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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26주간 화요일,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학자 기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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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4-10-01 조회수99 추천수3 반대(0) 신고

[연중 제26주간 화요일,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학자 기념] 루카 9,51-56 “하늘에 올라가실 때가 차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

 

 

 

 

오늘 복음은 이런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하늘에 올라가실 때가 차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 당신의 희생과 보속을 통해 하느님의 구원계획을 실행하셔야 할 그 때가 되자,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따르기 위해 당신 목숨을 바치시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제 발로 당신이 죽으실 장소로 가시는 겁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이라는 도시의 이름이 뜻하는 바가 예수님께서 이루시려는 소명을 보다 명확하게 드러내 주지요. 히브리어로 예루살렘은 ‘평화의 마을’이라는 뜻입니다. 즉 예수님은 이스라엘에, 더 나아가 온 세상에 참된 평화를 주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고, 그 소명을 완수하기 위해 당신 목숨을 희생하시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로마가 그랬듯 강력한 힘으로 평화를 이루고자 하시지 않았습니다.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이 그랬듯 계명과 율법으로 평화를 이루고자 하시지 않았습니다. 헤로데와 대사제가 그랬듯 세속적인 부와 명예로 평화를 이루고자 하시지 않았습니다. ‘집 짓는 이들이 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듯이’, 사람들이 힘들고 고통스럽다며 외면하는 십자가와 희생을 통해, 벗을 위해 목숨까지 내어주는 참된 사랑을 통해 평화를 이루고자 하셨습니다. 원수를 용서하고 당신을 박해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자비를 통해 평화를 이루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런 예수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님이 자기들과 함께 파스카 축제를 지내지 않고 자기들이 적대시하는 유다인들과 함께 하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신다는 사실에 배신감을 느끼고는, 힘든 길을 가시는 그분을 자기들 마을에 받아들이지 않고 배척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지요. 상대방이 내 기대와 바람대로 따라주지 않으면 금새 실망하고 원망하며 미워하기까지 하는, 나를 사랑하고 아껴준 소중한 은인을 철천지 원수처럼 대하는 미성숙하고 자기 중심적인 모습입니다. 그런 모습은 예수님의 제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스승인 예수님을, 그리고 자기들을 냉대하는 사마리아인들의 모습에 울컥해서는, 감히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저 못된 놈들에게 ‘불의 심판’을 내려야 한다고 핏대를 세우는 겁니다. 그들이 왜 화가 났는지 그 마음을 헤아리려고 하지 않고, 자기들이 실수와 잘못, 부주의로 인해 그들의 마음에 상처를 남기지는 않았는지 스스로를 돌아볼 생각은 하지 않고, 제 마음을 상하게 한 그들에게 복수할 생각만 하는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모습입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은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기대하셨던 게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엄하게 꾸짖으십니다. 아마 그들에게 이 말씀을 상기시키셨겠지요.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은 사랑한다. 너희가 자기에게 잘해 주는 이들에게만 잘해 준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그것은 한다.”(루가6,32-33). 예수님은 세상을 심판하러 오신게 아니라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유혹에 넘어가 길 잃은 양을 벌주러 오신게 아니라 끝까지 찾아내어 구원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리고 사도들에게, 그리고 우리들에게 같은 소명을 맡겨 세상에 파견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에게는 누군가를 심판하고 단죄할 권한이 없습니다. 이해하고 용서하며 사랑과 자비로 끌어안을 중요한 소명만 있습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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