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수철 신부님_주님 중심의 삶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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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4-09-04 | 조회수61 | 추천수6 | 반대(0) 신고 |
“하느님 나라의 비전, 치유, 분별의 지혜”
“행복하여라, 주님을 하느님으로 모시는 민족, 그분이 당신 소유로 뽑으신 백성! 주님은 하늘에서 굽어보시며, 모든 사람을 살펴 보신다.”(시편33,12-13)
세월 흘러 세속화 되어 갈수록 “하느님 중심의 삶”이 얼마나 절실한지 깨닫습니다. 새벽 유투브 동영상 뉴스를 얼핏 보니 3대 사찰 중 하나인 가야산의 해인사도 찾는 사람들이 많이 줄어 들었다 하며 대부분 사찰이 그렇다 합니다. 종교가 본연의 사명을 잃고 속화되어갈 때의 자업자득이겠습니다. 불교뿐 아니라 모든 종교에 공통적 현상입니다. 오늘 옛 현자의 말씀도 “하느님 중심의 삶”의 중요성을 상기시킵니다.
“팔십억 명의 손가락질은 피할 수 있어도, 내면에 있는 부끄러움에서 도망칠 수는 없다.”<다산> 그 누구도 가장 가까이 내면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을 피해 도망칠 수는 없습니다. 어디로 가도 나보다 먼저 와 기다리시는 하느님입니다.
“열 눈이 보고 열 손이 가리키니 무섭구나.”<대학> 열 눈이, 열 손이 상징하는바 어디에나 계신 하느님입니다. 새벽 수도원 숙소의 문을 열면 전개되는 풍경은 늘 새로워 흡사 하느님을 뵙는 듯 저절로 나오는, 며칠전 인용했던 고백시입니다.
“문열면 한눈 가득 들어오는 가슴 가득 안겨오는 푸른 하늘 흰 구름 빛나는 별들 그리운 당신 보고 싶은 당신”
물론 그리운 당신, 보고 싶은 당신이 가리키는 바 하느님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을 모시고 하루를 시작하는 느낌입니다. 삶의 중심에, 치유의 중심에 하느님이, 예수님이 계십니다. 주님 자체가 힐링이자 치유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집인 수도원을 힐링의 집이라 부릅니다. 주님을 만나는 미사보다 더 좋은 힐링의 치유도 없습니다. 오늘 복음도 치유의 중심에 예수님이 계심을 보여줍니다.
“시몬의 장모가 심한 열에 시달리고 있어서, 사람들이 그를 위해 예수님께 청하였다.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가까이 가시어 열을 꾸짖으시니 열이 가셨다.”
중요한 사실은 치유된 시몬의 장모는 즉시 주님의 일행을 섬기는 시중드는 일에 몰입했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이웃을 섬기라 있는 치유의 건강임을 배웁니다. 이어 예수님은 많은 병자를 고치시니 예수님은 명실공히 치유의 중심임을 깨닫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손을 얹으시어 고쳐 주시니 마귀들도 소리 치며 도망갑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영육의 치유와 건강에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님이야말로 최고의 처방임을 깨닫습니다. 예수님의 왕성한 치유 활동은 하느님 중심의 삶에서 시작됨을 봅니다. 예수님 삶 중심에 늘 자리하고 있던 ‘외딴곳’입니다. 제 외딴곳은 성전에 붙어있는 집무실입니다.
‘날이 새자 예수님께서는 밖으로 나가시어 외딴곳으로 가셨다.’
예수님의 외딴곳은 아버지와의 만남인 기도터이자 쉼터요, 삶의 중심이자 전체를 멀리 깊이 내다보는 초월적 거점입니다. 바로 여기서 주님은 삶의 중심과 하느님 나라의 비전을, 자신의 복음 선포의 사명을 새롭게 확인했음이 분명합니다. 자기에 집착하는 군중들을 홀연히 떠나 전도 여행에 복음 선포의 순례길에 오른 주님입니다.
“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
모두의 근원적 갈망이, 목마름이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기쁨만이 참 기쁨임을 깨닫습니다. 예수님 자체가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입니다. 우리 또한 예수님과 일치될수록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이 되어 살 수 있고, 이런 삶자체보다 더 좋은 복음 선포도 없을 것입니다.
오늘 코린토 신자들에 대한 바오로의 질책이 참 적절합니다. 바오로 사도의 이런 분별의 지혜는 바로 주님 중심의 삶에서 기인됨을 깨닫습니다. 바오로 편인가 아폴로 편인가 편가르기 하는 육적이며 속된 신자들을 향한 현자 바오로 사도의 가르침입니다.
“아폴로와 나 바오로는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정해 주신 대로, 여러분을 믿음으로 이끈 일꾼일 따름입니다. 나는 심고 아폴로는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자라게 하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그러니 심는 이나 물을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로지 자라게 하시는 하느님만이 중요합니다. 심는 이나 물을 주는 이나 같은 일을 하여 저마다 수고한 만큼, 자기 삯을 받을 뿐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협력자이고, 여러분은 하느님의 밭이며 하느님의 건물입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에 충실할 때 이처럼 상호보완의 조화롭고 평화로운 질서의 교회공동체요, 주님 중심의 삶에서 바오로 사도의 이런 참 좋은 분별의 지혜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에서 하느님 나라의 비전에 치유와 분별의 지혜 은총이요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기도 합니다.
"주님은 우리 도움, 우리 방패, 우리 영혼이 주님을 기다리네."(시편33,20).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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