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모 승천 대축일 제1독서(묵시11,19ㄱ; 12,1~6ㄱㄷ.10ㄱㄴㄷ)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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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로마노 | 작성일2024-08-14 | 조회수55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성모 승천 대축일 제1독서(묵시11,19ㄱ; 12,1~6ㄱㄷ.10ㄱㄴㄷ) "하늘에 있는 하느님의 성전이 열리고 성전 안에 있는 하느님의 계약궤가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하늘에 큰 표징이 나타났습니다. 태양을 입고 발밑에 달을 두고 머리에 열 두개의 별로 된 관을 쓴 여인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 여인은 아기를 배고 있었는데, 해산의 진통과 괴로움으로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용의 꼬리가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휩쓸어 땅으로 내던졌습니다. 그 용은 여인이 해산하기만 하면 아이를 삼켜 버리려고, 이제 막 해산하려는 그 여인 앞에 서 있었습니다. 이윽고 여인이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사내아이는 쇠지팡이로 모든 민족들을 다스릴 분입니다. 그런데 그 여인의 아이가 하느님께로, 그분의 어좌로 들어 올려졌습니다." (11,19; 12,1~5) 요한 묵시록 11장 19절에는 하느님의 계약궤가 보인 후, 최후 대재앙의 징조들 곧 번개와 요란한 소리와 천둥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었다고 계시한다. 여기에 언급된 번개와 요란한 소리와 천둥과 지진과 큰 우박은 모두 종말론적인 심판과 하느님의 현현의 맥락에서 나오는 전용 술어이다. 묵시록에서 이와 관련하여 언어적 병행을 이루는 최초의 언급은 4장 5절인데, 이것은 종말론적 심판의 진원지가 하늘 어좌임을 드러내는 동시에 그 심판의 강도가 어떠하다는 점을 암시한다. 그러나 하늘 어좌에서 시작된 종말론적 심판은 묵시록이 진행될수록 그 강도가 더할 나위없이 점증한다. 묵시록 8장 5절, 11장 19절, 16장 18절이 바로 그것을 증명하는데, 그 중에서 11장 19절은 모든 계약을 이루시는 신실하신 하느님께서 일련의 말세의 대재앙을 통해 당신의 계약을 이루실 것을 시각적 이미자와 청각적 이미지를 사용하여 매우 생생하게 잘 드러낸다. '그리고 하늘에 큰 표징이 나타났습니다. 태양을 입고 발밑에 달을 두고 머리에 열 두개의 별로 된 관을 쓴 여인이 나타난 것입니다.' (12,1) 사도 요한이 하느님께서 보여주신 환시 가운데서 본 것은 한 여인이었다. 여기서 '여인'으로 번역된 '귀네'(gyne)는 앞서 언급된 '표징'(세메이온; semeion)과 동격을 이룬다. 따라서 요한이 본 큰 표징 가운데 첫 번째의 것은 여인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사도 요한의 환시에 등장한 여인은 태양을 입고 있었다. 본문에서 '입고'로 번역된 '페리베불레메네'(peribeblemene)는 '착용하다', '옷을 입다'라는 뜻을 지닌 '페리발로'(periballo)의 완료 동사이다. 이것은 '호 헬리오스'(ho hellios; the sun; 태양)의 목적격으로서 '태양을'으로 번역된 '톤 헬리온'(ton hellion)과 함께 쓰여 태양을 옷삼아 입고 있는 여인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러한 시각적 묘사는 즉시 '주 저의 하느님, 당신께서는 지극히 위대하십니다. 고귀와 영화를 입으시고 빛을 겉옷처럼 두르셨습니다. 하늘을 차일처럼 펼치시고' (시편104,1~2) 라는 시인의 노래를 연상시킨다. 또한 '새벽빛처럼 솟아오르고, 달처럼 아름다우며, 해처럼 빛나고, 기를 둔 군대처럼 두려움을 자아내는 저 여인은 누구인가?' (아가6,10)을 연상시킨다. 하느님께서 옷을 입은 것과 같이 빛을 입으신 것처럼,이 여 인은 옷을 입은 것과 같이 태양을 입고 있었다. 