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수철 신부님_“누가 예수님의 참가족인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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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4-09-24 | 조회수231 | 추천수10 | 반대(0) 신고 |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사람들>
오늘 옛 현자의 말씀도 새롭습니다. “길을 잘못 들었다면 걸었던 길을 아까워하지 말고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다산> 회개에 신속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멀리 가지 않고 돌아오므로 뉘우침에 이르지 않으니 길하다.”<주역> 늘 깨어 살 때 큰 실수가 없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소제목 “예수님의 참가족”이 맘에 들어 강론 제목으로 택했습니다. 혈연 가족을 뛰어넘는 예수님의 참가족의 이상이 참 원대합니다. 예수님의 품은 그대로 온 인류를 품에 안는 하느님의 품임을 봅니다. 인류의 미래를 보여줍니다. 참으로 마음을 넓고 깊게 멀리 개방해야 함을 봅니다. 교회가 날로 예수님의 큰 품을 닮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지만 군중 때문에 가까이 갈 수 없자 누군가 예수님께 전달합니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을 뵈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 예수님의 다음 즉각적인 답변이 오늘 복음의 절정이자 우리 믿는 이들에게는 만고불변의 진리이자 화두입니다. “내 어머니와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 얼마나 멋지고 통쾌한 말씀인지요!
그가 누구든, 어디에 살든 시공간에 관계없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참가족이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종파를 초월하여 진리를 실천하며 참으로 반듯하고 의롭게 사는 이들도 넓은 의미로 예수님의 참가족이 될 수 있겠습니다. 이처럼 혈연을 뛰어넘어 예수님의 품, 하느님의 품에 이르기 까지 끊임없이 넓어지고 깊어지는 교회요 우리 마음이면 참 좋겠습니다.
바로 이런 예수님의 참가족의 생생한 증거가 교회공동체요 이 미사를 통해 그대로 실감하는 사실입니다. 미사한번만 함께 하면 국적, 인종과 상관없이 한가족처럼 느껴지지 않습니까? 어디에서나 미사에 참여함으로 예수님의 참가족, 한가족임을 체험하지 않는지요! 도대체 미사전례가 아닌 그 무엇이 예수님의 참가족, 하느님의 한가족을 실감나게 보여줄 수 있을런지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미사가 아니더라도 참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진리를 듣고 실행하여 사는 이들은 그가 어디에 있던 예수님의 참가족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참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진리를 사랑하여 듣고 공부하며 실행에 옮기는 삶은 얼마나 고귀하고 아름다운지요! 참 사람이 되는 구원의 길, 생명의 길은 단 하나 예수님의 참가족, 하느님의 한가족에 속하는 것뿐이요, 부단히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길뿐임을 깨닫습니다.
바로 이의 전형적 모범이 마리아 성모님입니다. 평생 예수님 곁에 머물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한 성모님의 삶이었습니다. 성모님의 전 삶을 요약하는 다음 말씀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빕니다.”
시종여일(始終如一), 한결같이 평생 하느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실행한 “예스맨(yes-man)”이 바로 마리아 성모님이셨습니다. 오늘 잠언의 현자가 말하는바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하느님의 손(in God’s hands)’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잠언의 지혜도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려는 자들에게 용기와 힘을, 좋은 깨우침을 줍니다.
“임금의 마음은 주님의 손안에 있는 물줄기, 주님께서 원하시는대로 이끄신다. 사람의 길이 제 눈에는 모두 바르게 보여도, 마음을 살피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정의와 공정을 실천함이, 주님께는 제물보다 낫다. 부지런한 이의 계획은 반드시 이익을 남기지만, 조급한 자는 모두 궁핍만 겪게 된다. 속임수 혀로 보화를 장만함은, 죽음을 찾는 자들의 덧없는 환상일 뿐이다.”
그러니 말씀에 맛들여 잘 듣고 실행하는 일이 얼마나 결정적으로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세상맛이, 돈맛이 아닌 하느님맛에 살게 하는 말씀맛입니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맛보고 깨달으란, 하느님 말씀에 맛들이라는 시편 말씀이 얼마나 고마운지요. 제가 피정지도시 자주 드는 예에 웃습니다만 대부분 공감합니다.
“물보다 진한게 피이고 피보다 진한게 돈이고 돈보다 진한게 하느님 믿음이다.”
하느님 믿음을 북돋우는 ‘말씀맛’만이 ‘돈맛’을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화답송 시편 119장은 “주님의 법”이라는 제하에 무려 176절에 이르는 제일 방대한 시편입니다. 흡사 ‘말씀 찬가’같은 시편입니다. 다음 화답송 시편이 더욱 말씀 사랑과 실행을 고무합니다.
“행복하여라, 온전한 길을 걷는 이들,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이들!” “저를 깨우치소서. 당신 가르침을 따르고, 마음을 다하여 지키오리다.” “당신 계명의 길을 걷게 하소서. 저는 이 길을 좋아하나이다.” “저는 언제나 당신의 가르침을, 길이길이 지키오리다.”
말씀이 사람이 된 분이 예수님입니다. 새삼 인간의 본질은 말씀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할 때 예수님의 참가족이 되고 온전하고 충만한 참나의 실현입니다. 말씀은 생명이요 빛이자 영이요 주님의 현존입니다. 다음 히브리서 말씀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사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히브4,12)
우리의 주님 향한 갈망은 시종일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함으로 예수님의 참가족이 되고 주님을 닮아 참내가 될 때 저절로 해결될 것입니다. 날마다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삶에 항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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