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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25주간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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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4-09-28 조회수92 추천수4 반대(0) 신고

[연중 제25주간 토요일] 루카 9,43ㄴ-45 “그들은 그 말씀에 관하여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우리는 스스로가 객관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사람은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자기가 듣고 싶은 대로 듣는 경향이 있습니다. 상대방에 대해 내가 이미 갖고 있는 이미지에 따라 ‘편견’이라는 헤드폰을 쓰고 그가 하는 말을 듣습니다. 내 주관과 가치관에 따라 ‘고정관념’이라는 안테나를 세우고는 엉뚱한 방향으로 귀를 기울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복잡미묘한 자기 감정에 사로잡혀서 혼자만의 방음실 안에 갇혀있기도 하지요. 그래서 다른 사람이 나에게 하는 이야기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합니다. 나와는 다른 생각, 다른 마음, 다른 지향을 가진 이들이 하는 다양한 표현을 자기 방식대로 이해하고 판단하려 들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머리로는 그가 하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했으면서도,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그가 하는 말을 따르고 싶지 않아서 이해 못한 척, 못들은 척 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그런 식으로 다른 사람과 제대로 소통하지 않으면 고립되고 외로워지는 건 결국 자기 자신입니다. 그러니 제대로 들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당신이 겪으셔야 할 수난과 죽음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도 자연스레 함께 겪게 될 고통과 시련입니다. 그것을 미리 알려주시는 건 걱정과 두려움 속에서 주눅들어 살라는 뜻이 아닙니다. 앞으로 닥쳐올 십자가의 길을 제대로 걸으려면 굳은 각오와 큰 용기, 단호한 의지가 필요하기에 그런 것들을 제자들 마음에 심어주시기 위해 미리 알려주시고 준비할 기회를 주시려는 겁니다. 어렵고 힘들겠지만 미리 알고 대비한다면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주님과 함께 한다면 제자들에게 닥쳐올 일들은 그저 고통으로, 그저 죽음과 멸망으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의 의미를 하나라도 더 깨닫고 받아들이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잘 모르겠는게 있으면 치열하게 물어야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의 수난예고에 담긴 의미를, 그분이 자기들에게 그런 말씀을 하시는 목적을 온전히 알아듣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해 제대로 물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자기들에게 닥쳐올 슬프고 괴로운 상황을 직감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황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는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못들은 척 뭉개면 그 상황을 모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겁니다. 하지만 그건 너무나 어리석은 대처방법입니다. 자기가 두려움을 느끼는 대상은 그저 눈을 감는다고 해서 사라지는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두 눈을 부릅뜨고 제대로 노려보아야 그 대상이 지닌 빈틈이 보이고, 내가 살아날 길도 보이는 법이지요. 하지만 제자들은 두려움 때문에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습니다. 그로 인해 자신들에게 닥쳐올 고통과 시련을 제대로 마주하고 대비할 기회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성전 경비병들에게 붙잡히시던 날, ‘걸음아 날 살려라’하고 도망치는 것 밖엔 할 수 있는게 없었던 겁니다.

 

우리 삶은 반전의 연속입니다. 기쁨과 슬픔, 행운과 사고, 만남과 이별, 희망과 좌절 등이 쉴 새 없이 이어지지요. 늘 좋기만 하진 않기에 기운이 빠지고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늘 힘들고 괴롭기만 한 게 아니기에 숨 돌릴 기회가 있고 희망도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당신을 믿고 따르는 우리가 쉽게 무너지고 멸망하도록 절대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그분께서 나와 함께 하심을 믿으며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다보면 우리의 영적 근육들이 조금씩 강해지고 단단해져, 세상의 거센 풍랑에도 넘어지지 않고 꿋꿋하게 버틸 힘이 생길 겁니다. 그러니 나를 좋은 길로 이끄시는 주님을 굳게 믿고 그 힘으로 두 눈을 부릅떠야겠습니다.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하지요. 고통과 시련이 닥쳐와도 정신 단단히 차리고 주님 손만 꼭 붙들고 있으면 내가 나아갈 길이 보일 겁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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