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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수철 신부님_성화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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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4-10-01 조회수169 추천수8 반대(0) 신고

 

“시종여일(始終如一)한 삶”

 

가을의 절정이자 묵주기도 성월에 전교의 달 10월 첫날 오늘은 “아기 예수의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입니다. 어제는 성 예로니모 기념일이었고 글피인 10.4일은 성 프란치스코 기념일입니다. 참 아름다운 꽃같은 성인들입니다. 꽃의 색깔, 크기, 모양, 향기가 다 다르듯 성인도 다 고유의 아름다움을 지닌 꽃같은 분들입니다. 지금까지 여전히 저를 행복하게 하는 좌우명 같은 시(詩)입니다. 

 

“꽃같은

 하루

 꽃같이

 살자”

 

성인 축일은 기념하고 기억하라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 꽃같은 성인이 되라고 있습니다. 그러니 믿는 이들은 누구나 각자 고유의 성인이 되라 불림 받고 있는, 날로 주님을 닮아가고 있는 성화의 여정중에 있는 성소자들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기념하는 작은 길, 작은 꽃이라 불리는 성녀 소화데레사는 비록 꽃다운 나이 스물 넷에 선종했지만, 여전히 끊임없이 감동을 선사하는 참으로 아름답고 향기로운 성녀입니다. 

 

비오 10세 교황은 성녀를 현대의 가장 위대한 성인이라 불렀고, 비오 11세는 사후 2년만에 시성하였으며, 성녀를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와 함께 선교사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고, 비오 12세 교황은 성 조안 오브 아크와 함께 프랑스의 공동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성녀를 보편교회의 박사로 선언합니다. 시에나의 카타리나와 아빌라의 데레사에 이어 세 번째입니다.

 

성녀의 삶은 복음의 메시지에 매우 가까웠고, 고통중에도 용기, 힘, 자기희생의 위대한 정신을 보여주었으며, 성녀의 내적 금욕주의는 단순한 외적 행위보다는 사심없고 무조건적인 순종에 기초했습니다. 작은 길로 알려진 성녀는 거룩함을 얻기위해서는 영웅적인 행동이나 위대한 행위가 필요없다는 것을 깨닫고 다음처럼 고백합니다.

 

“사랑은 행위들로 입증된다. 나는 어떻게 나의 사랑을 보여줄까? 위대한 행위들은 나에게 금지되어 있다. 내가 내 사랑을 입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꽃을 뿌리는 것이고, 이 꽃들은 모든 작은 희생, 작은 시선과 말, 그리고 사랑을 위한 가장 작은 행동들이다.”

 

평범의 비범을 살았던 일상의 성녀, 소화데레사입니다. 임종 직전의 극심한 병고중에 감동적인 고백들을 소개합니다. 

 

“나는 더 이상 고통을 겪을 수 없는 지경이 이르렀다. 모든 고통이 나에게는 달콤하기(sweet) 때문이다.”

“나는 매우 작은 영혼이어서 주님께 작은 것만을 바칠 수 있다.”

“나는 천국에서 보낼 시간을 이땅에 좋은 일을 하는데 쓰겠다.”

“내가 죽은 뒤에는 장미꽃이 비처럼 쏟아질 것이다.”

 

사랑으로 ‘교회의 심장’이 된 소화데레사는 누구보다 예수님을, 예수님의 교회를 사랑했고 예수님의 사랑을 닮았습니다. 사랑하면 닮습니다. 어제 참 많이 나눴던 10월 한달 행복하게 할 선물처럼 찾아 온 다음 시에 감사합니다. 불암산을 바라볼 때 마다 떠오르는 고백입니다.

 

“산앞에

 서면

 당신앞에

 서듯

 행복하다”

 

언제 어디서든 주님 앞에서의 삶이라면 참 아름답고 행복한 삶일 것이며 바로 성녀 소화데레사는 물론 모든 성인들의 삶이 그러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예루살렘 도상의 십자가의 길이 참 감동적인 아름다움입니다. 우리 믿는 이들 모두가 걸어야 할 길입니다. 서두의 묘사가 단호한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하늘에 올라가실 때가 차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

 

성화의 여정은 십자가의 여정이자 하늘 향한 여정임을, 수난과 죽음, 부활과 승천의 여정임을, 궁극의 영적승리의 여정임을 깨닫습니다. 어디가나 반대자들은 있기 마련이요, 예수님은 사마리아인들의 마을을 통과하는 것이 거부되자 불같이 화내는 야고보와 요한 두 제자의 어리석음을 꾸짖고 불필요한 마찰을 피한후 지혜롭게 다른 마을을 통과해 예루살렘 여정에 오릅니다. 추호의 주저함이 없는 단호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처신입니다.

 

예수님도 아름답고 예수님을 지극히 사랑했던 소화데레사도 아름답습니다. 참으로 극도의 시련중에도 치열한 사랑으로 사명을 다했던 거룩한 분들입니다. 이 두분과 더불어 언급하고 싶은 인물이 제1독서의 욥입니다. 욥의 치열함이 참으로 감동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합니다. 욥은 입을 열어 제 생일을 저주하지만 결코 하느님을 저주하지는 않습니다. 

 

“어찌하여 내가 태중에서 죽지 않았던가? 어찌하여 내가 모태에서 나올 때 숨지지 않았던가?... 나 지금 누워 쉬고 있을 터인데. 잠들어 안식을 누리고 있을 터인데...어찌하여 그분께서는 고생하는 이에게 빛을 주시고, 영혼이 쓰라린 이에게 생명을 주시는가?...어찌하여 앞길이 보이지 않는 사내에게, 하느님께서는 사방을 에워싸 버리고는 생명을 주시는가?”

 

하느님께서 침묵하시고 사방이 막힌 절망적 암흑같은 극한 상황중에서 ‘어찌하여’로 계속되는 처절한 물음이 일종의 치열한 기도처럼 생각됩니다. 끝까지 하느님 끈을 놓지 않고 온갖 부정적 말마디로 기도하는 치열한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주는 참사람 욥입니다. 그동안 믿고 희망했고 사랑했던 하느님이 없었다면 아예 이런 넋두리 기도도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내 목숨처럼 사랑했던 독자(獨子)를 잃은 어머니가 원망할, 울부짖을 하느님이라도 계셨기에 죽음 같은 고통을 살아낼 수 있었다는 고백도 생각납니다. 욥의 수난과 시련의 삶에서 예수님을, 또 소화데레사의 고통으로 점철된 삶에서 예수님을 봅니다. 

 

참으로 ‘하느님의 전사’답게 결코 좌절하여 쓰러져 무너지지 않고, 끝까지 사명을 다하면서 치열한 아름다움을 살았던 세분들이요 우리 삶의 좌표가 됩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시종여일, 성화의 여정에 결정적 좋은 도움을 줍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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