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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반영억 신부님_제대로 듣고 말할 수 있는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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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4-09-08 조회수84 추천수2 반대(0) 신고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당신의 사랑에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리고 그 사랑 안에 머물 수 있도록 몸소 우리의 귀를 열어주시고 입을 열어주십니다. 이 시간 ‘귀먹고 말 더듬는 이’에 관해 생각하는 가운데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제대로 듣고 제대로 말할 수 있는 은혜’가 주어지길 희망합니다.

 

창세기에 보면, 인간은 하느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습니다.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인간으로, 당신의 숨을 우리에게 불어넣어서 생명을 주셨습니다(창세1,27.2,7). 따라서 하느님께 가까이 가기 위해서는 하느님으로부터 말씀을 듣고 제대로 말할 수 있도록 길들여져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무엇보다도 먼저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 것에 익숙해야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오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제대로 듣지 못하면 제대로 말할 수 없고 말씀대로 살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듣기를 간절히 원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말씀은 어떻게 들을 수 있습니까? 가장 확실한 방법은 성경을 통해서입니다. 성경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입니다”(성 예로니모). 기록된 하느님의 말씀이기에 우리가 눈을 통해서 마음으로 읽어야 하지만 그분은 말씀하시고 나는 듣는 것입니다. 말씀과 함께하려는 정성이 있을 때 어느 순간 살아있고 힘이 있는 능력의 하느님(히브4,12)을 체험케 됩니다.

 

신자들이 세속적인 이야기는 많이 하면서 하느님의 말씀 앞에서는 귀먹고 말을 더듬는 이가 많습니다. 사실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리스도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며 살아가겠다고 나선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말씀을 알아들어야 하고 그리스도의 언어로 말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알아듣지 못하고 또 복음적으로 말하지 못하고, 또 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경대로 생각하고 성경대로 살자!”라고 마음속으로 다짐하면 좋겠습니다.

그룹모임에 가보면 자유 기도를 잘 하지 않습니다. 한다 해도 내 바람만 얘기하고, 말씀을 중심으로 기도하지 못합니다. 말씀 나누기에도 입을 꼭 다물고 계십니다. 사회적으로는 공부도 많이 했고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도 하느님의 말씀 앞에서는 침묵하고 계신 분들이 있습니다. 왜 그럴까? 밖에서는 그렇게 말씀을 잘하시는 분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는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려 노력하지 않은 채 그냥 세상에 묻혀 살기 때문입니다. 입술로는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마음과 행동은 전혀 말씀과 함께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가 귀먹고 말을 더듬는 반벙어리입니다. 세상 것을 즐기는 시간과 하느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시간을 비교해 보십시오. 부끄럽습니다.

 

성경을 펴십시오! 그리고 주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귀가 열리고 입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 비판 정신으로 읽을 것이 아니라 단순한 마음으로 읽으십시오. 마치 자녀가 아버지의 편지를 읽을 때에 문법을 따지지 않듯이, 식탁에서 밥을 먹을 때에 영양가를 분석하지 않고 먹듯이 성경을 읽으시길 바랍니다”(알베리오네 신부). 일반 소설책은 밤을 새워 읽지만, 성경이나 신심 서적은 그렇게 읽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주님의 은총을 기대하고 있으니 안타깝습니다. 시간을 내십시오. 그만큼 은혜로울 것입니다.

 

귀먹었다는 것은 들을 귀가 없다는 뜻입니다. 귀가 있어도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사람은 귀먹은 사람입니다. 입이 있어도 하느님에 대해 한마디 말하지 못하는 사람은 말 더듬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빵의 기적에 관한 가르침을 듣고도 마음이 완고해서 알아듣지 못했고, 호숫가에서 자기들을 구하러 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유령인 줄 알고 비명을 지르면서 제대로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바로 귀먹고 말 더듬는 이의 모습입니다. 그 모습이 바로 오늘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요?

