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조욱현 신부님_8월 23일 연중 제20주간 금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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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4-08-23 | 조회수43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36절). 바리사이는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그렇게 부르고 있다. 예수께서는 그에게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 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37절) 말씀하신다. 이것이 가장 큰 계명이며 첫째 계명이다. 첫째 계명은 하느님을 공경하는 것과 관련한 모든 것을 가르쳐 준다. 마음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선의 바탕이기 때문이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39절)는 것이다. 둘째 계명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다. 첫째 계명은 둘째 계명을 실천할 수 있도록 준비해주고, 둘째 계명으로 입증된다. 하느님의 사랑 안에 굳게 서 있는 사람들은 모든 일에 있어 이웃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 안에 가치관이 확실히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모든 것 위에, 첫 자리에 하느님이 자리하고 계셔야 한다. 하느님보다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느님이 아닌 다른 것이 첫 자리를 차지한다면, 그것이 우상이다. 우상 숭배는 다른 것이 아니다. 하느님이 계셔야 할 자리에 재물이나, 자식이나 사상이나 이념이 자리하는 것이다. 하느님-인간-세상-재물로 순서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 가치관이 서 있을 때, 우리는 첫째 계명과 둘째 계명을 올바로 실천할 수 있다.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라고 하셨다.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된 사람은 사랑할 줄 알고 사랑을 해야 하고, 사랑을 받아야 하는 사랑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존재이다. 하느님께서 사람을 당신의 모습대로 지으셔서 이 세상에 당신의 대리자로 세우셨다면, 우리는 그 인간의 모습을 통해서 하느님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에 우리가 보는 나의 이웃은 바로 눈에 보이는 하느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하느님을 사랑하면서 우리는 또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눈에 보이는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어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겠는가? 그런 사람은 거짓말쟁이라고 하였다. 상대방도 하느님의 모습이고 나 자신도 하느님의 모습이라면 인격적인 사랑의 나눔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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