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회개로 구원의 빛인 참된 안식을 /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기념일(루카 10,13-1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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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24-10-03 | 조회수92 | 추천수1 | 반대(1) 신고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회개로 구원의 빛인 참된 안식을 /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기념일(루카 10,13-16)
‘예수님께서 회개 않는 고을들에 이르셨다. “불행하여라, 너 코라진아! 불행하여라, 너 벳사이다야!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티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자루옷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앉아 회개했을 것이다. 그러니 심판 때에 티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그리고 너 카파르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싶으냐? 저승에까지 떨어질 것이다.”’ 예수님께서 믿음이 부족한 이, 악의를 가진 이, 겉과 속이 다른 이들에게 온갖 독설을 담아 아예 작정이나 한 듯 퍼부으신다. 이를 두고 어떤 이들은 그분을 무서운 분으로 여긴다. 그러나 준엄하게 꾸짖으시는 건 그들의 마음이 회개하기를 바라시는 뜻이었다. 그것이 바로 그들을 살리는 길이기에. “불행하여라, 너 코라진아! 그리고 너 벳사이다야!” 참으로 뜻밖이다. 일찍이 소돔과 고모라를 벌하실 때 그 고을에 의인 다섯 명만 있어도 진노를 거두겠다는 주님이신데. 그러한 주님 모습을 알고 있었기에 아브라함은 끈질기게 그분의 자비를 청했던 것이다. 자비의 주님께서 왜 불행을 언급하셨을까? 벳사이다는 베드로와 안드레아, 야고보, 요한 사도의 출신 고향이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 도시에서 필립보와 나타나엘까지 간택하셨다. 사도들의 절반이 아마도 이곳 출신일 게다. 그만큼 이 도시에 대한 예수님의 애정이 남달랐으리라. 그럼에도 사람들의 냉담한 반응에 예수님께서는 무척이나 안타까워하셨다. 이는 저주라기보다 예수님의 탄식으로 보아야 하겠다. 사실 코라진과 벳사이다와 카파르나움은 당시에 신흥 도시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었다. 시리아와 인접한 국경 도시로 사통팔달 잘 연결되어 있었기에. 특히 카파르나움에는 가나안 지역을 통괄하는 로마 부대가 주둔하고 있었기에 더욱 번창했으리라. 로마 군인들이 상주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이교 문화와 장사꾼들로 넘쳐 났을 게다. 이스라엘도 예외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들떠 있었고, 조용했던 시골엔 돈이 풍족해졌다. 미래는 온통 희망으로 비쳤으리라. 그런 그들께 예수님 말씀이 속속들이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꾸짖으신다. ‘불행하여라, 너 코라진과 벳사이다야! 너희에게 베푼 저 기적들을 티로와 시돈에서 베풀었더라면, 그들은 벌써 회개하였을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기적 앞에서도 마음을 바꾸지 않는 그들의 완고함을, 불행이라시며 크게 지적하셨다. 사실 언제까지나 햇볕만 내리쪼이는 땅은 없다. 햇볕만 받으면 땅은 서서히 갈라질게다. 언제까지나 비바람만 맞는 땅도 없다. 예나 지금이나 평범한 이 진리들을 사람들은 쉽게 잊어버린다. 이처럼 예수님이 불행하다시며 심판받을 것이라고 하신 것은 저주보다 진리를 깨닫기를 바라시는 뜻이 담겨 있다. 그들이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하고, 어둠에 빠져 회개하지 않기에.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녀들에게 넘치는 사랑과 은총을 언제나 베풀어 주신다. 하느님의 은총은 우리 믿는 이가 하느님의 구원 의지를 깨닫고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여 내 생활의 중심으로 삼도록 이끈다.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들이고 하느님의 뜻에 승복하는 것이 곧 회개이다. 우리의 하루하루가 회개의 여정이 되어야 하겠다. 실은 많은 이가 예수님 말씀에서 위로만을 듣고자 한단다. 그러나 가끔은 이런 저주가 담긴 게 더 실질적일 수도.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관심과 애정은 남다르다. 기도와 묵상으로 어둠에서 벗어나서, 구원의 빛인 참된 안식을 얻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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