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26주간 월요일,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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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4-09-30 | 조회수110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연중 제26주간 월요일,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 루카 9,46-50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형편이 어려웠던 사람이 지위가 높아지면 어려울 때 일을 잊어버리고 처음부터 잘난 듯이 뽐낸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부모와 자식 관계에서는 그러지 않지요. 부모는 자녀가 실수나 잘못을 저질러도 ‘그러려니’하고 이해합니다. 자신도 어린 아이였던 시절 그와 비슷한 실수와 잘못을 저질렀었고, 자기 부모님이 그런 자신을 이해해 주셨었기 때문입니다. 자신도 모든 것이 부족하고 서툴렀던 ‘올챙이 시절’을 거쳐 어엿한 어른이 되었기에, 지금 그 올챙이 시절을 겪고 있는 자녀들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는 겁니다. 내가 지금 ‘개구리’가 되었다고 해서 자녀를 개구리의 기준으로 대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을 낮추고 작아짐으로써 자녀와 똑같은 올챙이의 눈높이로 그들을 바라보기에, 그들이 부족하고 약해서 저지르는 실수와 잘못을 너그럽게 대할 수 있는 것이지요.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하는 문제로 논쟁을 벌입니다. 예수님께 처음 부르심을 받을 때만해도 정말 보잘 것 없던 사람들이 그분과 함께 지내는 동안 조금 성장했다고 우쭐해져서는, 서로 ‘내가 더 잘났네’하며 되지도 않는 ‘도토리 키재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라는 새로운 세상이 곧 도래할 거 같으니, 거기서 자기가 조금이라도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누가 하느님 나라에 기여한 바가 더 큰지를 따져보려고 한 것이지요. 그런 모습을 보시고 예수님은 그들이 하느님 나라에서 더 큰 사람이 되기 위해 진짜 열을 올리며 집중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십니다.
그들이 해야 할 일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분의 뜻을 따르기 위해 ‘어린이’를 자기 마음 안에 받아들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스스로 자신을 낮추어 ‘가장 작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지요. 성경에서 어린이는 어른이 돌보아주지 않으면 살 수 없는 힘 없고 약한 이를 표상합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믿고 따르는 예수님도 그런 어린 아기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지요. 그러니 예수님의 이름으로 어린이를 받아들인다는 건 작고 약한 이, 세상에서 소외되고 차별받는 이의 모습으로 오시는 수많은 ‘아기 예수님’들을 사랑으로 끌어안는 것을 뜻합니다. 또한 나와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허물과 약함을 지닌 상태 그대로 포용하는 열린 마음을 지녀야 함을 가리키지요.
한편, ‘가장 작은 이’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어린이처럼 작고 약한 이들을 그저 내 안에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겸손과 사랑으로 자신을 낮추어 스스로가 어린이처럼 변화되는 것을 뜻합니다. 부모가 자신의 ‘올챙이 시절’을 생각하며 자녀들과 같은 눈높이로 그들을 바라보는 것처럼 말이지요. 그래야 어린이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는 입장과 상황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고 따르는 예수님도 그러셨습니다. 부족하고 약한 우리 인간을 더 폭넓게 이해하시고 깊이 공감하시며 제대로 사랑하시기 위해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부족하고 약한 인간이 되신 겁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런 당신 모습을 본받으라고 하십니다. 그래야 작고 약한 이의 모습으로 오시는 당신을 알아보고 사랑함으로써 하늘나라에서 큰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하십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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