 위한 삶을 사랑하지 말고 미워하라는(버리라)는 말씀이다. 육의 삶이 하찮다는 말씀이 아니다. 육의 삶도 하느님께서 주신 귀하고 소중한 것이다. 그러나 육의 목숨을 위한 삶에 만족(滿足)하느라 하늘의 생명에는 관심(關心)도 없다면 그것이 헛된 삶인 것이고 죄(罪)라는 것이다. 땅, 육, 세상의 양식, 노동(勞動)은 하느님 나라의 양식, 말씀(씨), 구원의 일을 모형(模型)하고 있는 소중(所重)한 것이다.
26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 =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땅, 육을 위한 세상의 길(道), 방법(方法)이 구원의 힘, 가치 없음을 깨닫고 인정(認定)하는 그 마음의 가난으로 지금까지 그 세상의 원리를 살았던 자신을 부인(否認)하고(버리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 그 길을 구원, 생명의 진리로 믿고 의지하는 삶이다.
(마르8,35) 35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와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 오늘 매일미사 (서철 바오로) 사제의 묵상글 참으로 감동적이다. ‘가난한 이가 교회의 보물(寶物)’이라 하셨다. 그 가난은 마음의 가난이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교회의 보물이다.
(마태5,3) 3 “행복하여라, 마음(영)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 그 마음(영)이 가난한 사람만이 하늘의 양식인 하느님의 말씀을 먹기에 보물이 되는 것이다. 세상은 그 하느님의 말씀, 복음이 자신의 뜻, 입에 맞지 않기에 먹지 않는다. 미워한다. (1코린1,23-24참조) *사제의 묵상글 중에서~ 황제가 교회 재산을 노리고 교황과 라우렌시오 부제를 죽였다고 하는데, 교회가 얼마나 많은 돈을 모아 두었길래 황제가 그 돈을 노렸을까? 안타까운 것은 그분들의 그 엄청난 순교가 예수님 때문에, 복음(福音)때문이 아니라 교회가 모아 놓은 돈 때문이라는 것이 씁쓸하다. 지금의 우리 교회도 엄청난 부자(富者)라 하는데 그 돈을 풀어야 하지 않을까? 이 어려운 힘든 상황에 신자들에게, 어렵고 힘든 나라를 돕자, 사랑을 베풀자고 헌금을 내 놓으라 할 것이 아니라 교회(교황청)가 가지고 있는, 움켜쥐고 있는 돈을 풀어서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돈을 베푸는데 만족(滿足)할 것이 아니라 또한 땅(인간)의 뜻을 위한 종교 행위가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 십자가의 복음을 하늘의 양식, 생명의 양식으로 먹이는데 더 힘써야 할 것이다. 하느님의 은총(恩寵), 사랑을 아는 교회(敎會)라면 말이다.
☨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마음의 가난으로 하늘의 부자로 살도록 하늘의 양식(말씀)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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