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승천대축일이자 광복절이니 경사 중의 겹경사 날입니다. 우리나라의 해방과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고 목숨 바친 분들에게 깊이 감사하며, 그들의 애국심에 가슴 뛰고 설레야 할 광복절인데, 오늘 우리의 현실은 너무나 초라하고 굴욕적입니다. 제대로 된 통치자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새삼 실감하는 하루였습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멋진 국왕이 한 분 있습니다. 축일을 맞이하시는 헝가리의 성 스테파노(975∼1038)입니다. 헝가리에 가면 얼마나 스테파노가 존경받는 인물인지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는 헝가리의 수호성인이면서도 정교회 쪽으로부터도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헝가리 국민들 가운데 스테파노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헝가리의 성 스테파노는 프란치스코 교황님과 닮은 점이 많았습니다. 다른 무엇에 앞서 무척이나 청빈했습니다. 왕으로서 화려한 복장을 피하고 아주 소박하고 단출한 옷을 즐겨 입었습니다. 백성의 필요성에 언제나 활짝 열려있었기에 굶주리던 백성들을 위해 왕실의 곳간을 활짝 열어 아낌없이 자선을 베풀었습니다. 자신의 왕관을 하느님께 봉헌했으며 자신의 손에 맡겨진 헝가리 왕국 안에 하느님의 왕국을 건설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또한 세상과 하느님 나라를 자신의 생애 안에 잘 조화시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더불어 신앙과 삶, 기도와 활동 사이에 균형을 유지했습니다. 이런 면에서 그는 현대 성인의 선구자요 리더의 모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스테파노의 성모님을 향한 사랑은 각별했습니다. 그는 헝가리 왕국이 성모님의 푸른 망토 안에 머물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더불어 헝가리 모든 백성들이 성모님을 사랑하고 공경하도록 적극 장려했습니다. 그래서 성모승천대축일을 국경일로 정하기까지 했습니다. 그가 얼마나 성모님을 사랑했던지 그는 가급적 성모님 축일에 임종하기를 간절히 원했는데 마침내 그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는 1038년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에 선종했습니다. 임종의 고통 속에서도 그는 신생 헝가리 왕국을 성모님께 맡기고 성모님의 보호를 청하는 기도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숨이 멈추는 순간까지 성모님의 이름을 부르며 그렇게 그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스테파노는 하느님 앞의 한 신앙인으로서 성모신심에도 투철했지만 왕으로서 권력을 행사하는 과정에서도 각별한 성모신심을 드러냈습니다. 그도 세상을 통치해야하는 왕이었던지라 불가피하게 군대를 동원할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공포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몇몇 영주들이 반기를 들었는데 어쩔 수 없이 군대를 파견하게 되었습니다. 출정식 전에 스테파노는 성당으로 들어가 무릎을 꿇었습니다. 모든 것이 하느님 뜻에 따라 평화로이 이루어지도록 오래도록 기도를 올렸고 성모님의 특별한 중재와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의 기도가 하늘에 닿았던지 사태는 원만하게 해결되었고, 반군을 진압한 후에도 그는 패장들을 관대하게 끌어안는 여유를 보여주었습니다. 왕권의 상징이었던 왕관과 홀, 그리고 검까지도 하느님과 성모님께 봉헌했던 참 신앙인 스테파노였습니다. 성모님께 자신의 왕관을 봉헌한 스테파노의 오른 손은 아직도 잘 보존되어 매년 헝가리의 성 스테파노 대축일 때마다 부다페스트 거리를 순회하며 헝가리 백성들을 축복하고 있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