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꼭 필요한 묵상으로 충실한 신앙생활을 / 연중 제27주간 화요일(루카 10,38-4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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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24-10-07 | 조회수112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꼭 필요한 묵상으로 충실한 신앙생활을 / 연중 제27주간 화요일(루카 10,38-42) 어떤 이가 죽음을 눈앞에 둔 이들의 얘기를 주워 모아 ‘죽을 때 꼭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라는 것을 다룬 책을 냈다. 그들이 후회한 건 대개 ‘사랑하는 이에게 고맙다고 말할걸.’, ‘좀 더 친절하게 대해 줄걸.’, ‘그때 좀 더 참았을걸.’ 등이었다나. ‘돈을 좀 더 많이 벌걸.’, ‘공부를 열심히 해 학위를 딸걸.’, ‘사업에 더 많은 시간을 쏟을걸.’ 등의 후회 따위들은 거의 없었단다. ‘마르타는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셨다. 그녀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그녀는 주님의 발치에서 그분 말씀을 듣고 있었다. 그러나 마르타는 많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 다가가, ‘주님, 동생이 저만 시중들게 두는데 그냥 계십니까? 좀 도우라 해 주십시오.’라고 말하였다. 주님께서 답하셨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로 염려와 걱정이구나. 그러나 필요한 건 단 한 가지이다. 그녀는 좋은 걸 선택해, 그걸 빼기지 않을 게다.”’ 사실 그 집안에 일에 매달린 마르타가 없었으면 예수님 일행은 진지도 드시지 못하셨을 수도. 이에 예수님은 마르타를 두 번이나 부르셨다. 이를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녀는 음식 준비에 온갖 시중으로 몰두하였기에, 당신 말씀을 들을 겨를이 없는 것을 부담스럽게 생각하셨을까? 아니면 그녀의 헌신이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었기에, 어찌 그 정성 탓할 수 있었으랴!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각자의 삶의 방법이 있음을 분명히 주지시키셨다. 그분의 함축된 뜻은 마르타가 방해받지 않고 여러모로 음식 준비를 잘할 수 있듯이, 마리아도 방해받지 않고 주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보장해 주어야만 한다는 것일 게다. 그래서 지금 너네한테 꼭 ‘필요한 것’은, 너는 음식 준비하는 거고 너 동생 마리아는 내 발치에서 듣는 것이란 것을 구분하셨다. 사실 우리에게는 마르타적인 것과 마리아적인 것, 모두가 필요하리라. 활동과 봉사에 성실하다 보면 묵상과 기도 생활을 소홀히 할 수도 있기에, 두 가지가 중용을 이루어야만 할 게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라면서, 말씀을 듣고 말씀 안에서 당신을 만나, 그 힘으로 사는 게 가장 ‘필요한 한 가지’라는 것을 분명히 밝혀두셨다. 아마도 신앙의 말씀을 듣는 믿음의 삶에서 봉사의 출발점이 되지 않는다면, 사랑의 행위는 지속될 수 없으리라.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마리아는 좋은 걸 선택했다. 그리고 그걸 빼앗기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 마리아의 일이 빼앗기지 않는다면, 아마도 마르타의 일은 언젠가는 빼앗길 수도. 그렇다면 우리가 우선시 할 일은? 어쩌면 많은 일로 염려로 걱정하는 마르타보다, 예수님 발치서 때로는 말씀 듣는 것을 우선시하는 삶을 누리면 어떨까? 어떤 면에서 오늘을 사는 우리도 늘 마르타처럼 바쁘기만 하다. 그렇지만 때로는 마리아처럼 말씀에도 귀 기울려야 할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우리 노력이 아니라, 하느님 뜻이리라. 어쩌면 우리에게는 마르타와 마리아의 두 가지 모습을 늘 같이 지니고 산다. 주님 목소리에 온전히 귀 기울이고 그분과 일치하여 살고 싶은 마음과 현실에 충실하고자 하는 욕구가 함께 있다. 중요한 것은 이 두 가지 가운데 무엇 하나를 선택해야 하느냐가 아니라, 이 둘을 내 삶에서 어떻게 조화시킬까 하는 것일 게다. 그리하여 때로는 믿음 안에서 꼭 필요한 묵상으로 삶을 잘 실천하면서 신앙생활을 해 나가는 것이,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몫을 택한 게 아닐까 싶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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