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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25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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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4-09-26 조회수85 추천수3 반대(0) 신고

[연중 제25주간 목요일] 루카 9,7-9 “그는 예수님을 만나 보려고 하였다.“

 

 

 

 

“도둑이 제 발 저리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그에 대해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아도 마음이 조마조마해진다는 뜻입니다. ‘양심의 가책’ 때문입니다. 죄책감이 자신을 무겁게 짓누르기에 늘 마음이 불편합니다. 자리에 누워도 잠이 잘 안오고 힘들게 잠이 들어도 악몽에 시달립니다. 그러다 꿈이 아닌 현실에서까지 안좋은 일이 생기면 하느님께서 자기에게 벌을 주셔서 그런거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우리의 잘못 하나 하나에 벌을 주시고 괴롭히시는 쪼잔한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괴로워지는 건 스스로 저지른 잘못이나 과오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 적당히 뭉개려고 들기 때문입니다. 자기 체면과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자기 합리화를 해보지만, 그럴수록 내 양심을 때리는 채찍질이 더 거세지고 아파지지요.

 

오늘 복음에 나오는 헤로데 영주가 그런 모습입니다. 그는 군중들 사이에서 들리는 예수님의 여러 소문을 듣고 몹시 당황합니다. 사람들 앞에서 자기 체면을 지키기 위해 무죄한 의인인 요한을 살해했던 자기 잘못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안그래도 그 잘못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괴로워하던 와중에, ‘요한이 살아났다’는 소문이 들리니 혹여 되살아난 요한이 자신에게 복수를 하러 오진 않을까 걱정되었을 겁니다. 그가 요한이 아니라고 해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대하는 ‘엘리야’나 위대한 예언자라면 잘못을 저지른 자신에게 벌을 내릴지도 모르니 두려웠겠지요. 헤로데가 그런 모습을 보이는 건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가 사람을 죽였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다 소유한 권력자라고 해도 자기 잘못으로부터, 그런 잘못을 저지른 자신을 책망하는 마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또한 죄를 저질렀으면 죗값을 치러야하는데 그러질 않았으니, 예수님이라는 존재가 무섭고 두려워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분이 나를 심판하고 벌주는 무서운 분이라서가 아니라, 내가 벌 받을 짓을 하고도 회개를 하지 않았기에 그렇습니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헤로데가 예수님을 만나보려는 마음을 품었다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황이 낙관적인 건 아닙니다. 헤로데가 예수님을 만나보려고 한 것은 예수라는 이가 대체 누구인지, 그가 사람들이 말하는대로 되살아난 요한이거나 위대한 예언자의 현현이 맞는지를 제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되려면 그분 말씀을 귀기울여 듣고 마음에 간직한 채 그분 뜻을 따르는 노력이 뒤따라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수반되는 시련과 고통을 기꺼이 감수하려는 용기와 의지가 있어야 하는데 헤로데에게서는 그런 부분이 보이지 않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런 점은 우리에게도 있을 겁니다. 신앙생활에 임하는 우리 마음가짐에 주님을 닮아가려는 ‘지향’이, 그분 뜻을 따라가려는 ‘의지’가 없을 때, 그러면서 ‘어떻게 해야 세상에서 더 성공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힘들고 괴로운 상황을 잘 피해갈 수 있을까?’하는 ‘물음’만 던질 때 그렇게 되지요. 그러니 예수님을 만나고 싶다는 열망을 마음에 품어야겠습니다. 그분을 만나되 호기심으로 말고 그분을 닮고 싶다는 간절함으로 만나야겠습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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