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4년 3월 20일 수 평화방송 유튜브 미사 참례, 사제 박재찬 안셀모 신부의 복음 말씀 강론 한영구 실명입니다. 닉네임이 아닙니다 2024. 3. 2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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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영구 | 작성일2024-08-19 | 조회수43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4년 3월 20일 수 평화방송 유튜브 미사 참례, 사제 박재찬 안셀모 신부의 복음 말씀 강론
복음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는 정녕 자유롭게 될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31-42 그때에 31 예수님께서 당신을 믿는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32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33 그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아무에게도 종노릇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찌 ‘너희가 자유롭게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십니까?” 3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죄를 짓는 자는 누구나 죄의 종이다. 35 종은 언제까지나 집에 머무르지 못하지만, 아들은 언제까지나 집에 머무른다. 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는 정녕 자유롭게 될 것이다. 37 나는 너희가 아브라함의 후손임을 알고 있다. 그런데 너희는 나를 죽이려고 한다.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38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이야기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실천한다.” 39 그들이 “우리 조상은 아브라함이오.” 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면 아브라함이 한 일을 따라 해야 할 것이다. 40 그런데 너희는 지금, 하느님에게서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이야기해 준 사람인 나를 죽이려고 한다. 아브라함은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 41 그러니 너희는 너희 아비가 한 일을 따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우리는 사생아가 아니오. 우리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느님이시오.” 4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하느님께서 너희 아버지시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할 것이다. 내가 하느님에게서 나와 여기에 와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나 스스로 온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찬미 예수님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진리가 어떻게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 있을까요? 오늘 복음의 이 말씀을 들으면 우리는 빌라도처럼 묻게 됩니다. 진리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바로 진리 십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말씀하셨죠. 그럼 예수님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신다는 의미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지금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자유롭습니까? 아니면 속박을 느낍니까? 만약 예수님 안에서 구속감을 느낀다면 왜 그럴까요? 성당에 다니는 것이 힘들고 기도가 의무감으로 느껴진다면 왜 그럴까요?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제가 신학생 시절 즐겨 부르던 교회 중창단의 이 사랑이라는 생활성가 가사가 먼저 떠오릅니다. 방송 미사가 아니라면 제가 멋지게 노래를 불렀을 텐데, 가사를 이제 읊어드리겠습니다. 사랑이라는 그 말을 잊고 살아왔네. 너를 사랑한단 그분의 작은 음성이 느껴졌을 때 어두운 내 마음은 한 줄기 빛처럼 환하게 됨을 느꼈지. 진리가 너를 자유롭게 한다. 는 그 말 이해할 것 같아. 언제나 나를 사랑하시는 그분 한 분만 위해서 나 노래하리라. 사랑 그분만을 영원히 사랑하리. 뭐 이런 노래 가사입니다. 이 노래에서 작곡가는 진리가 너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말을 이해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예수님께서 나를 사랑한다는 그 사랑의 고백을 통해서 가능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사실 사람들 사이에서도 서로가 너무도 사랑할 때는 서로 함께 있는 것이 참 행복하고 서로에게 자유롭게 행동해도 아무런 구속을 느끼지 않게 되죠. 그런데 나의 사랑이 혹은 너의 사랑이 약해지거나 자신의 방식을 고집할 때 어느덧 그 사람의 사랑은 구속이 되고 우리는 자유롭지 못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남편이나 아내가 없을 때 오히려 더 해방감을 느낀다는 분들도 계십니다. 분명 사랑과 자유는 이렇게 긴밀히 연결 되어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과 우리 사이에 사랑과 자유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요? 오늘 복음의 말씀에 비추어 우리가 진정 예수님의 진리 안에서 어떻게 영적인 자유로움을 누리며 살 수 있는지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합시다. 먼저 앞서 말씀드린 대로 서로를 향한 사랑이 깊으면 깊을수록 둘은 하나가 되어 더 큰 충만 함안에서 서로를 신뢰하기 때문에 뭘 해도 됩니다. 그죠? 자유롭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지금 내가 예수님 안에서 영적으로 자유롭지 못하다면 그만큼 예수님과의 깊은 사랑과 일치의 유대가 부족하다는 의미일 수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이것은 결국 내가 아직 예수님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죠. 내 방식이 아니라 예수님의 방식으로 건너가야 함을 느끼게 됩니다. 이런 우리의 모습은 오늘 유다 인들을 통해서 또한 잘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유에 대해 말하자 유다 인들은 뭐라고 했습니까? 자유에 대한 표면적인 이해만 했죠. 그래서 종 노릇한 적 없다.라고 합니다. 종이 아니고 자유인이라서 이미 자유롭다는 주장이겠죠.
다른 사람들의 말의 노예로 때로는 물질의 노예로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그것은 너희 안에 내가 있을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유다인들이 아브라함을 통해 이미 들은 하느님께 대한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던 것처럼, 우리 역시 이미 무수히 들은 예수님에 대한 말씀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영적인 교만에 빠져 있을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매 형제 여러분 진정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자유롭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오늘 복음의 마지막 구절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느님께서 너희 아버지시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할 것이다. 내가 하느님에게서 나와 여기에 와 있기 때문이다. 더 많이 예수님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우리는 그분의 사랑을 깨닫게 되고, 그분께서 모든 것에 자유로우신 것처럼 우리도 진정 자유롭게 될 것입니다. 내 틀에 예수님을 넣으려고 하지 말고, 내 방식대로, 내 사랑대로 주님을 만들려고 하지 말고, 또 이웃들을 내 사랑으로 구속하려고 하지 말고, 우리는 예수님과 그 사람을 자신의 감옥에 가두어 숨 막히게 하지 말고, 하느님 사랑 안에서 자유롭게 기다리는 사랑을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할 때 예수님은 지금 여기에 우리 삶의 자리에 와 계시며 우리를 자유롭게 해 주실 것입니다. 이 미사에 함께하시는 여러분 모두가 이제 내 방식을 내려놓고 그분의 섭리에 자신을 맡기며, 예수님께서 침묵 가운데 전해주시는 그분의 크신 사랑의 속삭임을 느끼고 체험해 나가시기를 빕니다. 그리하여 그분 안에서 참된 자유를 누리며 거룩한 사순 시기를 마무리하고 사랑으로 충만한 성주간을 보내시기를 빕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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