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영근 신부님_“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루카 10,3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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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4-10-07 | 조회수82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 오늘의 말씀(10/7) ; 연중 제27주간, 묵주기도의 복되신 동정마리아 기념일 * 제1독서 ; 갈라 1,6-12 * 복음 : 루카 10, 25-37 25 어떤 율법 교사가 일어서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말하였다. “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 2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느냐? 너는 어떻게 읽었느냐?” 27 그가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28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옳게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여라.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 29 그 율법 교사는 자기가 정당함을 드러내고 싶어서 예수님께,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하고 물었다. 30 예수님께서 응답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그를 때려 초주검으로 만들어 놓고 가 버렸다. 31 마침 어떤 사제가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32 레위인도 마찬가지로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33 그런데 여행을 하던 어떤 사마리아인은 그가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34 그래서 그에게 다가가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 자기 노새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 35 이튿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저 사람을 돌보아 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제가 돌아올 때에 갚아 드리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6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37 율법 교사가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 <오늘의 강론> 오늘 <복음>은 어떤 율법교사와 예수님과의 두 번의 대화로 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대화>에서, 율법교사는 예수님께 묻습니다.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루카 10,25)
이 질문은 아주 중요한 질문이기는 하나, 율법교사의 편견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곧 그는 ‘무엇인가를 해야’ 구원을 받으리라 여기고 있습니다. 마치 스스로의 ‘행실’로 구원을 얻으리라고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이 자신의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있다는 것’과 ‘자신은 그분께 메여있는 존재’임을 깨달아야 할 일입니다. 곧 구원은 ‘무엇을 하느냐?’는 행위의 문제라기보다, ‘어떤 사람이 되느냐?’라는 존재의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곧 무슨 일을 하느냐보다 그 일을 사랑으로 하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곧 “마음과 목숨과 힘과 정신을 다하여 사랑하는”(루카 10,27) 일입니다. <두 번째 대화>에서, 율법교사는 예수님께 묻습니다. “누가 제 이웃입니까?”(마르 10,29)
이 질문 뒤에도 역시 그의 옹졸한 마음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곧 사랑의 대상에 한계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의 사랑의 대상에는 사마리아인이나 이방인은 제외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반문하십니다.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느냐?”(마르 10,36)
예수님께서는 누가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가에 대해 대답하기보다, 오히려 ‘모든 이웃이 사랑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씀하십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사랑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입니다. 곧 우리는 모두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이웃들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모두에게 ‘이웃’이 되어야 할 일입니다. 나아가서 우리는 단지 이웃이 아니라 ‘형제’임을 알아야 할 일입니다. 그러니 ‘누가 나의 이웃인가? 라는 문제보다, ‘나는 이웃이 되고 있는가?’ 라는 질문에 먼저 응답해야 할 일입니다. ‘그가 나의 형제인가?’ 묻기에 앞서, ‘나는 그의 형제가 되어주고 있는가?’를 물어야 할 일입니다. 곧 내가 필요로 여기는 사람을 우선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여기는 사람’을 우선해야 할 일입니다. 그래서 “그에게 자비를 베푸는 사람”(루카 10,37)이 되어야 할 일입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는 “주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기도에서, 이제는 “주님, 저희가 자비를 입었으니, 저희도 자비를 베풀게 하소서.”라고 기도하고, “서로 사랑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하기보다 “서로에게 사랑이 되게 하소서”라고 기도해야 할 일입니다. 사실, 오늘 <복음>의 핵심 메시지는 <첫 번째>와 <두 번째> 대화의 마지막 구절에 있습니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루카 10,28;37). 그러니 아는 것에 멈추지 말고, 행동으로 실행해야 할 일입니다. 말로만 하지 말고 몸으로 실행하고, 의무적으로나 형식적으로 하지 말고 자발적으로 사랑으로 행해야 할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를 알 때가 아니라, 실행할 때 살게 될 것입니다. 아멘.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루카 10,37)
주님! 초라해진 저의 모습을 봅니다. 초주검 당해 쓰러진 이들이 여기 저기 웅크리고 있건만, 나는 그들과는 반대방향으로 달리는 열차에 앉아 신문쪽지를 바라보며 혀만 끌끌 차면서 슬며시 길을 피해 슬금슬금 달아나고 맙니다. 누가 제 이웃입니까? 묻기보다, 누군가의 이웃이 되어주게 하소서! 그가 사랑받을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에게 사랑이 필요하기에 사랑하게 하소서! 나에게 필요한 사람으로 만들기보다, 그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게 하소서! 사랑을 간직한 사람, 무엇을 하더라도 사랑으로 하는 사람 되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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