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미사의 말씀은 하느님 백성이고 신부인 우리의 자격을 돌아보게 해 주십니다.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는데"(마태 22,8) 성경의 언어에서 혼인은 하느님과 우리 인간의 관계를 표현하는 중요한 단어입니다. 임금님 아들의 혼인 잔치 비유는 한편으로는 이 지상에서 하느님 백성으로 초대받음을 의미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내세에서 어린양의 천상 혼인 잔치에 참여하는 영광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마태 22,9) 혼인 잔치가 준비되었지만 처음 초대받았던 이들이 참석을 거부합니다. 제 일들이 먼저였고, 그만큼 잔치는 안중에도 없었고, 또 임금과 종들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지만, 복음사가는 그 이유에 대해 별로 지면을 할애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이들에게 거부 당하고 버림 받은 하느님의 모습이 비쳐지지요. 구약성경에서 예언자들이 내내 부르짖는 외침이 바로 이처럼 상처입은 하느님의 목소리였습니다.
게다가 종들까지 붙잡히고 얻어맞고 죽음을 당했다니 행복해야 할 혼인 잔치가 피로 얼룩지고 말았습니다. 임금은 진노하여 그들을 처단하고 종들에게 새로이 하객들을 불러모으도록 지시합니다. 혼인 잔치에 축하객이 없다는 건 임금의 수치가 될 일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나 만나는 대로" 처음에 심혈을 기울여 고심하며 초대 명단을 뽑았을 임금이 이번에는 마음을 비우고 대문을 활짝 열어젖힙니다. 혼인 잔치가 누구라도 올 수 있게 모두에게 열린 장으로 변합니다.
처음 초대를 받았지만 참여를 거부한 이들 덕분에 다른 많은 이들이 혼인 잔치에 참여할 기회를 얻습니다. 마치 구약의 하느님 백성인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아들이신 참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길 거부하고, 모든 이민족들에게 구원의 지평이 무한히 확대된 인류의 구세사와 맥을 같이합니다.
"혼인 예복도 갖추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왔나?"(마태 22,12) 그런데 한없이 허용적일 것 같았던 임금이 제동을 겁니다. 아들의 혼인 잔치에 "아무나" 들어올 수는 있어도, 혼인 예복만은 반드시 갖춰 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복을 입지 않은 이는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가혹한 징벌을 받지요. 이런 임금님 태도의 반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혼인 예복" 혼인은 신랑 신부, 두 개인 뿐만 아니라 가족과 가문과 지역을 하나로 아우르고 일치시키는 중요한 행사입니다. 혼인 잔치에 참석할 때 입는 예복은 신랑 신부는 물론 가족과 가문과 지역에 대한 예의와 존중을 표현하기에 가난한 이건 부유한 이건 나름 정성껏 마련해 놓았지요.
제1독서에서는 배반과 불륜으로 하느님에게서 멀어진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님께서 관계의 회복을 선언하십니다.
"너희가 그들 사이에서 더럽힌 내 큰 이름의 거룩함을 드러내겠다."(에제 36,23) 이미 하느님과, 신부인 당신 백성과의 혼인은 신부의 불륜으로 오염되고 말았습니다. 하느님 편에서 우상숭배로 부정해진 신부를 얼마든지 내치셔도 좋을, 그런 상황을 신부 스스로 자초한 것이지요.
그런데 더럽혀진 당신 이름의 거룩함을 회복하는 주님의 해법은 인간의 방식과 사뭇 다릅니다. 그분은 더럽혀진 것을 송두리째 도려내거나 잘라내 버리는, 그야말로 이스라엘과 완전히 갈라서는 방법을 선택하지 않으시지요.
"너희에게 정결한 물을 뿌려, 너희를 정결하게 하겠다. ... 새 마음을 주고 새 영을 넣어 주겠다. ... 살로 된 마음을 넣어 주겠다."(에제 36,25-26) 하느님은 당신 아닌 다른 애인에게 눈을 돌리게 만든 굳은 마음, 돌 같은 마음을 치우고 살처럼 부드럽고 새로운 마음으로 갈아 넣어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네가 지금 어떤 상태여도 다시 나의 신부다움을 되찾아 주어, 우리의 사랑을 깨뜨리지 않겠다. 네가 아무리 불결하고 부정해도 너를 떠나지 않겠다.'는 하느님의 마음이 읽힙니다.
사실 주님 앞에서 우리는 그리 교만할 일도 우쭐할 일도 없습니다. 우리가 그저 "아무나" 중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혼인 잔치에 참여하려면 '아무나'일지언정 혼인 예복은 필수로 갖추어야 합니다. 주님의 신부로 불리움 받아 주님과의 사랑과 일치의 혼인 상태에 머무르려면 꼭 갖추어야 할 무엇이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의 독서는 그 자격이 "정결"과 "새 마음과 새 영", "살로 된 마음"이라고 일러 줍니다. 이는 주님의 은총과 우리의 결단이 이루는 협주에서 비롯되지요.
사랑하는 벗님! 주님은 이미 불결해진 우리를 정화해 가장 아름다운 신부의 모습을 되찾아 주시려고 결심하셨습니다. 이제는 우리 쪽에서 그분께로 나아가기 위한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동안 알고도 모르고도 눈 돌렸던 애인들, 주님보다 더 애착하고 기대했던 재물이며 사람이며 자기 영광 등의 우상을 치우고, 정성껏 혼인 예복을 갖춰 입는 일이 남아 있습니다.
"오늘 너희는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복음환호송) 오늘 우리가 들은 말씀으로 결단하고 주님께 돌아설 수 있다면, 이 순간이 바로 구원의 때가 됩니다. 새 마음과 새 영을 갖추고 다시 일어서서 신랑이신 분께 고이 나아가는 오늘 되시길 축원합니다.
▶ 작은형제회 오 상선 바오로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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