 

오늘 복음의 치유 과정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1). 예수님께서 환자를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셨습니다. 따로 불러낸다는 것은 사랑의 표현이고 배려입니다. 무엇보다 안정시킬 수 있는 곳이요, 당신의 말씀에 온전히 귀 기울일 수 있는 곳입니다. 예수님은 기도하시러 자주 한적한 곳에 머무셨고 제자들에게도 그렇게 쉬도록 하셨습니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로 한적한 곳에서 기도 시간을 갖지 못한다면 우리의 영적 성장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2).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습니다. 손가락은 창조하는 도구입니다. 내가 너를 치료해 주겠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표현입니다. 말을 못 하는 이들은 자기의 의사 표현을 손으로 합니다.

 

3). 침을 발라 그의 혀에 대셨는데 유다교에 있어서 침은 안질에 특효가 있는 치유로 여겼습니다. 당시 관습적인 치유행위 입니다. 우리도 벌레에 물렸을 때 침을 바릅니다. 엄마가 자식에게 먹을 것을 꼭꼭 씹어서 주는 것과 같은 사랑의 표현입니다.

 

4). 하늘을 우러러 보셨습니다. 5천 명을 먹인 빵의 기적을 행하실 때도 하늘을 우러러보셨습니다. 아버지께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빵을 보고 기도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 하느님의 도움을 청하셨습니다. 오늘도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바라본 것이, 아니라 하늘을 우러러보았습니다. 불쌍한 사람을 보고 기도하면 연민의 정과 측은한 생각으로 기도하겠지만, 하늘을 우러러보며 기도하면 전능하신 아버지의 능력을 바라보면서 희망과 신뢰를 갖고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이더라도 상황만을 바라보지 말고 반드시 하늘을 우러러보며 기도해야 합니다. 베드로가 물위를 걸었는데 거센 파도를 보자 물에 빠졌습니다. 주님을 바라볼 때는 걸었지만, 파도를 볼 때는 걸을 수 없었습니다.

 

5). 한숨을 내쉬셨습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영, 숨을 얘기합니다. 영으로 가득 차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상대의 아픔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마르15,34), 절규하며 기도하는 그 아픔으로 함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한숨은 절망이 아니라 생명을 주는 희망입니다.

 

6). 열려라! 에페타! 이 말은 부활입니다.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열려라’는 말씀은 기쁜 소식, 복음입니다. 귀먹은 반벙어리에게 이보다 더 기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런 치유를 받기 위해서는 말씀에 대해 열려있어야 합니다. 능력의 말씀은 믿는 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내가 열려있는 만큼 빛이 들어오고 은총이 열매 맺게 됩니다. 시편에서는 “ 너 한껏 입을 벌려보라, 나는 곧 그 입을 채워주리라”(시편80,11)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바로 우리 귀를 열어주시고 입을 열어주시려‘열려라’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문을 열기 바랍니다. 주님의 은총이 아무리 크다 하여도 인간이 협력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힘입어 나의 영적 감각이 열리고 건강한 영혼을 지켜나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이제는 예수님의 치유 결과를 봅니다. 귀먹고 말 더듬는 이의 귀가 열리고 묶인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되었습니다. 말을 제대로 한다는 것은 단순히 발음을 똑똑히 한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찬미하고 감사드리는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

 

우리는 우리가 지닌 귀와 입을 제대로 사용해야 합니다.‘제대로’라는 말은 ‘올바르게’, ‘정확하게’라는 뜻입니다. 하느님을 찬미해야 하는 입이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불평하고 원망하는 데 사용한다면 그것은 제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모든 것은 하느님 마음에 들게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때때로 조용한 곳을 찾아 침묵 속에 하느님의 소리를 들어야 하고 하느님의 말씀에 항상 열려있어야 합니다. 에파타! 열린 사람은 감사와 찬미로 제대로 말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치유해 주신 다음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 사람들이 제대로 전하지 않고 반벙어리 고쳐주셨다는 얘기만 할 것이 자명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엉뚱한 소리만 퍼질 것을 경계하셨습니다.‘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는 것은 ‘보시니 참 좋더라’는 창세기의 말씀과 함께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혹시라도 보기에 좋지 않은 것이 있다면 다시 회복시키는 오늘이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듣고 그 말씀 안에서 새로워지기를 기도합니다. 이기적인 마음을 주님의 말씀으로 정화하여 들어야 할 것을 제대로 듣고 말해야 할 것을 확실히 말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더 큰 사랑을 담아 사랑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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