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23주간 금요일,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학자 기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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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4-09-13 | 조회수63 | 추천수6 | 반대(0) 신고 |
[연중 제23주간 금요일,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학자 기념] 루카 6,39-42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을 것이다.”
침묵을 강조하는 수도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수도원에 들어온 수도자들은 평상시에는 말 한 마디 할 수 없고, 1년에 한 번 수도원장과의 면담 때만 말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한 형제님께서 그 수도원에 입회하게 되었습니다. 침묵을 잘 지키면서 열심히 생활 했지요. 그렇게 일 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수도원장과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침대가 너무 딱딱해서 그동안 큰 고생을 했습니다. 침대를 바꿔주세요.”
수도원장은 그가 원하는대로 침대를 바꿔주었습니다. 이후 다시 1년이 지나 수도원장과 면담하던 날 그 형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음식이 부실해서 식사 때마다 고역입니다. 메뉴에 신경을 써주세요.”
수도원장은 최대한 그가 원하는 음식을 제공하고자 했습니다. 또 다시 1년이 지난 후 면담에서는 “제가 지내는 방 환경이 열악합니다. 햇빛이 잘 들어오는 방으로 바꿔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수도원장은 그가 원하는 방으로 바꿔주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네 번째 면담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 형제는 “말 한마디 못 하니 너무 답답하고 바보가 된 느낌입니다.”라고 투덜거렸습니다. 그러자 수도원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까지 당신이 바꿔 달라는 대로 다 바꿔주었습니다. 이제는 당신이 바뀌어 보세요.”
우리는 늘 상대방이 자기가 원하는대로 바뀌기를 원합니다. 내가 싫어하는 단점들은 고치고, 내가 바라는 좋은 점들을 갖추기를 바라지요. 그런데 그런 요구사항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정작 자기 자신을 변화시킬 생각은 안한다는 겁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제대로 보고 빼내 주려면 먼저 내 눈에 박힌 들보를 빼내라고 말이지요. 이 말씀은 단순히 ‘너나 잘하세요’라는 뜻이 아닙니다. 형제에게서 보이는 티끌만큼 작은 잘못과 부족함보다 훨씬 더 큰, 들보만한 부족함과 잘못이 나에게 있으니 남을 지적하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을 성찰하라는 의미만 있는게 아닌 겁니다. 성찰을 했으면 거기에 당연히 ‘변화’를 위한 노력이 뒤따라야지요. 그러니 예수님의 말씀에는 남이 긍정적이고 올바른 방향으로 변화되기를 바란다면, 먼저 내가 그렇게 변화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뜻도 있는 것입니다. 형제의 눈 속에 들어있는 ‘티끌’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그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티끌을 그에게서 빼내주기 위해서는 그가 잘되기를,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모습으로 변화되어 구원받기를 바라는 호의와 자비가 필요합니다. 그런 마음과 노력들이 하나로 합쳐질 때, 그와 나는 서로가 하느님 자녀다운 모습으로 변화되도록 도와주는 영적 동반자가 될 수 있을 겁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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