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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송영진 신부님_<‘최후의 심판’은 글자 그대로 ‘최후’의 심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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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4-08-29 조회수53 추천수2 반대(0) 신고

“그때에 하늘나라는 저마다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길 수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 다섯은 어리석고

 

다섯은 슬기로웠다.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은 가지고

 

있었지만 기름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과 함께 기름도 그릇에 담아 가지고 있었다.

 

신랑이 늦어지자 처녀들은 모두 졸다가 잠이 들었다. 그런데

 

한밤중에 외치는 소리가 났다. ‘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그러자 처녀들이 모두 일어나 저마다 등을

 

챙기는데, 어리석은 처녀들이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우리

 

등이 꺼져 가니 너희 기름을 나누어 다오.’ 하고 청하였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안 된다. 우리도 너희도 모자랄

 

터이니 차라리 상인들에게 가서 사라.’ 하고 대답하였다.

 

그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왔다. 준비하고 있던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혔다.

 

나중에 나머지 처녀들이 와서 ‘주인님, 주인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지만, 그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마태 25,1-13).”

 

 

 

1) 여기서 ‘어리석다. 슬기롭다.’ 라는 말은,

 

산상설교에 있는 다음 말씀에 연결됩니다.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모두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을 것이다.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들이쳤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반석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지 않는 자는 모두 자기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휘몰아치자 무너져 버렸다.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마태 7,24-27).”

 

기름을 미리 준비한 ‘슬기로운 처녀들’은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슬기로운 사람들이고, 기름을 준비하지

 

않은 ‘어리석은 처녀들’은 자기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신랑이 어리석은 처녀들에게 하는 말,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 라는 말은, 산상설교의 다음 말씀에 연결됩니다.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주님, 주님! 저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일으키지 않았습니까?’ 하고

 

말할 것이다. 그때에 나는 그들에게,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내게서 물러들 가라, 불법을 일삼는 자들아!’

 

하고 선언할 것이다(마태 7,22-23).”

 

이 말씀의 바로 앞에는,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서 ‘기름’을 미리 준비한다는 것은 ‘하느님의 뜻’과

 

‘예수님의 말씀’을 실행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슬기로운 처녀들’은 주님의 말씀을 잘 새겨듣고 실행하는

 

사람들이고, ‘어리석은 처녀들’은 듣기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은 사람들입니다.

 

<처음부터 주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않은 사람들과

 

주님의 말씀은 듣지 않고 세속의 소리에만 귀를 기울인

 

사람들도 모두 ‘어리석은 처녀들’에 포함됩니다.>

 

 

 

2) ‘열 처녀의 비유’에서 “신랑이 늦어지자 처녀들은 모두

 

졸다가 잠이 들었다.” 라는 말은, 인간들의 생각보다

 

예수님의 재림이 늦어질 수도 있음을 나타내는 표현일

 

뿐이고, “깨어 있어라.” 라는 말씀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 날과 그 시간은, “예상하지 못한 날,

 

짐작하지 못한 시간”이라고 표현됩니다(마태 24,50).

 

<이 말은, 예수님께서 의도적으로 그렇게 갑자기

 

재림하신다는 뜻이 아니라, 종말과 재림의 날과 시간은

 

인간들이 미리 계산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사이비 종교에서 종말의 날짜를 자기들 마음대로

 

계산해서 예고하고, 그래서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일들이

 

자주 생기는데, 그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래도 “종말과 재림이 언제인지 미리 아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날과 그 시간을 미리 아는 것이 정말로 좋은 일일까?

 

만일에 주님께서 종말의 날과 당신의 재림 날을 미리

 

예고하신다면, 잘 준비하고 차분하게 기다리는 사람도

 

조금은 있겠지만, 아마도 인간 세상은 굉장히 큰 혼란 속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남은 인생을 포기할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그 날이 되기 직전에 회개하면 되겠지.” 라는 생각에서

 

쾌락에 빠져들 것이고, 그리고 그 예고 자체를 아예

 

무시하거나 믿지 않는 사람들도 많을 것입니다.

 

어떻든 종말과 재림은, 판공성사 날짜를 미리 공지해서

 

준비하게 하는 것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일입니다.

 

회개는 평소에 늘 해야 하는 일이고,

 

‘깨어 있는 일’도 평소에, 즉 ‘지금’ 해야 하는 일입니다.

 

평소에(지금) 하지 않고 갑자기 하는 회개는, 또는 억지로

 

하는 회개는 ‘진정성 없는’ 회개이고, 그런 회개는 회개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3) “어리석은 처녀들이 잘못하긴 했지만 그래도 문을

 

닫아버리고 들어오지 못하게 막으면서,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 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 심하지 않은가?” 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비유는 비유일 뿐입니다.

 

‘최후의 심판’은 글자 그대로 ‘최후’의 심판이기 때문에,

 

더 이상의 기회가 없습니다.

 

그리고 하느님 나라에 못 들어가는 사람들은,

 

주님께서 문을 닫아버려서 못 들어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자기들이 안 들어가서 못 들어가는 사람들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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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연중 제21주간 금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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