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누구나 떠날 때는 예수님처럼 / 연중 제25주간 수요일(루카 9,1-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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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24-09-24 | 조회수63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누구나 떠날 때는 예수님처럼 / 연중 제25주간 수요일(루카 9,1-6)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시어, 모든 마귀를 쫓고 질병을 고치는 힘과 권한을 주셨다. 그리고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들을 돌보라고 보내시며, 그들에게 이르셨다. “길 떠날 때에 아무것도 가져가지 마라. 지팡이도 여행 보따리도 빵도 돈도 여벌옷도 지니지 마라.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곳을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사람들이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고을을 뜰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에 묻어있는 먼지를 털어버려라.”’ 이렇게 제자들을 파견하시는 예수님께서는 복음 선포의 여정에 필요한 떠남의 영성을 가르치신다. 그리고 굳이 “길을 떠날 때에 아무것도 가져가지 마라.” 라는 말씀은, 마귀를 쫓고 질병을 고치는 힘과 권한이 자신들에게 나온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하시려는 것이리라. 아마도 그런 기적들을 행할 때 사람들은, 제자들을 떠받들고 대우했을 게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여러 곳을 찾아다니며 대접받으려 하지 말고, 한 집에서만 떠날 때까지 머물라셨다. 그리고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앙심이나 애착 따위는 품지 말고, 그저 뒷일은 하느님께만 맡기고 훌훌 떠나라나. 사실 예수님께서는 제자를 내 보낼 때에 ‘떠날 때’라는 말이 세 번이나 하셨다. 지팡이, 식량 자루, 빵, 돈, 여벌 옷 등 이 모두가 필요한 물건들인데, 그 하나라도 지니지 말라신다. 곧 주님께 의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뜻일 게다. 길 떠나서 세상 것에 지배받으면 하늘의 법칙을 선포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것으로 떠남의 첫 번째 의미를 생각해 볼 수가 있으리라. 그리고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곳을 떠날 때까지 거기에만 머물러라.’라고도 하신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너희를 그저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고을을 떠날 때에는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에서 먼지를 훌훌 털어버려라.”라고 하신다. 어쩌면 한 집만이 아닌 여러 집을 돌아다니면 그만큼 더 많은 대접을 받을 수도 있을게다. 그러나 예수님은 떠날 때까지 꼭 한 집에만 머물며 이웃에게 민폐를 절대 끼치지 않기를 원하신다. 이것이 두 번째 뜻이다. 또 ‘사람들이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고을을 떠날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분명한 증거로 너희 발에서 먼지를 털어 버려라.’라고 세 번째로 말씀하신다. 이는 최선을 다해도 분명 되지 않는 게 있다는 뜻이리라. 세상사 다 그러려니 여겨 그 아쉬움은 버리고 오로지 하느님께만 집착하란다. 이렇게 떠남의 자세는 하느님 앞에서 자신이 무능한 존재인지를 고백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의 예수님의 당부는 그분 앞에 선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종’으로서 자신을 낮추는 것일 게다. 구약의 예언자들이 그랬고, 세례자 요한뿐 아니라 성모님께서도 당신을 종으로 낮추셨다. 빈첸시오 성인은 가난한 이들만큼이나 낮추었기에 빈자의 아버지가 될 수 있었다. 높이 올라가기에 바쁜 세상이지만, 가끔 낮은 곳으로 향하는 ‘종’의 마음이 필요한 때다.
철칙중의 철칙이요 당연지사인 사실인, 누구나 죽을 때는 아무것도 지니지 않는다. 이렇듯 삶의 끝자락은 비우면서 홀가분하게 떠나는 주님 뜻을 따르는 것이리라. 사실 우리는 날마다 떠난다. 과거와 떠나고 자신의 현재와도 떠난다. 떠나는 것만 잘만 해되어도 늘 기쁨이 함께 한다. 우리는 그분이 주신 떠남의 세 가지를 헤아려보자. 삶은 어쩜 떠남의 연속이니까. 늘 자신에게서 떠나는 삶을 살자. 우리를 구원코자 오신 예수님께서도 그렇게 사시고, 훌훌 떠나셨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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