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하느님께서 맺으신 것을 풀려하다니 / 연중 제27주일 나해(마르 10,2-1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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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24-10-05 | 조회수78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하느님께서 맺으신 것을 풀려하다니 / 연중 제27주일 나해(마르 10,2-16)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 하고 물었다. 그분께서 “모세는 너희에게 어떻게 하라고 명령하였느냐?” 하고 되물으시니, 그들이 “이혼장을 써 주고 아내를 버리는 것’을 모세는 허락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그것은 너희가 완고하기에 그렇게 한 것이다. 창조 때 하느님께서는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두 몸이 ‘한 몸’으로, 두 영혼이 ‘한 영혼’이며, 두 인격이 ‘한 인격’이 된단다. 이는 혼인은 ‘하느님 창조 질서’이기에 인간이 마음대로 바꿀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나의 운명이 그대의 것과 같아졌다니, 생각할수록 놀라운 가르침이다. 사실 모든 운명은 하느님께서 좌우하신다. 그러기에 우리의 계산과 노력에는 한계가 있지만, 그분에게는 한계가 없다. 천일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일 같기에. 그래서 앞날은 그분께 맡기는 게 정석일 것이다. 당연히 하나 된 운명을 바꾸는 것보다, 나눌 수 없는 하나라는 생각으로 빨리 바꾸라는 거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혼인의 근본적인 의미를 일깨우신다. 그 첫째가 남녀의 평등성이다. 하느님께서 그렇게 창조하셨기에. 여자는 남자의 재산이 아닌, 남자와 마찬가지로 하느님 모습을 닮은 인격체이다. 그들은 하느님을 닮은 모습으로 지어졌고, 하느님과의 관계에서도 평등하다. 나아가 혼인한 당사자인 그들도 서로에게 동등하게 되면서, 모두 하느님께 속하기에 평등하다. 다음은 남녀의 보완성이다. 그들은 서로 의존하며 더불어 사는 존재이다. 그렇지만 아직도 알게 모르게 곳곳에서 남성 우월주의가 엄연히 남아있는 게 사실이다. 남녀평등이 없는 부부 사이는 결코 건강할 수가 없다. 이는 부부가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여야 한다는 동반자 의식이 없으면,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없기에 그렇다. 인간은 부족하고 약한 존재이니까. 부족한 부분은 서로 채워주고 약한 부분은 서로 책임져 줄 때만이, 가정이 풍요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자신을 내려놓으면서 누군가를 드높이고자 사랑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혈연도 아닌 부부가 평생 사랑하는 것은 자녀나 형제부모를 사랑하는 것보다 몇 배는 더 힘들고 더 큰 희생을 요구할 게다. 남녀 모두 같은 살과 뼈를 가진 하느님 모습에 따라 창조된 인격체이다. 이처럼 남녀의 평등성은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다. 부부가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자세는 행복한 가정의 비결이다. 배우자 약점을 덮어 주고 차이점을 존중하는 태도는, 자녀들에게 인격적인 사랑을 배우게 하는 원천도 될 게다. 이처럼 평등성과 보완성인 하느님께서 창조 때부터 부여하신 그 소중한 정신을 아무렇게나 생각하는 경향으로 바뀌어 가는 것 같다. 어렵게 만나서는 쉽게 떠나려 한다. 고통은 피하고 기쁨만 누리려 한다. 그러나 쉬운 인생이 어디 있을까? 본래부터 삶은 고통스러운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게다. 더구나 두 사람의 운명이 하나의 운명으로 바뀌었으니, 고뇌는 어쩜 당연한 일이리라. 인연이 주는 아픔이 반복되더라도, 하느님께서 맺어 주셨음을 분명 기억해야만 한다. 나의 한쪽이 흔들리더라도 초심으로 손잡아보자. 그러면 운명을 쥐고 계신 그분께서 끝까지 지켜주시리라.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결코 안 됨을 꼭 명심하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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