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19주간 금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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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4-08-16 | 조회수91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연중 제19주간 금요일] 마태 19,3-12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질문을 던집니다. “무엇이든지 이유만 있으면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 당시 유다인들은 모세가 정한 ‘혼인의 예외규정’을 근거로 이혼을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신명기를 보면 모세가 “아내에게서 추한 것이 드러나거나 눈에 들지 않는 경우, 남편은 이혼 증서를 써 주고 아내를 자기 집에서 내보낼 수 있다.”(신명 24,1-4)라고 규정해 놓았지요. 변심한 남편 때문에 하루 아침에 집에서 쫓겨나 먹고 살 길이 막막해진 아내들이 다른 사람과 혼인하여 가정을 이룰 수 있게 하려고 만든 규정인데, 어떤 랍비는 이 규정을 해석하면서 ‘추한 것’이란 남녀 사이에 벌어지는 일 중에 하느님 보시기에 추한 죄인 ‘간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 죄를 저질렀을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이혼할 수 있다고 엄격하게 적용했지만, 다른 이들은 사소한 이유라도 남편의 눈에 추하게 여겨지면 언제든 이혼할 수 있다는 식으로 확대해석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점점 이 규정은 남성의 외도와 이혼을 당연한 권리로 보장하는 근거로 여겨지게 되었지요.
이처럼 이혼 규정에 대한 여러 해석이 분분한 가운데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이 규정에 대한 당신 입장을 밝히라고 요구한 겁니다. 예수님께서 개인적 의견으로 ‘남편이 아내를 버리면 안 된다’라고 하시면 그들은 모세가 정한 율법을 부정했다며 몰아세울 것이고, 버리면 안 된다고 하시면 ‘당신이 그렇게 강조하던 사랑과 자비는 어디로 갔느냐’며 예수님을 한 입으로 두 말 하는 변덕쟁이라고 비난할 작정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바리사이들의 의도를 알아채신 예수님은 당신 개인의 의견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께서 정하신 원칙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창세기를 보면 창조주 하느님께서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는데 그렇게 만드신 이유는 남자와 여자가 사랑으로 서로 결합하여 완전한 일치를 이루기를 바라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창조주이신 하느님께서 당신의 선하신 뜻으로 남녀가 ‘일치’하기를 바라시는데, 한낱 피조물인 인간이 제 욕망을 채우기 위해 배우자와 갈라서려고 한다면 그건 하느님의 뜻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죄’라는 것이지요.
자기 배우자와 헤어질 생각을 하는 건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지 않으면서 개인적 이익을 위해 같이 살기에 그 사람과의 관계가 좋을 때에는 제 맘대로 소유하려고 들고, 그 사람이 싫어지면 아이가 싫증 난 장난감 버리듯 버리려고 드는 겁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런 마음가짐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하십니다. 하느님께서 만드신 사람은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할 대상이라고, 남자와 여자는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관계가 되어야지 상대방을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삼으려고 들어서는 안 된다고, 부부 공동체는 힘겨운 인생길을 함께 걷는 ‘동반자’이자, 힘들 때 곁에 있어주며 위로해주고 힘을 주는 ‘반려자’라고 말씀하십니다. 결혼을 하기도 전부터 연봉 학벌 집안 같은 조건들을 꼼꼼하게 따지고 드는 우리 모습이 참으로 부끄러워지게 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동반자이자 반려자 관계는 단순히 남자와 여자 사이에만 국한되는게 아닙니다. 나와 이웃 형제 자매 사이의 관계도 마찬가지지요. 하느님께서 선하신 뜻을 가지고 귀하게 창조하시어 나에게 보내주신 그 소중하고 특별한 사람을 내 욕망에 휘둘려 ‘물건’처럼 여겨서는 안되겠습니다. 하느님께서 그 사람을 통해 나에게 전하시려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그 사람과 내가 어떤 방식으로 협력하고 일치하여 하느님께서 그와 나를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그 뜻을 이룰 수 있을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실행해야겠습니다. 그것이 부족한 존재인 나와 그, 즉 우리가 참된 완성에 이르는 길입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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