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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4.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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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4-09-30 조회수217 추천수3 반대(0) 신고

 

2024년 9월 30일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

예전에는 여행을 참 많이 했습니다.

여행을 통해 큰 힘을 얻을 수 있었고,

나의 세상을 확장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여행하며 느끼는 것은

삶의 확장이 아닌 삶의

축소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여행하면서 많은 것을 경험한다고 하지만,

사실 집에서도 전부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행 중의 경험은 힘들고 불편할 뿐입니다.

힘듦과 불편함 속에서 나의 모습은 작아집니다.

겸손해진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나의 삶이 축소되었을 때,

더 넓은 세상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만약 단순히 낭만, 예술, 아름다움 등을

찾고자 한다면 집에서도

충분히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집에서는 자기가 주체이니 원의만 있다면

스로 충분히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행자는 그냥 받아들여야 합니다.

집처럼 하겠다고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 어떨까요?

나의 힘듦과 불편함을 없게

하겠다고 옷만 가방 25kg을

가득 채우면 어떻게 될까요?

비행기도 탈 수 없습니다.

(비행기 수화물 25kg 이하).

우리는 모두 이 세상의 여행자입니다.

언젠가는 여행을 마치고 본고향인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야 할까요?

많은 것을 가질수록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오히려 내려놓고 내려놓아야
작은 내가 되어 훌쩍 떠날 수 있게 됩니다.

겸손의 삶으로 주님의 뜻을 실천하면서

살아갈 때 진정한 여행자의 모습이 됩니다.

불편함과 힘듦도 여행자라면 당연히

감수해야 할 부분을 기억하면서

작은 존재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제자들은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논쟁하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베드로를 대표로 세운 일,

타볼산에 올라갈 때 베드로, 야고보, 요한,

세 사람만 데리고 가신 일들이 서열 문제를

일으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유다인들의 랍비신학에서는

천상에 있는 낙원의 주민들을

일곱 등급으로 나눈 것,

꿈란 공동체에서도 확고한 서열이

정해져 있다는 것을 볼 때,

모든 유다인의 주 관심사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이 역시 세상일에 골몰하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즉, 세상의 서열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어린이 하나를

세우신 다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이 어린이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 성인께서는

어린이를 순진, 소박, 겸손의

모형이라고 했습니다. 어린이처럼

순진하고 소박한 마음 또 겸손을

갖춘 사람만이 주님을 받아들일 수 있고,

하늘 나라에서 큰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본고향인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어떤 모습을 취해야 할까요?

우리는 이 세상의 여행자일 뿐입니다.

오늘의 명언

누구의 인생이든 절정기가 있게 마련이고,

그 절정기의 대부분은

누군가의 격려를 통해 찾아온다.

(조지 애덤스)

사진설명: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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