이것은 이 여인이 하느님의 속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한편, 태양을 입고 있는 이 여인은 명백히 묵시록 17장 4절에 언급된 '자주색과 진홍색 옷을 입는 여자' 곧 대탕녀 바빌론과 대조된다. 다음으로 이 여인의 발밑에 달이 있었다. 본절에서 '발끝에'에 해당하는 '휘포카토 톤 포돈 아우테스'(hypokato ton podon autes)에서 '밑에' 혹은 '아래'로 번역된 '휘포카토'는 본래 공간적으로 '아래'란 뜻이다. 여기서는 '발'을 뜻하는 '호 푸스'(ho pus)의 속격 '톤 포돈'(ton podon)과 함께 쓰여 지배와 군림의 비유적 뉘앙스를 드러낸다. 또한 여기서 '달'(he selene; the moon)은 고대 월력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시간의 흐름을 상징한다. 따라서 이 여인이 달을 밟았다는 것은 그녀가 시간에 대한 완전한 통치의 권세를 소유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더 나아가 그녀는 머리에 열두 개의 별로 된 관을 쓰고 있었다 ('스테파노스 아스테르논 도데카'; 'stephanos asteron dodeka'; a crown of twelve stars on her head). 일반적으로 면류관(화관)은 승리와 왕권의 상징이다(묵시2,10). 또한 숫자 12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묵시21,12)나 어린양의 열두 사도와 관련된다(묵시21,14). 특히 여기서는 간택받은 하느님의 백성을 가리키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별'은 약속의 자손을 나타낸다(창세15,5). 따라서 열두 개의 별로 된 관은 승리한 하느님 백성의 충만한 수효를 가리킨다. 그리고 이것 역시 묵시록 12장 3절에 묘사된 붉은 용의 머리에 있는 일곱개의 작은 관과 날카롭게 대조된다. 요약하면, 본절에 묘사된 한 여인은 하느님의 속성을 지니며 시간의 흐름 즉 역사에 대한 통치의 권세를 소유하고 있고, 심지어 열두 지파나 열두 사도가 상징하고 있는 모든 간택받은 하느님의 백성과 관련된다. 이 여인은 우선 문맥상 하느님의 백성, 곧 교회를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함이 타당하다(묵시1,17). 이 여인은 어린양의 혼인잔치를 위해 예비된 그의 '신부'('헤 귀네'; 'he gyne'; 신부)이다 (묵시19,7). 본문에 언급된 태양과 달과 별은 그 자체가 지니고 있는 여러 가지 상징적 의미와 더불어 신랑되신 그리스도의 영적 신부이신 하느님의 교회, 즉 하느님의 계약의 백성이 지니는 영광스러움의 빛을 더욱 부각시킨다. '그 여인은 아기를 배고 있었는데, 해산의 진통과 괴로움으로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2) 찬란한 영광을 소유하고 있는 교회를 상징하는 여인, 곧 어린양의 신부(아내)는 아기를 배어 해산하게 되자 아파서 괴로움으로 울부짖는다. 사도 요한은 본절에 언급되는 동사의 시제를 모두 현재형으로 쓰면서 마치 해산하고 있는 여인 곁에서 해산의 전과정을 목도하고 있는 듯한 뉘앙스를 전달한다. 즉 아기를 배어 고통중에 해산하는 여인의 모습을 시각적이면서도 청각적으로 매우 생생하고 실감나게 드러낸다. 본문에서 '아기'로 번역된 '가스트리'(gastri)는 문자적으로 '복부', '자궁'을 뜻하는 '가스테르'(gaster)의 여격으로서, 장소를 나타내는 전치사 '엔'(en)과 '소유하다' 라는 뜻을 지닌 원형 '에코'(echo)의 현재분사 '에쿠사'(echusa)와 함께 여인이 자궁 속에 아이를 수태하고 있는 상태를 생생하게 묘사하였다. 그렇다면 본문에 언급된 아이는 누구인가? 묵시록 12장 5절에 의하면, 그 사내아이는 장차 쇠지팡이로 모든 민족들을 다스릴 분이다(묵시12,17). 그러므로 이 아이는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한다. '또 다른 표징이 하늘에 나타났습니다. 크고 붉은 용인데, 머리가 일곱이고 뿔이 열이었으며, 일곱 머리에는 모두 작은 관을 쓰고 있었습니다.' (3) 사도 요한은 '또 다른 표징이 하늘에 나타났습니다'라는 표현을 통해서 묵시록 12장 1절에 '하늘에 큰 표징이 나타났습니다'라는표현을 상기시킨다. 