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나 구치소에 갈 때마다 느끼는 안타까운 일이 한가지 있는데, 재소자들의 가슴에는 하나같이 이름 대신 번호가 새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언젠가 민영 소년 교도소 설립을 꿈꾸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때 만일 꿈이 이루어진다면, 아이들의 가슴에 번호 대신 이름을 달아주고 이름을 불러주자는 안을 내어놓기도 했습니다. 16670번,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신부님의 번호였습니다. 수용소 안에서 콜베 신부님의 삶과 죽음은 한마디로 무죄한 어린양의 삶과 죽음, 속죄양으로서의 삶과 죽음이었습니다. 죽음의 수용소로 악명 높았던 나찌 수용소 안에서 콜베 신부님은 동료 수감자들에게 마지막 희망이자 위로였습니다. 한 포로가 죽음의 방으로 끌려가며 외쳤습니다. “내 불쌍한 아내! 내 아이들!” 당시 연병장 내에는 수많은 운동장에 포로들이 서 있었는데, 그중에서 한 말라깽이가 걸어 나오며 외쳤습니다. “저 사람 대신에 제가 가겠습니다!” 그 한 마디로 인해 콜베 신부는 깊은 지하 감방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당시 열 명의 수감자가 함께 갇혀 있었는데, 물 한잔도 빵 한 조각도 없이 죽음의 순간만을 기다려야만 했던 그곳에서 콜베 신부님의 성덕은 더욱 발휘됩니다. 가장 허약했던 콜베 신부님은 의외로 가장 오래 견딥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오직 한가지였습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양들인 동료 수감자들을 향한 극진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콜베 신부님은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에 떨던 동료들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고 위로의 말을 건넸습니다. 자신의 몸을 추스르기도 힘든 병약했던 콜베 신부님이었지만 마지막까지 살아남아서 기도와 위로 속에 동료들을 떠나보내고 나서 자신도 떠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기적과도 같은 일이 생깁니다. 평소에 배급이라고 받던 빵 조각들도 늘 남들에게 양보해서 가장 체력이 바닥나 있던 콜베 신부님이었지만, 15일간이나 굶주림을 견디면서 동료들의 눈을 모두 감겨줍니다. 끝까지 생존해있는 콜베 신부님을 확인한 나찌들은 신부님에게 탄산 주사를 맞힙니다. 콜베 신부님, 살아 생전부터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과 원죄 없으신 성모님께 온전히 의탁한 투철한 신앙인이었습니다. 신부님의 그러한 신심은 하루하루 피 말리는 수용소 생활 안에서 활짝 꽃피어났습니다. 그 절망스럽고 고통스러운 수용소 생활 가운데서도 수감자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차라리 죽는 게 더 낫겠다.’는 마음이 들었지만 콜베 신부님을 통해서 다시금 살아갈 힘을 얻곤 했습니다. 콜베 신부님은 공포 속에서 하루하루를 견뎌내던 그들에게 끊임없이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주었던 것입니다. 동료 수사들과 함께 나치에 체포된 후 수용소로 향하는 트럭 안에서의 일입니다. 숨 쉴 틈도 없이 끌려가는 사람들로 빽빽했던 트럭 안에서 동료 수사들은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기약도 없는 미래가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어디로 끌려가는지도 몰랐던 것입니다. 그때 콜베 신부님은 차분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용기를 잃지 마십시오. 우리는 지금 죽으러 가는 길이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길입니다. 게다가 우리는 차까지 타면서 가니 이 얼마나 커다란 행운입니까? 여러분, 이제 우리는 가능한 많은 불쌍한 영혼들을 구하기 위해 더 많은 기도를 해야 합니다. 성모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