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그리스도 한 분만이 ‘어린 아이’로 오셨고, 순종하셨다. (마태18,1-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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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로마노 | 작성일2024-08-12 | 조회수39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연중 제19주간 화요일]
그리스도 한 분만이 ‘어린 아이’로 오셨고, 순종하셨다.
제1독서(에제2,3.8.8-3,4) 3 야훼께서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아, 내가 이스라엘 자손들, 나를 반역해 온 저 반역의 민족에게 너를 보낸다. 그들은 저희 조상들처럼 오늘날까지 나를 거역해 왔다. = 오늘날까지 하느님의 뜻이 아닌 자신들의 뜻, 소원(所願)을 위한 신앙(信仰)을 산다는 것이다.
5 그들이 듣든, 또는 그들이 반항의 집안이어서 듣지 않든, 자기들 *가운데에 예언자가 있다는 사실만은 알게 될 것이다. 8 “너 사람의 아들아, 내가 너에게 하는 말을 들어라. 저 반항의 집안처럼 반항하는 자가 되지 마라. 그리고 입을 벌려 내가 너에게 주는 것을 받아먹어라.” 9 그래서 내가 바라보니, 손 하나가 나에게 뻗쳐 있는데, 거기에는 두루마리 *하나가 놓여 있었다. = 한분이신 창조주(創造主)의 손이다. 곧 창조(創造)의 뜻, 하느님 구원(救援)의 말씀이 적힌 두루마리다.
10 그분께서 그것을 내 앞에 펴 보이시는데, 앞뒤로 글이 적혀 있었다. 거기에는 비탄과 탄식과 한숨이 적혀 있었다. = 창조주 하느님의 뜻을 떠나 반항(反抗)했기에 비탄(悲嘆)과 한숨의 두루마리가 되었다.
3,1 그분께서 또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아, 네가 보는 것을 받아먹어라.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집안에게 말하여라.” 2 그래서 내가 입을 벌리자 그분께서 그 두루마리를 입에 넣어 주시며, 3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아, 내가 너에게 주는 이 두루마리로 배를 불리고 *속을 채워라.” 그리하여 내가 그것을 먹으니 꿀처럼 입에 달았다. 4 그분께서 다시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아, 이스라엘 집안에게 가서 그들에게 내 말을 전하여라.” = 그런데 입에 꿀처럼 달콤한 말씀을 먹지 않고, 왜 적대(敵對)해 반항(反抗)할까? 입에는 달지만 뱃속으로 들어가 배를 아프게 했기 때문이다. 곧 말씀을 깊이 깨닫게 되면, 말씀이 그 사람의 뜻, 욕망(慾望)을 부수기 때문이다. 어제도 확인 했듯 우리의 뜻, 소원을 들어 주시기 위해 오신 구원자가 아니시기에 말이다. 곧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이 되어 오신 예수님이 아니라, ‘우리를 죄(罪)에서 구(求)하시러 오신 그리스도’시다.
그 하늘나라를 묵시록(黙示錄)으로 가 보면~ (묵시10,8-11) 8 하늘에서 들려온 그 목소리가 다시 나(요한)에게 말하였습니다. “가서 바다와 땅을 디디고 서 있는 그 천사의 손에 펼쳐진 두루마리(말씀)를 받아라.” = 창조주(創造主) 하느님의 권능(權能)을 받은 천사(天使)다. 9 그래서 내가 그 천사에게 가서 작은 두루마리를 달라고 하자, 그가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이것을 받아 삼켜라. 이것이 네 배를 쓰리게 하겠지만 입에는 꿀같이 달 것이다.” 10 그래서 나는 그 천사의 손에서 작은 두루마리를 받아 삼켰습니다. 과연 그것이 입에는 *꿀같이 달았지만 먹고 나니 배가 *쓰렸습니다. 11 그때에, “너는 많은 백성과 민족과 언어와 임금들에 관하여 다시 *예언해야 한다.” 하는 소리가 나에게 들려왔습니다. = 그러니까 말씀을 떠나든, 먹든 비탄과 탄식, 한숨이 나오기는 마찬가지다. <세상의 삶이 한숨과 고통, 슬픔의 삶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말씀을 떤안 한숨은 영원한 절망(切望)이지만, 말씀 안에 배 쓰림, 한숨, 슬픔은 영원한 안식(安息), 평화(平和), 생명(生命), 곧 새 창조를 이룬다.
(2코린7,8-10) 8 내가 그 편지(두루마리, 말씀)로 여러분을 슬프게 하였더라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사실 그 편지가 잠시나마 여러분을 슬프게 하였음을 압니다. 그러나 내가 한때 후회하였을지라도 9 이제는 기뻐합니다. 여러분이 슬퍼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슬퍼하여 마침내 회개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하느님의 뜻에 맞게 슬퍼한 것이니, 우리 때문에 손해를 본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10 하느님의 뜻에 맞는 슬픔은 회개를 자아내어 구원에 이르게 하므로 후회할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현세적 슬픔은 죽음을 가져올 뿐입니다. = 회개(悔改 하마트리아)는 잘못을 반성(反省)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으로 돌아옴’을 뜻한다. 곧 말씀 안에 한숨, 슬픔을 하느님께 돌아오게 한다.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의 아들, 어린 아이 자신을 낮추시어, 오로지 하느님 아버지만을 바라보며 의지(依支)하여 그 아버지의 구원(救援)의 뜻에 죽기까지 순명(殉名)하신, ‘우리 가운데 계신 그리스도 예수님’에 관한 말씀이 오늘 복음(福音)이며 성경(聖經) 전체, 곧 하느님의 두루마리 하나, 한 권의 책이다.
오늘 복음중 에서 어린이 하나가 예수님을 비유(比喩)하심이다. 복음(마태18,1-5) 1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하늘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 하고 물었다. 2 그러자 예수님께서 어린이 *하나를 불러 그들 *가운데에 세우시고 이르셨다. 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 예수님처럼 자신을 낮추시어 하느님 아버지만을 의지(依支)하여 살아야 함을 말씀하심 인데, 그 자신을 낮추는 것이 당장(當場)에는 배의 쓰라림, 고통, 슬픔이다. 그러나 그것이 영원한 평화(平和), 기쁨을 낳는다. (히브12,11)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5 또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예수님처럼 자신을 낮추어 죽기까지 하느님께 순종(順從)한 사람이 있는가? 성경(聖經)은 ‘단 한 사람도 없다.’고 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죽으러 오실 수밖에 없으셨던 것이다. 그리스도 한 분만이 ‘어린 아이’로 오셨고, 순종하셨다. 곧 내 뜻을 버리고 하느님의 뜻인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신 예수님, 그분의 지체로 한 몸이 되었을 때,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 된다.
(2코린5,21) 21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만드시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되게 하셨습니다.
(1코린1,30) 30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에게서 오는 지혜가 되시고, 의로움과 거룩함과 속량이 되셨습니다. (~아멘!)
☨은총이신 보호자 천주의 성령님! 오늘, 삶의 쓰라림, 한숨, 슬픔이 내일의 영원한 평화, 기쁨, 큰 사람이 되게 오늘 말씀이 저희 안에서 믿음으로 자라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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