즉 사도 요한은 본문에서 묵시록 12장 1절에 언급된 동일한 표현을 구사함으로써 묵시록 12장 3절 이하의 내용과 묵시록 12장 1~2절에 언급된 내용을 구조적으로 병행시킨다. 즉 그는 여인이 해산하는 장면과 크고 붉은 용의 등장을 이중 노출(double exposure) 기법을 사용하여 뚜렷하게 대조한다. 이것은 앞으로 여인이 낳을 아이와 붉은 용 그리고 여인과 붉은 용과 관련하여 그 어떤 사건이 발생할 것임을 암시한다. 한편 '큰' 에 해당하는 '메가스'(megas)는 '커다란', '위대한'이란 뜻으로 용의 대단한 위엄과 용모를 짐작케 한다. 또한 '붉은'으로 번역된 '퓌르로스'(pyrros)는 대체적으로 '살인', '학살', '살기' 등 호전성을 자극하는 색깔이란 점에서 본문에 언급된 용의 호전성과 공격성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요한8,44). 구약 성경에서는 용에 대한 암시가 대개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백성, 곧 이스라엘의 적대자와 결부되어 나타난다. 시편 74장 13~15절, 이사야 27장 1절, 이사야 51장 9절, 에제키엘 29장 3절, 욥기 40장 18절, 욥기 40장 15절에 언급된다. 구약 성경에서 용과 관계된 이러한 표현들은 모두 하느님의 적대자로 간주된다. 사도 요한은 이방 신화나 이교 문헌들이 아니라 바로 구약 성경의 이러한 용의 이미지를 빌어와서 '사탄'(묵시12,9)을 상징화한 것이다(묵시20,2). 이 용은 본절에서 머리가 일곱이고 뿔이 열이었으며, 일곱 머리에는 모두 작은 관을 쓰고 있는데, 사탄의 외양이 이처럼 자세히 묘사된다. '머리'(kephallas; 케팔라스)는 주로 지식과 지능, 나아가 권세를 상징한다. 더군다나 용의 머리의 수효가 '일곱'(hepta; 헵타)인데, 묵시록에서 숫자 '7'은 완전함과 충만함을 상징하므로(묵시1,4; 5,1; 13,1; 17,3), 붉은 용이 일곱 머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 용이 강력한 악의 세력임을 분명하게 나타낸다. 또한 용은 열 뿔을 가지고 있는데, '열 뿔'('케라타 데카'; kerata dek)은 틀림없이 다니엘 7장 7절, 8절에서 다니엘이 본 네 번째 짐승 환시와 병행된다. '뿔'(kerata)이 본래 '권세'나 '힘'을 상징하고, 숫자 10 역시 7과 더불어 완전함과 충만함을 상징한다면, 용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언급된 열 뿔 역시 사탄의 강력한 권세에 대한 상징적 묘사로 이해된다(묵시록 13장 1절과 묵시록17장 12절의 바다에서 나온 짐승도 동일한 표현임). 나아가 사탄을 상징하는 크고 붉은 용은 그가 가진 일곱 머리에 일곱 관(작은 면류관)을 썼다. 그런데 본문에서 '작은 관'으로 번역된 '디아데마타'(diademata)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묵시록 2장 10절에서 순교자적 충성을 요구하면서 약속했던 '생명의 화관'과 대조된다. '디아데마타'는 '둘러싸다', '둘러감다' 라는 뜻을 지닌 '디아데오'(diadeo)에서 파생한 명사 '디아데마'(diadema)의 복수형이다(묵시13,1참조). 이것은 본래 페르시아 왕들이 그들의 관을 두르는데 사용한 푸른 띠를 가리킨다. 이것은 '작은 왕관을 그 머리에 많이 쓰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묵시19,12)에 대한 거짓 모방이다. 따라서 사탄이 쓴 일곱 작은 관은 '승리의 면류관이 아니라 찬탈한 권위의 면류관' 곧 거짓 면류관이다. '용의 꼬리가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휩쓸어 땅으로 내던졌습니다. 그 용은 여인이 해산하기만 하면 아이를 삼켜 버리려고, 이제 막 해산하려는 그 여인 앞에 서 있었습니다' (4) 본문에서 '꼬리'(ura; 우라)를 사용하여 자신의 위엄과 용모를 자랑하고 있는 용은 마치 '전갈같은 꼬리에다 침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꼬리에 다섯 달 동안 사람들을 해칠 권한이 있었던'(묵시9,10) 메뚜기(황충)을 연상시킨다. 