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21주간 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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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 작성일2024-08-25 | 조회수230 | 추천수4 | 반대(0) |
‘지킬과 하이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인간의 내면에는 선과 악이 공존합니다. 누가 이길까요? 먹이를 많이 주는 쪽이 이깁니다. 33년 사제 생활 중에 난처한 일도 있었고 보람된 일도 있었습니다. 주일학교 교사들과 단합대회를 갔었습니다. 젊은 혈기와 적당한 취기에 타 대학 학생들과 시비가 있었습니다. 우리 교사의 실수가 명백했고, 사과하면서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런데 교사들은 저의 결정에 대해 서운하게 생각했습니다. 어찌 되었든 교사들을 보듬어야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아쉽습니다. 늦은 시간 사제관에 도착하니 빗장이 잠겼습니다. 벨을 누르니 본당신부님이 열어 주시면서 지금 몇 시냐고 물었습니다. 시간을 묻지만 왜 늦게 다니는가에 대한 질책이었습니다. 전후 사정을 말했지만, 문 앞에 세워놓고 말씀하시니 서운했습니다. 주교님께서 저를 부르신 적이 있습니다. 주교님께서는 저의 생활에 관해서 이야기하였습니다. 저는 주교님의 이야기를 듣고 생활 습관을 바꾸었습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주교님께 감사드립니다. 일찍 일어나는 습관은 제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30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습니다. 기분 좋았던 일도 많았습니다. 소공동체 연수가 필리핀에서 있었는데 추천받아서 다녀왔습니다. 처음으로 해외로 나갔습니다. 부족한 저를 추천해 주신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필리핀에서 복음나누기 7단계, 아모스 프로그램을 배웠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2000년대 복음화를 위한 초석이 되었습니다. 당시 필리핀에 교포 사목으로 가 있던 친척 신부님이 따뜻하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그때의 경험이 인연이 되어서 지금도 미국에 있는 것 같습니다. 도축장에서 일하던 형제님이 있었습니다. 큰 싸움으로 벌어질 일이 있었는데 당시 본당신부로 있던 저를 생각해서 참았다고 하였습니다. 제가 도축장은 칼을 사용하는 곳이니, 늘 조심하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형제님은 제 말을 귀담아들었고, 큰 싸움을 피할 수 있었다고 고마워했습니다. 한 형제님은 ‘신사부일체(神師父一體)’라고 후배에게 말하였습니다. 후배가 무슨 뜻인가 물었습니다. 형제님은 ‘신부님과 스승과 부모임은 같다.’라고 하였습니다. 신앙이 없던 후배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돌아보면 부족한 저를 과분하게 믿어주고, 사랑해 주었던 교우들이 많았습니다. 30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와 바리사이의 위선과 교만을 질책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사람들 앞에서 하늘나라의 문을 잠가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자기들도 들어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들어가려는 이들마저 들어가게 놓아두지 않는다.” 예수님께서는 고집불통인 사제에게도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십자가를 외면한 권위로 사목하려는 사제에게도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말씀으로 시대의 징표를 드러내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선포하려는 사제에게도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지나친 음주와 가무로 본인은 물론, 공동체에도 어려움을 초래하는 사제에게도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기도와 묵상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해야 하는데 게임과 놀이로 세상의 것에서 기쁨을 얻으려는 사제에게도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사제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외면하고, 사제에게 필요한 사람을 먼저 만나려는 사제에게도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죽비’가 되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사제들이 있습니다. 33년을 돌아보면 저 역시도 부끄러움이 많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교우들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그 모든 박해와 환난을 겪으면서도 보여준 인내와 믿음 때문에, 하느님의 여러 교회에서 여러분을 자랑합니다. 이는 하느님의 의로운 심판의 징표로, 여러분이 하느님의 나라에 합당한 사람이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평생 가난한 이들을 돌보았던 요셉의원의 고 선우경식 선생님이 생각납니다. 이태석 신부님의 삶과 영성을 알리고 있는 구수환 선생님이 생각납니다. 눈이 내리는 날이면 어김없이 성당 마당의 눈을 쓸던 바오로 형제님도 생각납니다. 홀로 계신 어르신들에게 도시락을 가져다드린 루시아 자매님도 생각납니다. 교포사목의 시작도 그랬습니다. 교우들이 몇 시간씩 운전하고 와서 공소예절을 했습니다. 기쁨이 넘쳤고, 사제를 모시려고 했습니다. 땀 흘려 벽돌을 날랐고, 물건을 팔았고, 눈물로 성전을 세웠습니다. 사제를 모시고, 첫 미사를 드리던 날은 모두 감사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민 교회는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교우들이 신앙의 씨를 뿌렸고, 사제가 함께 하면서 50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예수님께 칭찬받을 수 있고, 예수님께 엄한 질책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내 안에 있는 선과 악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악에게 먹이를 주고, 악과 함께 지낸다면 우리는 또다시 주님께 엄한 질책을 받을 것입니다. 선에게 먹이를 주고, 선과 함께 지낸다면 우리는 언제나 주님께 사랑받는 제자가 될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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