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반영억 신부님_나에게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 |||
---|---|---|---|---|
이전글 | 이전 글이 없습니다. | |||
다음글 | † 나는 하느님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파우스티나 성녀의 하느님 자비심]. |1| | |||
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4-09-27 | 조회수115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예수님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양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세례자 요한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엘리야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옛 예언자 중의 한 사람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다른 사람의 생각이 아니라 내 생각이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래아에서 여러 활동을 통해 하느님 나라에 관해 가르치셨는데 그 가르침을 받은 것에 상응하는 답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도 “너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하고 물으십니다.
베드로는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루카9,20). 하고 고백했습니다. ‘하느님의 기름 부음 받으신 이’라는 이 말은 이사야의 예언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주시니 주 하느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이사야61,1). 베드로의 고백은 완벽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지 않는다면 그 고백은 힘을 잃고 말 것입니다. 하느님의 그리스도는 "하느님께서 임금으로 정하신 분"입니다.
낚싯바늘만 있고 미끼가 없는 낚싯대, 아무리 낚싯바늘이 좋아도 고기가 물지 않습니다. 말만 있고 행동이 없으면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한다면 그에 걸맞은 삶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기름 부음 받은 이’ 앞에서 떳떳하고 당당한 모습으로 서 있어야 합니다. 내 행동 하나하나가 예수님에 대한 내 생각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녀 마더 데레사 수녀님은 “나는 주님의 손에 들린 몽당연필입니다.”하고 고백했습니다. 수녀님은 연필을 잡은 주님 안에서 기뻐했습니다. 과연 우리는 주님의 무엇입니까? 나에게 있어서 주님은 도대체 어떤 존재입니까?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는 자신을 ‘예수님의 데레사’라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신앙을 고백하지 말고 내 신앙을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주님은 누구이십니까? “그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이사야53,4). “사람들에게 멸시받고 배척받은 그는 고통의 사람, 병고에 익숙한 이였다. 남들이 그를 보고 얼굴을 가릴 만큼 그는 멸시만 받았으며 우리도 그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이사야 53,3). ‘그는 우리의 반역죄를 쓰고 사형을 당하였다’(이사 53,8). 그러나 “그는 제 고난의 끝에 빛을 보고 자기의 예지로 흡족해하리라. 의로운 나의 종은 많은 이들을 의롭게 하고 그들의 죄악을 짊어지리라. 그러므로 나는 그가 귀인들과 함께 제 몫을 차지하고 강자들과 함께 전리품을 나누게 하리라”(이사53,11-12). 라고 선언한 이사야 예언의 말씀이 예수님에게서 이루어졌습니다.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님, 속죄의 제물이 되시고 부활의 기쁨으로 다시 오신 주님, 그분을 우리의 주님으로, 저의 주님으로 고백하는 기쁨이 더욱 커지시길 기도합니다.
일상 안에서 주님을 첫 자리에 모실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내 할 일 다 하고 짬이 나서야 그분을 생각하는 처지가 아니라, 그분께서 나를 도구로 삼아 일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먼저 감사하고, 다른 무엇에 앞서 주님의 거처를 마련했으면 좋겠습니다. “보라, 이제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에 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거처하시고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묵시21,3). 주님께서는 나의 삶의 자리에서 나를 찾고 계십니다. 내가 그분을 찾기 훨씬 전부터! 더 큰 사랑을 담아 사랑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