메뚜기의 꼬리가 사람을 해치는 권한을 지니고 있듯이, 용의 꼬리 역시 하늘의 별의 삼분의 일을 휩쓸어 땅에 던질 권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특히 꼬리를 부각시키는 것은 고대 사회에서 머리가 정정당당함을 상징하는 것과 반대로 정당한 방법이 아닌 부정한 방법, 즉 속임수를 사용하였음을 암시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본문에 묘사된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던지는 용의 행위는 다니엘 8장 10절, 곧 '그것은 하늘의 군대에 미칠 만큼 커지더니, 그 군대와 별들 가운데에서 일부를 땅에 떨어뜨려 짓밟았다'라는 어구와 관련된 듯이 보인다. 여기서 '삼분의 일'(to triton; 토 트리톤)이 일곱 나팔 재앙 시리즈(묵시8,1~12)에서 언급된 '삼분의 일'이 함축하듯이 '제한'과 '한정'의 관념을 포함하고 있다면, 이것은 하늘의 별들을 모조리 땅으로 쏟는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 떨어뜨렸다는 의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곱 나팔 재앙이 피조계와 사람에 대해 치명적이듯이, 본문의 용의 행위 역시 그 결과가 치명적이다(묵시9,1참조). 여기서 언급된 하늘의 별 삼분의 일 역시 천사의 자리에서 타락한, 부분적인 마귀 세력을 뜻하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땅으로 던져진 별은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라기 보다는, 본절 하반절에 언급된 '여인이 해산하기만 하면 아이를 삼켜 버리려고'라는 문구와 관련된다. 즉 용이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진 것은 여인이 해산할 바로 그 아이를 삼키기 위한 일종의 예비 과정이다. 본문에서 '앞에 지켜 서'로 번역된 '헤스테켄 에노피온'(hesteken enopion)은 '앞에서'(before)라는 뜻을 지닌 전치사 '에노피온'과 '자리잡다', '서다', '세우다'라는 뜻을 지닌 '히스테미'(histemi)의 미완료 능동태가 함께 사용된 것이다. '헤스테켄'은 미완료 능동태로서 이제 막 해산하려는 여인에 대한 용의 도전이 계속되고 있음을 더욱 생생하게 드러낸다. 용이 여인 앞에 이와같이 버티고 서 있는 것(stood before; stood in front of the woman)은 여인이 해산하면 아이를 삼키기 위해서이다. 또한 본문에서 '삼켜 버리려고'로 번역된 '카타파게'(kataphage; devour)는 '먹어치우다'는 뜻을 지닌 '카테스티오'(katesthio)의 부정 과거 가정법이다. 이 표현은 탈출기 1장 16절과 예레미야서 51장 34절을 연상시킨다. 탈출기 1장 16절에 파라오는 '너희는 히브리 여자들이 해산하는 것을 도와줄 때, 밑을 보고 아들이거든 죽여 버리고 딸이거든 살려 두어라'라고 말하며, 예레미야서 51장 34절은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가 나를 잡아먹고 나를 무너뜨렸다. 그는 나를 빈 그릇으로 만들었다. 그가 용처럼 나를 삼켜 나를 진미로 삼아 자기 배를 채우더니 다시 뱉어 냈다.'라고 하며 네부카드네자르의 이스라엘 침공을 묘사한다. 말하자면, 파라오가 히브리인 남아를 살해하라고 명령한 것과 같이 그리고 네부카드네자르가 이스라엘을 삼킨 것같이, 본문에서 붉은 용으로 상징되는 사탄은 아이로 상징되는 예수 그리스도를 삼키려고 한다. 사탄의 이와같은 시도는 실제로 영아였던 예수 그리스도를 살해하려는 헤로데의 시도로부터 시작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활 내내 계속되다가 십자가 처형으로 절정에 달한 바 있다. '이윽고 여인이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사내아이는 쇠지팡이로 모든 민족들을 다스릴 분입니다. 그런데 그 여인의 아이가 하느님께로, 그분의 어좌로 들어 올려졌습니다.' (5) 묵시록 12장 5, 6절에서는 민족을 다스릴 아이의 출생과 여인에 대한 하느님의 보호하심을 묘사하고 있다. 붉은 용의 위해에도 불구하고 여자는 아들을 낳았다. 본문에서 여인이 아이를 해산하는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육화; Incarnatio)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또한 본절의 '그 사내아이는 쇠지팡이로 모든 민족들을 다스릴 분입니다'라는 것은 '너는 그들을 쇠지팡이로 쳐부수고 옹기장이 그릇처럼 바수리라'는 시편 2장 9절의 노래와 같다. 