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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24주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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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4-09-18 조회수58 추천수6 반대(0) 신고

[연중 제24주간 수요일] 루카 7,31-35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

 

 

 

 

“메시지를 반박할 수 없을 때에는 메신저를 공격하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이는 유명한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논쟁에서 이기기 위한 38가지 기술을 정리하면서 마지막으로 제시한 방법에서 유래된 것인데, 논쟁하는 상대방이 탁월한 언변과 논리정연함을 지닌 사람이라 도저히 이길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면, 인신공격이나 모욕 그리고 무례한 행동으로 공격하라고 한 겁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단순해서 논쟁에서 ‘진실’을 밝히는데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논쟁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누가 옳은가’가 아니라, ‘누가 이겼는가’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세례자 요한을, 그리고 예수님을 그런 식으로 공격하는 유다인 종교 지도자들의 모습이 드러나지요.

 

먼저 세례자 요한은 이렇게 공격합니다.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광야라는 척박한 땅에서 철저한 극기와 고행으로 하느님을 섬기며 사람들에게 주님께서 오실 길을 준비하도록 가르친 요한을, 종교 지도자들은 마귀들린 사람, 즉 ‘미친 놈’ 취급한 겁니다. 욕구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 안위를 생각하지 않는 그의 담대하고 정의로운 모습이 소박한 백성들에게는 따르고 싶은 ‘귀감’이 되었지만, 하느님의 뜻과 계명을 지켜야 한다고 부르짖으면서도 정작 자기 자신은 스스로가 요구하는 수준에 한참 못미쳤던 기득권자들에게는 눈꼴시고 거북하며 자기들 이익에 방해가 되는 ‘눈엣가시’로 여겨졌던 겁니다. 그래서 ‘미친놈’이라는 부정적 프레임을 씌운 것이지요.

 

한편 예수님은 이렇게 공격합니다.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엄격함을 요구하는 세례자 요한과 달리 예수님은 보다 편안하고 자유로운 모습으로 백성들의 삶 한가운데로 들어가십니다. ‘먹고 마시는’ 인간 본연의 활동에 함께 하시면서 경쟁에서 도태되어 사회 변두리로 밀려난 작고 약한 이들을 사랑으로 당신 가슴에 품으시지요. 종교 지도자들로부터 ‘죄인’이라 손가락질 받으며 무시당한 이들에 대한 존중과 사랑이 함께 밥을 먹고 서로 어울리는 모습 안에서 드러나는 겁니다. 그렇게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지내는 이들을 우리가 ‘식구’라고 부르는 것처럼 예수님도 그들을 당신 ‘가족’으로 여기시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런 그분의 소탈하고 자비로운 모습이 기득권자들에게는 율법에 대한 도전이자 무절제로 여겨집니다. 그들이 율법과 계명의 핵심내용인 ‘사랑’보다 겉으로 드러나는 문자 그 자체에만 천착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그들의 모습을 장터에서 노는 아이들의 모습에 빗대어 비판하십니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 자신은 상대방이 하는 말을 귀기울여 듣고 따라주려고 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에게는 자기 말을 따라줄 것을 요구하고, 그러지 않으면 그를 비난하고 원망하며 자기가 잘못된 탓을 모두 그에게 돌리는 미성숙한 모습을 지적하시는 겁니다. 우리가 누군가와 맺는 모든 관계에서는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서로에게 유익한 방향으로 변화되려는 의지와 노력이 있어야만 그 관계 안에서 함께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해 갈 수 있지요. 그건 주님과의 관계, 교회 공동체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 교회에서는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자기 마음에 거슬리는 부분이 생기면, ‘저 신부는 너무 권위적이다’, ‘저 수도자가 하는 말은 너무 어려워서 무슨 뜻인지 못알아듣겠다’, ’저 신자는 고집이 너무 세고 사고방식이 구식이다’… 그런 식으로 ‘메신저’에게서 온갖 트집을 잡고 헐뜯으며 그의 말을 따르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만들려고 들지요.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를 ‘메신저’로 선택하셔서 나를 향한 당신 ‘메시지’를 전하시는거라면 그런 식으로 ‘물타기’해서는 안됩니다. 그 메시지를 제대로 듣지 않고 따르지 않은 무거운 책임은 나 자신이 온전히 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 말씀을 항상 마음에 새기고 깨어 있어야겠습니다.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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