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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4.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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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4-09-14 조회수119 추천수4 반대(0) 신고

 

2024년 9월 14일

성 십자가 현양 축일

아는 지인들과 함께

어느 카페에서 차를 마시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낯선 자매님 한 분이

지인 중의 한 분을 보고는 반갑게

인사를 하십니다. 지인은 갑작스러운

인사에 깜짝 놀란 뒤에, 잠시 밖으로

나가서 대화를 나누시더군요.

약간의 시간이 지난 뒤에 돌아오셨는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저희 본당 신자인데요.

되게 잘 살아요.

그런데 요즘 냉담 중이세요.”

혼란이 왔습니다.

‘냉담 중인데 왜 잘 산다고 말할 수 있지?’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잘 산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제 지인의 기준은 부자인 것 같습니다.

실제로 그 자매님은 큰 부자인가 봅니다.

건물도 몇 채 가지고 있고,

지금 하는 사업도 잘 되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부자면 잘 사는 것일까요?

현재 냉담 중이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을 적극적으로 실천할 수 없는

형편도 아닌 것 같습니다.

남편과의 관계가 아주 안 좋아서

이혼을 이야기하고 있고, 자녀들도

각종 문제를 일으켜서 복잡한

상황이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세상 안에서 부자라면서

이렇게 말하지요.

“되게 잘 살아요.”

돈, 명예, 권력이 잘 사는 기준이

되는 세상입니다. 돈, 명예, 권력이

세상의 꼭대기에 높이

세워져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런 것들로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기준들을

아무리 높여도 주님의 뜻에 맞게

사랑의 삶을 사는 사람만이 들어 올려져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먼저 십자가에

못 박혀 들어 올려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들어 올려지신 것은

우리처럼 자기를 드러내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보다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맞춰서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받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16)

잘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의 기준을

가지고 들어 올리려는 삶만 산다면

결코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주님의 기준, 즉 사랑의

기준으로 들어 올리려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랑, 희생, 봉사, 나눔 등으로만 진정으로

주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모습을 가지고서

잘 산다고 말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에 있는 모든 이가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요?

“저 사람, 되게 잘 살아요.”

오늘의 명언

우리는 이 땅에서

위대한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오직 큰 사랑으로 작은 일을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성녀 데레사)

사진설명: 성 십자가 현양.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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