동일한 표현이 티아티라 교회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종말론적인 약속인 묵시록 2장 27절에서도 언급되고, 사탄과 그의 추종자들에 대한 종말론적인 심판을 수행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러한 강력한 면모는 묵시록 19장 15절에서 다시 언급된다. 한편, 본문에서 '들어 올려졌습니다'로 번역된 '헤르파스테'(herpasthe)는 '이끌려 가다', '끌어 올리다'라는 뜻을 지닌 '하르파죠'(harpazo)의 부정 과거 수동태이다. 그런데 본문은 누가 그 아이를 하느님 대전과 그분의 어좌로 올려 갔는지 분명하게 밝히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이 강생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셔서 '하느님께와 그분의 어좌로' 승천하신 사건을 가리킨다면, 성부 하느님의 권능에 의해 주도된 것이 확실하다. 그런데 본절은 그리스도의 지상 생애와 죽음, 그리고 부활 사건이 누락된 채 강생과 그의 승천 사실만을 언급한다는 점에서 이채롭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용이 여인을 경계한 것이 아무 소용없었다'라는 사실, 곧 사탄이 예수 그리스도를 패배시키기는 커녕,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느님 어좌 앞으로 유유히 올라 가심으로써 사탄에 대한 승리를 확증하셨다는 의미를 드러낸다. 태양을 입은 여인은 하느님의 속성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상징하고, 달을 밟고 있다는 것은 시간의 흐름, 즉 역사(歷史)에 대한 완전한 통치의 권세를 소유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또한 머리에 열두 개의 별로 된 관을 쓰고 있다는 것은 12지파와 12사도를 상징하는 간택받은 교회, 승리한 하느님 백성의 충만한 수효를 의미하며, 이것은 신랑이신 그리스도의 정배인 성교회를 상징한다.
1854년 교황 비오9세에 의해 원죄없는 잉태 교리가 반포되었으며, 1950년 11월 1일 교황 비오 12세는 성모승천 교리를 정식으로 정의하고 선포하였다
"원죄 없으신 천주의 모친 평생 동정 마리아께서 지상생활을 마치신 후에 영혼과 육신을 갖고서 천상 영광에로 올림을 받으셨다는 것은 하느님으로부터 계시된 교리임을 선언하고 선포하며 정의 하는 바이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도 "예수의 모친은 천상에서 이미 영혼과 육신으로 영광을 누리고 계심으로써, 후세에 완성될 교회의 모상이며 시작이 되신다"(교회헌장 68항) 고 하면서 마리아께서 받으신 특권과 각별한 은총을 재확인 하였다.
같이 천국에 가셨지만 주님의 경우는 승천이라고 하고 성모의 경우는 ’피승천’ 즉 ’몽소 승천’이라고 한다. 이는 예수께서는 하느님이시므로, 자력으로 승천하셨고, 성모님은 역시 사람이므로 자력으로 못하시고 주님의 힘으로 승천하셨음을 밝히기 위함이다.
18 나는 이 책(성경)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이에게 증언합니다. 누구든지 여기에 무엇을 보태면, 하느님께서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보태실 것입니다. 19 또 누구든지 이 예언의 책에 기록된 말씀 가운데에서 무엇을 빼면, 하느님께서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거룩한 도성에서 얻을 그의 몫을 빼어 버리실 것입니다. 20 이 일들을 증언하시는 분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렇다, 내가 곧 간다.” 아멘. 오십시오, 주 예수님! 21 주 예수님의 은총이 모든 사람과 함께하기를 빕니다. (묵시22;18-21)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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