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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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4-08-24 | 조회수66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 요한 1,45-51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필립보 사도가 두번째로 선교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함께 생활하면서 그분께서 ‘주님’이심을 확신하게 된 필립보가 자기와 뜻을 같이 하는 친구 나타나엘을 만나서는 자기들이 그토록 고대하던 ‘메시아’를 드디어 만난 것 같다며 예수님에 대해 소개한 겁니다. 하지만 나타나엘은 그의 말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가 성경에 대해 박식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따르면 메시아는 나자렛 같은 별 볼 일 없는 시골 마을이 아니라, 다윗의 성읍인 유다 땅 베들레헴에서 태어난다고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랬기에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느냐’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그러나 “와서 보시오”라며 자기를 잡아끄는 필립보의 당당하고도 담대한 태도를 보고는 그를 신뢰하는 마음으로 예수라는 분을 한 번 만나보기로 합니다. 우리 속담으로 ‘친구 따라 강남 간’ 것이지요.
한편 예수님께서는 필립보가 나타나엘과 함께 당신께로 오는 모습을 멀리서부터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그리고는 필립보야 말로 열심히 하느님의 뜻을 찾으며 그분을 따르기 위해 노력하는 참된 이스라엘 백성의 표본이라고 말씀하시지요. 이에 깜짝 놀란 필립보가 우리는 오늘 처음 본 사이인데 나에 대해 어떻게 아시느냐고 묻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이 말씀은 일종의 ‘은유’로써, 당시 많은 유다교 랍비들이 무화과나무 그늘 아래에 앉아서 성경 말씀을 공부하던 모습에 빗대어, 나타나엘이 하느님 말씀을 열심히 연구하고 묵상하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음을 당신께서 알아보셨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내가 보았다”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필립보가 나타나엘을 부르기 전부터 이미 그를 보고 계셨다는 인지적인 측면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큰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나타나엘을 주목하고 계셨다는 의지적인 측면까지 포괄하는 표현입니다.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을 주시하고 계셨던 것은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은 곧 바라봄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자꾸만 관심이 생기고 시선이 가서 그를 바라보게 되는 겁니다. 그에게서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게 되지요. 나타나엘은 자신을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시며 자기 마음 속까지 훤히 꿰뚫어보시는 예수님의 권능에 압도됩니다. 또한 백성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과 관심으로 지켜보시며 그 마음까지 따뜻하게 헤아려 주시는 그분이야말로 자신이 그토록 고대해온 ‘구세주’이심을 확신하게 됩니다. 성경에 문자로 기록된 딱딱한 메시아가 아니라 자기 마음 속에 들어오신 ‘살아계신 주님’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지요. 이에 예수님께 대한 자신의 믿음을 고백합니다.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이 나타나엘이 우리가 오늘 축일을 지내는 ‘바르톨로메오’ 사도입니다. 교회 전승에 따르면 바르톨로메오 사도는 현재 이란 영토인 메소포타미아와 파르티아 그리고 현재 터키에 속하는 키라오니아, 아르메니아 등지에서 적극적인 선교활동을 펼쳐나갔다고 전해집니다. 그의 선교사업은 가는 곳마다 큰 성공을 거두었지요. 그러나 그 모습을 시기한 이교 사제들로부터 사악한 주술을 쓰는 마법사라는 모함을 당해 체포되고 순교하게 됩니다. 산 채로 살가죽이 벗겨지는 것으로도 모자라 그 상태로 십자가에 못 박히고 마지막으로 참수까지 당하는 너무나 고통스러운 죽음이었지요. 그런 모진 박해와 고통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신앙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주님’께서 언제나 나와 함께 계시며 나를 사랑하신다는 믿음 덕분이었습니다. 주님의 뜻을 따르는 과정에서 시련과 고통을 겪는 우리에게도 그런 믿음이 꼭 필요합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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